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한 詩(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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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평화 / 초아 박태선 내 탓이야 내 탓이야 어리석은 내 탓이야 손가락질 하나에 핏대 올린 악다구니에 흘겨보는 눈길에 이런 날은 헝클어진 실 뭉치처럼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전혀 생각할 수 없다. 그저 사방이 적인 듯 막막하기만 하다. 그래도 이 모든 것은 지나갈 뿐이다. 유리알이 금이 갈 정도로 하늘은 저리도 맑고 맑은데 턱없는 오물을 뒤집어쓴 하루를 꾸역꾸역 삼켜야 한다. 그저 참을 수밖에 참을 '忍'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지요. 속이 부글부글 끓는 날 일단은 자야겠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다시 뜰 태니까 그래 잘했어 나 참 잘했어 스스로 격려해 본다. [상황문학 제11집, 2013년 발표]
2016.05.26 -
벼랑 끝에 서서
벼랑 끝에 서서 / 초아 박태선 누군가에게 떠밀려 벼랑 끝에 서서 누군가를 원망하며 미워질 때 문득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살아오며 난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내몬 적이 없었던가 피해자라 생각한 나 자신이 가해자이진 않았을까 용서를 받아야 할 내가 오히려 자비를 베풀었다 자만하지 않았을까 상처받지 않으려 조심하고 삼간 몸짓이 오히려 흉기가 되어 상처를 주지나 않았는지 얼마를 더 살아야 이 모든 것에서 놓여날 수 있을까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더는 물러설 때가 없는 벼랑 끝에 서서 형체도 없는 마음속 전쟁 할퀴고 뜯기고 피 흘리며 또 하루를 보낸다. [상황문학 11집, 2013년 발표]
2016.05.24 -
한적한 길
한적한 길 / 초아 박태선 혼자서 걷는 호젓한 산길 나뭇잎 사이로 햇살은 내리쬐고 산새는 노래하고 꽃들은 방긋 웃는다. 혼자 걷는 길 와락 무섬증이 몸을 감살 때 멀리서 보이는 사람의 형태 가까이 다가올수록 두렵다. 좋은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갈등하는 속마음이 밉다. 그렇게 만든 현실이 싫다. 이런 나 자신이 야속하다. 저 사람도 나처럼 나를 무서워도 반가워도 할까 정해진 길을 가다 보면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좋은 만남 그렇지 못한 만남 숱한 인연들이 만났다 헤어지며 그리움으로 미움으로 남는다. [상황문학 제11집, 2013년 발표]
2016.05.23 -
우리 이런 사람이 되자
우리 이런 사람이 되자 / 초아 박태선 주고 주어도 더 주고 싶은 사랑 그대로의 마음으로 함께하자 따뜻한 말 한마디 은근한 눈빛 함께 하면 참 좋은 사람 그런 고운 인연 쌓아가자 향을 싼 종이에서 향기가 나듯 얼마를 더 산다고 할퀴며 상처받으며 허비하는 시간 아깝지 않은가 싱싱한 나무처럼 향긋한 풀잎처럼 우리 고운 인연이 되자 [상황문학 11집 2013년 발표]
2016.05.20 -
골목길의 사계
골목길의 사계 / 초아 박태선 기다렸다는 듯이 앞 다투어 피는 꽃 골목길은 희망으로 환하다. 뜨거운 땡볕 아래 열정으로 가득한 푸름이 고함을 친다. 여미고 여미어도 터질 듯 부푼 결실 뚝 골목길의 고요를 깨운다. 거스르지 않는 순응의 자세로 다시 꿈꾸는 미래 [상황문학 11집 2013년 발표]
2016.05.19 -
숲 속의 하루
숲 속의 하루 초롱초롱 초로롱 방울새가 울면 호롱호롱 호로롱 달콤한 아침 지지배배 지지배배 하늘은 분주해지고 퐁퐁 포르르 향기 풍기며 까악까악 깍깍 기쁜 소식을 전하여준다. 사르 사르 사르르르 꽃잎이 닫히면 투 두 두 두 별들도 꽃잎 위에 잠들고 살랑살랑 사알랑 바람이 불어 주는 자장가 [상황문학 11집 2013년 발표]
2016.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