家家禮文(가가예문)

2015. 7. 26. 05:13살아지는 이야기/초아의 옛글 방

 

옛날 어느 양반이 한 고을을 지나다,
우연히 상놈의 집 제사 지내는 것을 보게 되었다.
무슨 음식인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을 祭床(제상)밑에다 놓고,
절을 하고 있었다. 하도 이상하여 제사가 끝난뒤에 그 주인에게 묻기를...

“무슨 음식을 제상위에 놓고 지낼일이지, 제상밑에 놓고 지낸단 말이냐?”
하였다. 그랬더니 그 주인 대답하기를
 
“그건 다름이 아니오라 개고기였사옵니다.
소생의 아비가 생전에 개고기를 무척 즐겼사온데,
죽었다고 입맛이야 변했을리 있겠습니까?
그런데 제 아무리 상것이지만 제상에 개고기 올린다는
말은 못 들었기에, 생각다 못해 제상밑에 놓고 지낸것입니다.
귀신이야 상위에 있으나 상밑에 있으나 찾아 잡수셨을 것 아닙니까?”
하더란다.


상놈의 이말을 들은 양반이 비로소 무릎을 탁 치면서

“옛말에 예출어정(禮出於情)이요 정출어근(情出於近)이라 하여
사람의 예의는 정으로부터 나오고 정은 가까운 데서부터 나온다
했으니, 너의 그 제례야 말로 참된 예절이로다.”
하며 감탄해 마지 않았다.

그 양반이 다시 다른 고을에 들렀을 때
또 어느 상놈의 집 제사 지내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온 가족이 제상앞에 늘어서서 초저녁부터 계속
절을 하는데, 한밤중 제사가 파할때까지 하염없이 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양반 생각하기를, 기제사의 경우 모든 제관이 다 같이 절을 하는것은
參神(참신)과 辭神(사신)이라하여 처음과 끝에 하는 두번 으로 족한 법이고,
이것이 家禮(가례)인데 무슨 절을 온 가족이 저리 한없이 하는가 싶었다.
 
그래서 제사가 파하기를 기다려
그 주인에게 그 까닭을 물었더니 그가 답하기를..

“양반님야 유식하니까 귀신이 언제 왔다 가는지 알아서
그 시간에 맞추어 절을 하시면 되지만, 저희같은 상놈이야 무식하니까
귀신이 언제와서 언제 가는지 알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밤새도록 이렇게 절을 하다보면 그 중에 한 번은
틀림없이 우리 아버지가 받았을게 아닙니까?”
하더란다.

이말을 들은 양반이 감복하여 탄식하기를....

“네 말이 옳구나! 예로부터 家家禮文(가가예문)이라 하여
집집마다 예법이 따로 있다더니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로다.”하였다.

이것은 안동지방에 전해져 내려오는 民譚(민담)이라 합니다.
비록 지금 어지러운 세태속에서 자꾸만 엷어져가는 
孝思想(효사상).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민화라고 생각합니다.

孝(효)란 특별하게 행하지 않아도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하는게 효라고 생각합니다.

앞의 두가지 예를 들었던 것 처럼 진심에서 우러난
부모님을 위한 생각이 바로 효의 근본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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