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19. 06:17ㆍ뿌리를 찾아서/忠. 孝. 烈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244
사적 제340호
[천관사지 안내판과 표석 전경]
[안내판 글 내용]
[김유신장군과 천관녀도]
[천관사지 표석]
[천관사지터 전경]
도당산 서쪽 기슭 논 가운데에 있는 절터로서
현재 남아 있는 것은 폐탑 1基(기)의 基壇石(기단석)이 잔존해 있고,
탑부재 일부와 佛像臺座(불상대좌) 등이 논둑에 노출되어 있는 상태여서
전체적인 규모나 배치된 건물의 내용 등은 알 수 없다.
얼핏 보면 근처의 논밭과 구분하기 힘들다.
이곳에서 나온 유물들은 근처의 학교 마당으로 옮겨놓았다고한다.
[천관사지 터]
金庾信(김유신)이 어렸을 때 우연한 기회에 天官(천관)이라는
기생을 알게 되었고 결국에는 깊은 정에 빠지게 되었다.
김유신은 하루의 수련이 끝나면 일과처럼 天官(천관)의 집에 찾아가곤 하였다.
[천관사지 터 2]
이 사실을 안 유신의 어머니는 그의 아들을 불러
"너는 장차 이 나라의 대들보가 되어 功名(공명)을 세워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를 영화롭게 하기를 바랐는데
너는 천한 기생과 사귀어 스스로 귀함을 버리니 웬일이냐"
하고 흐느껴 울었다.
유신은 엎드려 뉘우치고 어머니 앞에 맹세하기를
다시는 天官(천관) 집 근처에도 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천관사지 터 전경]
그러던 어느날 유신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그를 태운 말이 어느새 天官(천관) 집앞에 멈추었다.
이때 天官(천관)은 오랫동안 보지 못한 님을 보자 기쁘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한 감회를 억누르고 문앞으로 뛰어나왔다.
그러나 정신을 차린 김유신은 어머니와의 약속을 어기게 하고
대장부의 결심을 헛되이 한 죄가 모두 말 馬(마)의 죄라며
말의 목을 벤 뒤 뒤로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오고 말았다.
그후 天官(천관)은 유신을 사모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훗날 김유신장군은 사랑했던 옛 여인을 위하여 天官(천관)의
집터에 天官寺(천관사)란 절을 세우고를 그녀의 명복을 빌어 주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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