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 5. 05:52ㆍ살아지는 이야기/초아의 옛글 방
마음속의 내 고향은 언제나 물 맑고 산천경개 뛰어난 무태입니다.
지금은 옛날 모습 하나도 없지만, 내 기억 속엔 옛 그대로입니다.
국민학교 다닐 땐 "하나 둘," "셋" "넷" 줄 서서 소풍을 가곤 했습니다.
칠성시장 한쪽 후미진 곳 굴다리 지나서 그 옆 동래가 울 동래였답니다.
지금은 교동 네거리, 칠성지하도가 되어 길도 그때보다 3배나 넓어졌습니다.
단발머리 동무랑 어울려 우리끼리 가끔 가기도 한 탱자나무 울타리가 줄지어 선
좁은 과수원 길 따라, 보리싹 파랗게 피어있는 논둑길도 가고, 외따로 떨어진 오두막도 지나서
봄, 여름, 가을 가리지 않고 곧잘 다니곤 하였습니다.
흰 눈이 내리는 겨울이 오면 논에 언 얼음을 타려
우르르 몰려가서 엎어지고 자빠지고 해지는 줄 몰랐지요.
태어난 안태 고향 먼먼 북간도 만주땅이라 하셨지만,
내 맘 속의 고향은 무태로 자리 잡았습니다.
과수원 길 노래랑 아주 꼭 닮은 길과 동래였습니다.
내 유년의 그리움이 옹달샘이 되어 남아있는 곳.
엄마의 비릿한 젖 냄새 다음으로 두 번째의 그리움의 발상지였습니다.
봄이면 온 산이 빨갛게 참꽃이 피던 무태, 뻐꾹새 뻐꾹뻐국
이름 모를 산새들이 합창하고, 가을이면, 주렁주렁 달린 과실들.
겨울이면 카드 속 그림처럼 눈내려 아늑한 곳.
꽃마차가 동네 길을 달리곤 했답니다.
간밤 불던 바람 떨어진 어린 땡감
실에다 차곡차곡 꿰여 목걸이도 만들고 팔찌도 만들며,
토끼풀 묶어서 시계도 만들어 손목에 차고,
강아지풀 뜯어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선 오요요.
소가 끄는 달구지 말이 끄는 마차가 사이좋게 다니는 곳
봄이면 친구와 나물 캐고 여름이면 피라미 잡느라 냇가에 벗어놓은 고무신
떠내려 간 신발 찾지 못하여 먼 길을 맨발로 걸어오기도 하고, 익지도 않은 새파란
어린 탱자 따려다가 가시에 찔려 울기도 하였습니다.
비탈진 언덕에 누워 구름이 만들어 주는 여러 가지 그림도 구경하며
궁전으로 보인다, 기린 같다, 코끼리 같다. 우기며 즐거웠습니다.
늦도록 놀다가 돌아오는 길 맘씨 좋은 달구지 모는 아저씨 만나면,
"아저씨 태워줘요."
"응 그래 뒤에 타라"
달구지 뒤에 걸터앉아 늘어트린 다리를 앞으로 뒤로 흔들어대며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듬뿍듬뿍 듬뿍 새 논에서 울고,
먼~옛날의 과수원 길. 작은 입을 모아서 소리 높여 부르는 노랫소리
푸른 하늘 저 멀리 퍼져갔습니다.
봉숭아꽃 따다가 찧어 손톱에 묶어놓고 열 손가락 좍 펴고 풀어질까
걱정스러워 꾸벅꾸벅 앉아서 졸고 있다가 어느새 잠이 들어 버리곤 하였습니다.
놀다가도 삐치고, 싸움도 하지만 곧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노~올~~자~~~ 한마디면 다 끝이 났습니다.
그때 그 시절 다시 돌아가 엄마가 해준 간따꾸(원피스) 다시 입고 싶습니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낙하산 천으로 연분홍 물들여 만들어주지요.
잠자리 날개 같은 원피스 입고 나폴나폴 나비가 되기도 하였답니다.
칠성시장 옆 냇물은 빨래터였답니다.
넓은 자갈밭 커다란 드럼통 걸어놓고,
돈을 받고 양잿물을 넣어 빨래를 삶아주던 사람들도 있었답니다.
요즘처럼 수도가 집집이 없어서, 큰 빨래 하는 날은 소풍날이기도 하였지요.
집에서 점심까지 챙겨들고 한 대야 수북이 빨래를 담고,
물주전자 들고서 엄마 치맛자락 움켜잡고 종종걸음 따라갔습니다.
사리마다(팬티) 입고서 물장구치고 놀면 흙탕물 일으킨다 더 위에 더 위로
가서 놀아라. 어른들의 고함 끝일 날이 없었답니다.
그러다 우리가 잠시라도 안 보이면 아이 찾는 엄마들의 고함 시끄럽던 빨래터
그늘 하나 없이 내리쬐는 돌 자갈 위에서 먹던 점심은 생각만 해도 침이 고입니다.
삶은 빨래 다시 하고 자갈 위에 펴 늘고, 줄에 걸어 말려서는
또다시 씻어 빨아서 다시 널고, 다시 빨고, 이렇게 몇 번이고 반복하셨지요.
그러는 과정을 사라시라고 하였답니다.
누른 광목 하얘질 될 때까지 몆번이고 하시던 게 가물가물 기억에 남아있어요.
줄에 걸린 하얀 광목 불어 오는 바람에 깃발처럼 휘날리면 엄마 따라 함께 온 친구랑
숨바꼭질하면서 새카만 손으로 새하얀 광목에 손자국을 내어놓곤 제각각 엄마에게 혼나곤 했지만,
또다시 그 시절로 되돌아가서 울 엄마 꾸중 다시 한번 실컷 듣고 싶습니다.
마른빨래 차곡차곡 개어서 담으면 올 때의 한 대야 수북했던 빨래가 거짓말같이 줄어들었습니다.
붉게 물드는 석양 아래 엄마 따라 집으로 가던 철모르던 내가 다시 그리워 내 맘속 고향으로 달려갑니다.
가을이 되면 수성 못 들판 손에손에 사이다 병 하나씩 들고는 메뚜기 잡아서 병 속에 넣고, 벼줄기 훌터서
잡은 메뚜기 꿰어 들고, 논두렁 밭두렁 가리지 않고 뛰어다니다 논밭 주인에게 들키는 날엔
걸음아 날 살려라 36개 줄행랑치기도 하였습니다.
신암동 푸른 공굴 다리 구멍이 뻥뻥 둟린 철로 길을
껑충껑충 뛰어서 건너다가, 밑을 내려다보면 아득하게 보이든 강물이
갑자기 어슬어슬 소름이 끼쳐오기도 하였지요.
역무원에게 걸리는 날은 한참을 꾸중을 듣곤 했답니다.
지금 그 근처는 주공 아파트 죽죽 하늘 높이 솟아 있답니다.
우리들의 이야긴 땅속 깊이 묻어둔 채 시침 뚝 뗀 체 서 있습니다.
"머~리~~ 막~깎는~~데~~~ 20원" 외치던 할배 목소리 온 동네 사람들 머리 깎는 날이었습니다.
연장통을 메고 그 속에 머리 깎는데 필요한 연장을 넣고서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면서 깎아 줍니다.
연장통을 깔고 앉아 누런 보자기 목에 두르고.와리깡 들고서 박박 밀면 금세 박박머리 되었답니다.
할배의 손은 요술장이 쓰윽 한번 지나가면단발머리 가리야기 금새 말쑥하게 변해버렸지요.
소독도 하지 않고 이 아이 저 아이 이 사람 저 사람 깎아주어서, 깎고 나서
며칠 지나면 기계충올라서 고생하기도 하였지만, 다시 한번 그 할배 보고 싶습니다.
큰동생 지금도 그 자리 흉터로 반들반들 머리카락 하나 없이 동그랗게 남아있지만,
머리카락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다가도 어쩌다 추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어딜 가도 옛 모습은 찾을 길이 없지만, 내 맘속엔 언제나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할매가 되어버린 이 아침 왠지 오늘은 단발머리 몽당치마 추억의 소녀가 그리워집니다.
2000년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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