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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蘭溪(난계) 生家(생가)
소재지 :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308 [蘭溪朴堧生家(난계박연생가) 전경] 우리나라 3대 樂聖(악성)에 속하는 蘭溪(난계) 朴堧(박연). 本貫(본관)은 密陽(밀양). 시호는 文獻(문헌) 初名(초명)은 然(연)이었고, 堧(연)은 후에 개명한 것이다. 字(자)는 탄보이고, 호는 蘭溪(난계)이니, 박연은 바위틈에 날렵히 피어난 고고한 蘭草(난초)의 자태에 매료되어 자신의 호를 蘭溪(난계)라고 했다. [우진각(생가 안 기와집)] 고려 우왕 4년(1378) 8월 20일 삼사좌윤 박천석의 아들로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에서 태어났다. 태종5년(1405년)인 28세에 생원이 되었고, 34세(1411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교리, 관습도관제조, 악학별좌, 대제학 등을 역임후 세조 2년(1456년)에 삼남 계우..
2016.08.23 -
趙芝薰(조지훈) 生家(생가) 壺隱宗宅(호은종택)
소재지 :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201 경북도기념물 제78호 [마을 입세에서 담은 우측 조지훈 문학관 전경] 주실이라는 마을은 배 형상으로 생겨서 우물을 파면, 배에 구멍이 생겨 가라 앉는다는 풍수설에 따라 '옥천종택'에만 우물이 있었다 한다. 주실마을의 우물은 이것 하나 뿐이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이곳의 물을 길어다 먹는 불편함도 감수하고 살았다 한다. 현재는 어떤지는 몰라도... [입구쪽에서 담은 壺隱宗宅(호은종택) 芝薰(지훈) 생가 솟을삼문 전경] 주실 마을은 일월산 일자봉 자락의 지맥이 끝을 맺으면서 곳곳에 명당 터를 만들고 문필봉과 연적봉을 비롯한 三峰(삼봉)이 앞 다퉈 달려오는 듯한 형상을 하면서 수 없는 인재들을 배출한 곳이다. 주실마을은 실학자들과의 교류로 일찍 개화한 마을이면서도..
2016.08.10 -
芝薰文學館(지훈시문학관)
소재지 :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222번지 [芝薰文學館(지훈문학관) 현판] 현판 글씨는 지훈선생의 부인 김난희 여사가 쓴 현판이라 한다. [芝薰文學館(지훈시문학관)] 현판을 쓴 문학관을 들어서면 170여 평 규모에 단층으로 지어진 목조 기와집이 'ㅁ'자 모양으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문학관 출입구] 趙芝薰(조지훈, 1920~1968) 시인, 국문학자 본관 漢陽(한양). 본명 東卓(동탁). 아호 芝薰(지훈) 아버지 趙憲泳(조헌영), 어머니 全州柳氏(전주류씨)의 4남매 중 둘째 아들이다. 1920년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주실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조부는 고을의 이름높은 한학자였고, 부친 趙憲泳(조헌영)은 일본 중앙대 영문학과를 나와 제헌 및 2대 국회의원을지내다, 6.25 때 납북되었다...
2016.08.09 -
趙芝薰(조지훈) 趙東振(조동진) 형제 詩碑(시비)
소재지 :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조지훈 시비 안내 글] [입구쪽에서 담은 趙芝薰(조지훈) 詩碑 (시비) 시인의 숲 전경] 느티나무, 팽나무 등, 노거수의 온갖 잡목이 어우러진 수풀은 녹음이 짙어지는 오월을 맞아 푸름을 더해가고, 지훈의 시비는 그 속에서 짙은 초록의 물결로 나그네를 맞이해 주었다. 시비는 1982년 8월 15일 광복 37년을 기념하여 문하생 500여 명이 뜻을 모아 세웠다. [芝薰詩碑(지훈시비)] 16세가 되면서 서울로 올라가 향리의 선배 시인인 吳一島(오일도) 밑에서 출판일을 도우며, 보들레르, 와일드, 플로베르 등의 다양한 작품들을 섭렵하면서 문학적 수업을 닦아 나갔다. 지훈은 암흑의 식민지 시대에 민족의 영혼을 되찾으려 철두철미 전통으로 회귀한 선비시인이요, 지사志士시인이..
2016.08.08 -
具常(구상) 文學館(문학관)
소재지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 785-84 [具常(구상) 文學館(문학관)] 시인은 유달리 물과 강을 사랑했다. 어린시절 자랐던 원산 덕원마을 앞 들판을 유유히 흘러 가는 적전강을 바라보면서 알 수 없은 해방감을 맛보기도 했었다는 시인은 강에 대한 상념을 종종 詩의주요한 소재로 삼곤 했다. 6.25전쟁의 와중에서 왜관으로 흘러온 시인은 아예 낙동강변에 사랑채를 짓고 '觀水齋(관수재)'라 했다. [觀水齋(관수재) 입구] '물을 바라보며 마음을 닦는다' 는 '觀水洗心'(관수세심)'은 시인의 시세계를 관통하는 정신이기도 했다. 서울로 올라온 후에도 기꺼이 한강이 바라보이는 여의도의 한 아파트에 기거했고, 그 집의 문패 역시 '觀水齋(관수재)' 였다. 시인 구상선생이 거주할 당시 관수재의 모습을 복원하..
2016.08.06 -
深谷書院(심곡서원)과 趙光祖(조광조)
소재지 : 경기도 용인시 수지읍 상현리 203-2 시도유형문화재 제7호 [홍살문과 심곡서원 전경] 학자이며 정치가였던 靜庵(정암) 趙光祖(조광조, 1482∼1519) 선생의 뜻을 기리고 제사지내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선생은 조선 중종(재위 1506∼1544) 때 사림파의 대표로 급진적인 사회개혁정치를 추진하다가 죽음을 당하였다. 효종 원년(1649)에 세워 '深谷(심곡)'이라는 현판과 토지, 노비 등을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았으며, 선현에 대한 제사와 지방교육을 담당하였다. 본관은 漢陽(한양), 자 孝直(효직), 호 靜庵(정암). 조선 개국공신 溫(온)의 5대손이며, 아버지는 감찰 元綱(원강)이다. 17세 때 魚川察訪(어천찰방)으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가, 무오사화로 희천에 유배중인 金宏弼(김굉필)에게 ..
2016.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