2019. 5. 15. 05:43ㆍ문화산책/여러 종류의 민속자료
소재지 :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74-2
[법천사지]
답사가는 길에 지나치게 된 법천사지 터
우선 목적한 곳부터 들려야하기에 지나쳤다가
예정에는 없었지만, 다음 일정을 잠시 미루고 들렸습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여서인지 텅빈 법천사지 터는 적막이
감도는듯 하였지만,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한 후 법천사지 터를 둘러보았다.
[법천사지]
이곳은 통일신라시대의 법천사 터이며,
2005년 8월 3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466호로 지정되었다.
[지광국사현묘탑비로 오르는 길 전경]
멀리 범상찮아 보이는 비석이 보이기에 그곳을 향하여 걸음을 옮겼다.
무언지도 모르고 들렸는데, 가까이가서 안내판 글을 읽어보고야 알았습니다.
[길옆 법천사지 옛 주춧돌과 석물 등]
法泉寺(법천사)는 고려 중기의 대표적인
법상종 사찰로 명봉산 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합니다.
이 곳에는 당간지주를 비롯하여 지광국사 현묘탑비와 법당터 및
석탑의 일부 등이 남아 있으며, 주면에는 이 절터에서 나온 석재 들이 흩어져 있었다.
[법천사지광국사현모탑비 오르는 길]
지광국사의 부도는 서울로 옮겨졌으나,
부도를 모셨던 탑비는 그대로 남아 있다 합니다.
[지광국사현묘탑비 전경]
[민들레 밭]
철은 만난 노오란 민들레가 탑비가는 넓은 공터에
무리지어 피어 있네요. 고유의 우리 민들레는 어디로 쫒겨가고
외래종인 노란 민들레만 자리하고 있는지 네잎 크로버를 찾듯
흰 민들레를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하고 탑비로 향했다.
[계단 윗쪽 안내판 전경]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비 안내판 글 내용]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비 안내판 영문 글 내용]
[지광국사현묘탑비 전경]]
무언가 신비로운 힘에 끌리듯 탑비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름다운 절정, 영환이 머문 자리 안내판 전경]
[아름다운 절정, 영환이 머문 자리 안내판 글 내용]
[지광국사탑, 수난과 아픔의 기록 안내글과 안내도]
1911년 9월 : 일본인 골동상 모리가 불법 반출하여, 실업가 와다 쓰네이치에게 매각
1912년 5월 : 후지타 헤이타로에게 매각, 오사카(大阪)로 밀반출
1912년 10월 : 조선 총독 데라우치의 반환 명령, 12월 총독부에 기증 형식으로 반환
1915년 9월 : 조선물산공진회 전시, 그 후 명동성당 부근, 경회루 동편 등 모두 9차례 이전
한국전쟁 : 피폭으로 옥개석 이상 대파(12,000조각), 1957년 시멘트로 복원
2001년 10월 : 안전상 국립중앙박물관 용산 이전 시 제외, 경복궁 내 고궁박물관 뜰에 존치
2015년 3월 : 보존처리를 위하여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이전
(위 안내글 옮겨 적음)
[지광국사 탑비 앞쪽 전경]
강원도 원주시 법천사 터에 있는 탑비.
고려 선종 2년(1085)에 건립된 것으로 비문에
지광 국사의 사적과 제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국보 정식 명칭은 '원주 법천사지 지광 국사 탑비'이다.
[정면에서 담은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비 전경]
고려 문종 24년(1070년)에 지광국사가 법천사에서 입적하자
그 公的(공적)을 추모하기 위해 사리탑인 지광국사현묘탑과 함께
이 碑(비)를 세워놓았다.
[정면에서 담은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비]
현묘탑은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겨졌고 塔碑(탑비)만이 옛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국보 제59호 지광국사 현모탑 표석비]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 우측 옆 전경]
비문에는 지광국사가 불교에 입문해서 목숨을 다할
때까지의 行狀(행장)과 공적을 추모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 우측 옆면]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 좌측 옆 전경]
비문은 鄭惟産(정유산)이 짓고, 글씨는 安民厚(안민후)가
중국의 구양순체를 기본으로 삼아 부드러운 필체로 새겼다 합니다.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 좌측 옆면]
[탑비 앞 뒤 螭首(이수) / 애니메이션 편집]
螭首(이수) : 龍(용)의 형상을 조각하여 수호의 의미를 갖도록 한 碑身(비신)의 머릿돌
[탑비 龜趺(귀부)]
바둑판 모양으로 나뉜 네모 안에는 임금 王(왕)자사
새겨져 있는 탑비의 龜趺(귀부) 다른 곳과 달라 신기해서 담아왔습니다.
龜趺(귀부) : 거북 모양으로 만든 비석의 받침돌
거북 모양으로 만든 비석의 받침돌. 신라 초기부터 쓰였다.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 뒷면]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 뒷면 전경]
[탑비 쪽에서 담은 법천사지 전경]
[안내판이 있는 전경]
[안내판 옆 법천사지 석재]
[안내판 옆 법천사지 석재]
[안내판쪽에서 담은 앞쪽 전경]
[다시 담아 본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 전경]
[내려오며 담은 법천사지 전경]
[법천사지 노거수]
법천사지 멀리 보이는 노거수에 또 꽂혔다.
가까이가서 담아 보고 싶었지만, 법천사지 저쪽 끝자리에
자리하고 있어서 줌으로 당겨 담아보았다.
[법천사지 노거수]
최대한 신경쓰서 담아 보았지만, 마음엔 차지 않는다.
[법천사지 노거수]
숱한 풍상을 겪으며 버티어 온 노거수
분명 그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리라.
앞으로는 또 어떤 사연들이 노거수와 함께할까?
분명한 건 언제가 되었던 법천사가 세워져 옛 영화를 누리며
오래도록 함께하기를 소망하며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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