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美人曲(사미인곡)의 산실 松江亭(송강정)

2016. 4. 27. 06:09문화산책/정자와 누각

 

 

소재지 :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 274
전남기념물 제1

 

[松江亭(송강정) 오르는 계단]


본관 延日(연일). 季涵(계함), 松江(송강) 시호 文淸(문청).
奇大升(기대승), 金麟厚(김인후), 梁應鼎(양응정)의 문하생 어려서 仁宗(인종)
貴人(귀인)인 맏누이와 桂林君(계림군) 유의 부인이 된 둘째 누이로 인해
궁중 출입을하였는데 이 때 어린 慶原大君(경원대군 뒤에 明宗(명종)과 친숙했다.

 

[솔숲에 둘러쌓인 송강정 전경]


1545(명종 즉위) 乙巳士禍(을사사화)桂林君(계림군)
관련되자 아버지가 유배당할 때 配所(바소)에 따라다녔다.


1972129일 전라남도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었으며,
環碧堂(환벽당), 息影亭(식영정)과 함께 정송강유적이라 불린다.

 

[松江亭(송강정) 안내판]


1551년 특사되어 온 가족이 고향인 昌平(창평)으로 이주.
金允悌(김윤제)의 문하가 되어 星山(성산) 기슭의 松江(송강)가에서
10년동안 수학할 때 기대승 등 당대의 석학들에게 배우고 李珥(이이),
成渾(성혼)등과도 교유하였다.


1561년 진사시에, 다음 해 별시문과에 각각 장원, 典籍(전적)등을 역임하고
1566년 함경도 암행어사를 지낸 뒤 이이와 함께 賜暇讀書(사가독서)하였다.


1578(선조 11) 掌樂院正(장악원정)으로 기용되고,
곧 이어 승지에 올랐으나 珍島(진도)군수 李銖(이수)의 뇌물사건으로
東人(동인)의 공격을 받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竹綠亭(죽록정)]


송강 정철(鄭澈, 1536-1593)이 선조 18(1585)

대사헌에서 물러나 4년 동안 이곳에 머물다 간 적이 있었던 탓으로

본래 이름인 竹綠亭(죽록정)을 버리고 송강정으로 바꾸었다.


지금도 정자의 정면에 '松江亭(송강정)'이라고 새겨진 편액이 있고,
측면 처마 밑에는 '竹綠亭(죽록정)'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둘레에는 노송과 참대가 무성하고 앞에는

평야가 펼쳐져 있으여, 멀리 무등산이 바라다보인다.


정자 앞으로 흐르는 甑岩川(증암천)

송강(松江) 또는 竹綠川(죽록천)이라고도 한다.


정철은 이곳에 머물면서 息影亭(식영정)을 왕래하며
'사미인곡''속미인곡'을 비롯하여 많은 詩歌(시가)歌辭(가사)를 지었다.

 

[松江亭(송강정)]


지금의 정자는 1779년에 후손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그때 이름을 松江亭(송강정)이라 고쳐 불렀다한다.


알아주는 이 없어도, 어떤 고통이 닥칠지라도
자신의 이익 보다는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살아오셨던 그 분의 충정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푸르른 솔처럼 변하지 않음이 주위에 서 있는 푸른 소나무처럼
푸르게 푸르게 내게 다가온다.


오로지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편단심으로 정치를 할 수 있는 정치인이
이 시대만이 아니라 古今(고금)을 통털어 우리 모두가 원하는 그런 정치인이 아닐련지...

 

[松江鄭先生 詩碑(송강정선생 시비)竹綠亭(죽록정)쪽의 전경]


국문가사문학에 있어서는 해남의
孤山(고산) 尹善道(윤선도, 1587-1671)와 함께
독보적인 존재로 인정받고 있다.

 

[松江鄭先生 詩碑(송강정선생시비)


조선초기에 나타난 시가와 산문의 중간 형태 문학의 장르인
송강가사 중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이 이곳에서 쓰여진 産室(산실)이다.


사미인곡이 새겨진 詩碑(시비)가 세워져 있고
울창한 소나무들이 시원스레 위를 향해 죽죽 뻗어가고 있었다.

 

[사미인곡이 새겨진 松江鄭先生 詩碑(송강선생시비) 뒤쪽]

 

思美人曲(사미인곡)


하루 밤 서리 내려 기러기 울며 날아갈 제
높은 누각 혼자 앉아 수정 알로 만든 발 걷으니
동산에 달 오르고 북극성이 보이는데
님이신가 반기니 눈물이 절로 난다.
맑은 빛을 끌어내어 님 계신데 부치고 싶네
누각 위에 걸어두고 온 세상을 다 비추어
깊은 산 궁벽한 골짜기 대낮 같이 훤하게 만드소서


하늘과 땅이 닫히고 막히어 흰 눈으로 한 빛인데
사람은 물론 날짐승도 그쳐 있네.
날씨가 따뜻하다고 하는 이곳도 춥기가 이러한데
임금 계신 곳이야 더욱 말해 무엇 하리  
따뜻한 봄기운을 부쳐 내어 임계신데 쏘이고 싶네
초가집 처마 비친 해를 임금 계신 곳에 올리고 싶구나


붉은 치마를 여미어 입고 푸른 소매를 반만 걷어 올려
해 저물어 대나무에 기대어 생각이 많기도 할샤
짧은 겨울 해 쉬 지고 긴 밤을 고쳐 앉아
푸른 등 걸어놓은 곁에 수놓은 공후를 놓아두고
꿈에서나 님을 보려 턱을 받고 비껴 있으니
원앙새 수놓은 이불이 차기도 하구나, 이 밤은 언제 샐꼬?


하루도 열두 때 한 달도 서른 날
잠시 임 생각 말아 이 시름 잊고자 하니
마음속에 맺혀 뼈 속까지 사무쳤으니
편작이 열 명이 와도 이 병을 어이 고치리
어와 내 병이야 이 임의 탓이로다
차라리 사라져 범나비 되오리다


꽃나무 가지마다 간데 족족 앉고 다니다가
향기 묻은 날개로 임의 옷에 옮으리라.
임이야 날인줄 모르셔도 나는 임을 따르려 하노라.

 

[송강정과 안내판 전경]

 

송강의 국문가사로는 '성산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관동별곡'등이
있으며 내용은 주로 자연 경관을 노래하거나 임금에 대한 충절을 바탕에 깔고 있다.


'성산별곡'에 대해서는 이곳에서 머물 때 지어졌다는 설과
그 전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하는 경우가 있으나 '사미인곡''속미인곡'
이곳에서 지어졌다한다.


'사미인곡'은 제명 그대로 연군지정을 읊은 노래이다.
임금을 사모하는 심경을 남편과 이별하고 사는 부인의 심사에 비겨
자신의 충정을 고백한 내용으로 아름다운 가사문학의 정취가 배어나는 글이다.

 

[송강정에서 인증샷]


답사를 마치고 내려가려는데,
남편이 부르네요.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竹綠亭(죽록정)]


竹綠亭(죽록정)현판 아래 앉아 잠시 쉬고 있는 남편

 

[松江亭(송강정)을 둘러보고 내려가는 길]


이번의 일박이일 코스인 담양은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아직도 올려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다녀온 곳을 순서없이 올려볼까합니다.


조금이라마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