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14. 06:25ㆍ추천합니다/관광지와 휴게실
소재지 :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월악로 3823
단양팔경의 마지막 코스 구담봉과 옥순봉을 보기 위해
이곳에 도착해서 주차장에 주차를 해 놓고 우린 뒤쪽 전망대로 향했다.
그랬는데, 워낙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1박 2일 팀에서 벌써 다녀간 표시가 보이네요.
옛날에는 유람선을 타야만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전망대에서 구담봉과 옥순봉을 볼 수 있다.
[전망대로 가는 길 전경]
구담봉식당 지나야만 전망대와 유람선 선착장으로 갈 수 있다.
유람선을 탈 여유가 없으니 우린 곧장 전망대로 향했다.
[퇴계 이황과 두향의 사랑을 담은 안내판과 두향의 가야금 조형물 전경]
[두향의 가야금과 안내판]
조금 더 크게 해서 올리면 보일까 하였는데...
그래도 글씨가 적어서 읽기가 좀...
다시 크게 해서 올려봅니다.
[두향의 가야금 안내판 글 내용]
[전망대 뒤쪽의 단양팔경 안내도 전경]
다른곳은 다 다녀왔기에 안내도의 사진은 생략하고,
龜潭峰(구담봉)과 玉筍峰(옥순봉)은 어디가 어디인지 잘 모르겠기에
안내도의 사진을 담아 올려봅니다.
짐작하시고 봐주셔요.
[전망대 뒤쪽 안내도의 龜潭峰(구담봉)]
[전망대 뒤쪽 안내도의 玉筍峰(옥순봉)]
[전망대에서 담은 우측 전경]
전망대에서 담은 여러 사진을 올려봅니다.
누군가 설명해주시지 않으니, 구담봉이 어딘지 옥순봉이 어딘지...
잘 모르지만, 짐작으로 담아 소개합니다.
[옥순봉?]
솟아오른 산봉우리는 죽순처럼 깎아 세운 듯
기상천외하여 예로부터 '小金剛(소금강)'이라 불렀다.
[옥순봉?]
'玉荀峯(옥순봉)'은 행정상으로는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에 있다.
이곳이 단양팔경에 속하게 된 것은 명종 4년(1549)
단양 현감으로 부임한 退溪(퇴계)선생이 옥순봉을 단양에 속하게
해 달라고 청풍부사에게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자 옥순봉 석벽에
'丹陽同門(단양동문)'이라 새기면서 이곳을 단양의 관문으로 정했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하며, 솟아오른 천연적 형색이 희다 하여
玉筍峰(옥순봉)이라 하였다 한다.
[전망대에서 엇비슷이 마주한 전경]
'丹陽八景(단양팔경)'은 예부터 중국의
소상팔경보다 더 아름답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굽이쳐 흐르는 남한강상류에 도담삼봉, 석문
충주호의 절경 구담봉, 옥순봉
선암계곡에 자리한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과
운선구곡에 있는 사인암을 '丹陽八景(단양팔경)'이라 부른다.
[구담봉?]
남한강을 따라 깎아지른 듯한 장엄한 기암괴석으로
그 형상이 마치 거북같다 하여 '龜峰(구봉)'이라 하기도 하며,
물 속에 잠긴 부분의 바위에 거북이 등 모양이 비쳐 龜潭(구담)이라는 이름도 얻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선착장]
구담봉과 옥순봉을 자세히 살펴 보려면 아래쪽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돌아보면 절경과 마주할 수 있지만, 시간관계상 총총이 돌아왔습니다.
[멀리 보이는 앞쪽 암벽이 구담봉?]
구담봉의 풍광을 두고 중국의 소상팔경이 이보다
나올 수 없다며 극찬한 퇴계이황 선생의 말처럼 신비로운 풍경의
모습과 함께 장엄한 기암절벽의 모습을 보여준다.
[옥순봉?]
퇴계 이황과 두향이의 애틋한 사랑 옥순봉
"떠나시기 전 소첩의 가슴 한 쪽을 도려내고 가시옵소서.
그래야 대감을 향한 그리움이 떨어지겠나이다."
9개월이라는 짧은 임기를 마치고 풍기군수로 발령을 받아 떠나는
퇴계 선생에게 기생 두향이 남긴 절절한 한 마디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옥순봉?]
두 명의 부인을 먼저 떠나 보내고 아들마저 잃은 후
낙담하여 우울하게 보내고 있는 大碩學(대석학)을 애통하게 생각한
정조 임금이 퇴계가 48세 되는 해에 경치 좋은 단양 군수로 부임시키셨다.
단양 군수로 부임한 퇴계 선생에게 매화분을
선물하며 다가 온 여인이 18세의 기생 杜香(두향)이었다.
시문에 능하고 아리따운 상대 두향을 만나서 낙으로 삼고
소일하던 중, 충청도 지역 관찰사(도지사)로 친형인 李瀣(이해)가
부임하게 되자, 심성이 올 곧은 퇴계는 한개 도에 형제나 친인척이 함께
벼슬 할 수 없다는 원칙으로 친형에게 부담을 주지않으려고 부임 9개월 만에
경북 풍기군수를 자청하여 떠나기로 한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퇴계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운 뿐이다.
두향이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고는 시 한 수를 썼답니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 제
어느 듯 술 다 하고 님 마져 가는 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 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유람선 선착장]
떠나는 퇴계를 붙들고 두향은 속치마를 벗어 내밀고는....
이제 떠나면 영영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예감하고
글이라도 한줄 써주고 가기를 청한다.
死 別 已 呑 聲(사별이탄성)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生 別 常 惻 惻(생별상측측)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 없더라.) 라는 글을 남겼다.
어린 처녀의 앞길을 막지 않으려는 배려였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두향의 마음에는 퇴계 뿐이였습니다.
그 뒤 두향은 새로 부임한 군수에게 간청하여
官妓(관기)에서 자연인으로 호적을 바꾼다.
20여년이 지난 어느날 너무나 애틋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안부를 묻고자 전별시를 적은 치마를
퇴계선생에게 다시 싸서 보냈다.
두향의 속치마를 다시 받은 퇴계는 20년전에 써준
5언 절귀 뒤에 다음과 같은 7행시를 남긴다.
相 看 一 笑 天 應 許(상간일소천응허)
(서로보고 한번 웃은 것은 하늘이 허락한 것이었네.)
有 待 不 來 春 欲 去(유대불래춘욕거)
(기다려도 오지 않으니 봄날은 다 가려고 하는구나.)
이상을 예감한 두향은 안동으로 도산서원을 찾아갑니다.
아니나 다를까...퇴계는 타계하여 초상을 치루고 있었다 한다.
[전망대에서 인증샷]
가신 님의 문상도 못하고 단양으로 다시
돌아와 그 애절한 마음으로 강물에 투신하게 된다.
투신하기 전에 지인에게 자신을 꼭
강선대(예전에 퇴계선생과 놀던)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투신한지 이틀이 지난 후에 시신이 떠올라
杜香(두향)의 뜻대로 강선대에 묻히게 되었다 합니다
지금도 봄이면 단양군에서는 강선대에서
杜香(두향)을 위해 제사를 지내며 그 정절을 기념하고 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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