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 2

2015. 8. 8. 05:59살아지는 이야기/초아의 옛글 방

 

 

약속한 화요일 우린 모처럼 다니려온 큰아들....
서울 올라가기 전 아침에 집에 들린다고 하기에 기다렸다가...
이야기 잠깐 나누고 동대구 역에 대려다 주고 고령을 향하여 출발했다.

 

가슴은 부풀고 푸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높았다.
파티마 병원 옆길로 해서 산업 도로를 타고 신천 대로로 빠졌다.
덤벙대며 실수투성이인 나...길눈이 많이 어두어서...
구마고속도로를 타려면 팔달교가는 방향으로 빠져야 하는데......
그만 북대구 I.C로 빠졌다.

 

처음엔 멋모르고 달렸지요.
곧 우측으로 끼여들면 되지 싶어서..........후후
그러나 옆 차선은 전에 없이 군대군대 붉은 막대로 막아놓아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예전에는 달리다 옆으로 끼어 들면 됐는데.....언제 바뀌었나??

 

"이리 들어오면 어떻게 해!!!"
"미안해요, 어떻게 하지요?"
"몰라 나도 그런 대 들어 올 때는 천천히 하라고 했잖아!!"
"그럼 북대구 IC로 우선 나가서 우회해서 빠지는 길 있잖아요."
"난 모릉께 당신 마음대로 혀!!"


언젠가 안동 간다고 가다가 잘못해서 북대구IC로 빠진 적 있답니다.
그때 우회로로 해서 빠져 나온 기억이 나서 이번에도 그렇게 하지 뭐...
하고 두근대는 가슴으로 짝꿍을 쓸쩍 보았다.
츠, 츠, 츠, 츠, 츠, 혀차는 소리만 들리고 앞만 바라보고 있다.


금방 먹구름이 가득 끼였다. 내 맘에......
표를 뽑아서 나갔나? 안 뽑고 나갔나?? 헷갈려서, 생각하다....
그만 약간 지나쳤다 표 뽑는 자리를.....손을 뒤로 한껏 뻗쳐 뽑아들고.....
우회로로 빠졌다. 한바퀴 휘돌아 나오니....
길다란 막대기로 막아두었으나, 이내 옆 사무실에서 아가씨가 나와...
웃으면 막대기를 치워준다. 아가씨에게 뽑은 표를 주고 우린 나와서 다시
팔달교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구마고속도로 가는 길로 한참을 달릴 때까지.....
내내 옆에선 끌,끌,끌, 끌, 혀차는 소리....
아뭇소리 못하고 앞만 보고 차만 몰았다.

 

이그 이렇게 해가며 꼭 가야하나? 그럼 가야하고 말고....
마음속에서 뭉글뭉글 갈등이 인다.
한참을 달려서 남대구 IC가 보일 때쯤 해서 겨우 슬그머니 풀어진 짝꿍...
아고 이젠 조심해야지...정신 바싹 차려야지...다시는 실수하지 말아야지...
운전대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구마고속도로로 가는 길과 해인사 가는 길 두 갈래 길....

예전에 이곳에서도 실수했다. 해인사 가는 윗길로 가야하는데.....
구마고속도로로 씽~~신나게 들어가는 바람에...
얼마나 혼났든지....오늘은 정신 똑바로 차려 얼른 윗길로 접어들었다.

 

"이젠 안 가르켜 줘도 알 아네.."
(흐미~~그럼요. 잘 알죠...또 실수함 우짤라꼬요....)
평상심으로 돌아온 짝꿍의 평온함에 다시 잔잔해진 내 맘.
열심히 얼마 전 다녀온 길을 속으로 되새기며....
코스모스 한들대는 시골길을 달렸다.


그리곤 좌회전 또 다시 좌회전 드디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하는 산소.
우선 넓은 공터 동네 한쪽에 차를 세우고, 준비해간 낫과 또 술, 과일, 포, 등을

검은 비닐봉지에 넣어들고는 오솔길을 걸어 올라갔다.


한적한 오솔길엔 사람이 다니지 않아서 일까? 가끔씩 얼굴을 스치는 거미줄....
시간이 늦어서 일까? 따가운 햇볕에 아침 이슬은 어디에도 없다.
앞장서 조심조심 산을 올랐다.
지나치는 길에 보이는 친정작은아버지와 어머니의 묘... 벌써 다녀간 표가 난다.
깨끗하게 정리된 묘지가 마음을 흐뭇하게 한다.

 

한참을 더 올라가서....아직도 드문드문 붉은 흙이 보이는 동생의 묘.
그리고 그 옆으로 두 분의 어머니 묘도.... 역시 누군가가 와서 깨끗이 벌초를 해 놓았다.
아버지가, 동생이, 올캐가?? 우선 가져온 음식을 채려놓고........
절부터 드렸다. 엄만 싫어하시겠지.....새어머닌 좋아라 하시겠지만,
그러나 난 미신이며..우상숭배라고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내 어머님께 오랜만에 뵈 온 인사를 드렸을 뿐...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마 딸아이를 대리고 왔다면 싫어라 했겠지...

 

동생의 묘 앞에도 가져간 음식을 채려놓고, 짝꿍과 나란히 절을 했다.
뭉클하고 올라오는 서러움에.......가슴이 멍멍해져온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져..아무리 참아도 뚝뚝 흐르는 눈물..
자네가 왜 이 자리에 누워 누나와 자형의 절을 받아야 하나......
야속한 생각과 아픔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오랜 세월 흐른 동안 어머니에 대한 서러움은 이젠 누를 수 있게 되었지만,
얼마 전 세상 떠난 동생의 무덤 앞에서는 순간 고동쳐오는 마음을 달랠 길이 없다.

 

삐죽삐죽 올라온 잔디를 한낮의 땡볕아래 짝꿍은 낫을 들고 정리를 한다.
난 그늘진 엄마무덤 뒤에서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지난 주 일요일 벌초를 하고 갔다고 한다.
그랬구나....착하고 고마운 동생들.....

 

남동생 무덤 바로 옆 장례 지내는 날 먹고 버린 참외 씨가 떨어졌는지...
두 포기의 참외가 자라고 있고....내 주먹보다 더 큰 참외 와 주먹만한 참외
또 이제 겨우 엄지손가락 보다 조금 더 큰 참외가 두 어 개 달려있으며,

노오란 참외꽃이 피어있었다.

 

이 외진 산 속 누가 와서 가꾸지도 않지만,
이렇게 저 혼자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았다.
추석에 다시 와서 따먹으라고 그냥 두고 내려오는 길

산꿩이 푸드륵 날아오르며,
길가엔 작은 다람쥐도 쪼르륵 나무를 타고 오른다.

 

돌아오는 길 늦은 점심을 먹으려니,
숯불구이도 싫다. 국수종류도 싫다. 분식집도 싫다.....
이그~~미워라 그람 뭐 묵노!!!
차라리 굶징!!


이것도 싫타 저것도 싫타 저집도 마음에 안든다..요집도 싫타..
에그 짝꿍 비위 맞추기도 심들어라.....ㅎㅎㅎ
우찌우찌하다가 마침 길옆도로에 둑배기국밥집이 있기에 얼른 들어갔다.


"저집에서 먹고 가요."

"응 그러자 그럼.."
들어가서 또 다퉜죠....후후


내 18번 비빔밥 묵을라고 칸다꼬....그래도 난 그게 좋아요.
짝꿍은 둑배기국밥, 난 비빔밥.....이그 맛도 우째그리 없노..괜히 시켰다.
짝꿍은 국이 매워서 밥만 건저 먹는 것 같구....
아무튼 우린 이렇게 한끼 떼우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무사히 돌아온 하루를 감사하면서 또 내일을 마지 해야겠습니다.

 

 


2001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