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1. 7. 06:33ㆍ살아지는 이야기/초아의 옛글 방
가계로 집안 일로 늘 바쁘셔서 힘들어해도, 도울 줄 몰랐습니다.
아프다는 핑계로 힘이 없다는 핑계로....
아프지 안은 날, 생기가 나는 날은...
단발머리 나폴 대며 고무줄놀이 공기놀이하느라 바빴지요.
어렸을 때나, 다 자라서까지 난 도와 줄줄 몰랐습니다.
참으로 한심한 철딱서리없는 딸이였지요.
그땐 정말 몰랐습니다.
엄마니까, 늘 그래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집안일로 늦게 가계에 도착하면 아버진 화내시고,
저녁에는 가계 일로 늦게 오셔서 할아버님 할머님께 역정 들으시며,
동동거리며 저녁을 지어드리면서도, 짜증한번 안 내시던....
늘 할아버지 할머님께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지요.
우리들이 속을 상하게 해도,
늘 엄마는 참아야만 하는 줄 알았지요.
엄마니까, 엄마이기 때문에.....
깍고 남은 사과 속 그것은 언제나 엄마 몫
맛있고 먹기 좋은 것은 식구들 차지,
깍아 놓은 사과 드시라고 해도,
먹을게 별로 남지 않은 사과 속 들고...
"엄마는 이게 좋아...이게 맛있어..."
그래서 늘 엄마는 그게 진짜 맛있어 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시집와서도 "울 엄마는 이걸 더 좋아해!!"
하면서, 내 딴에는 엄마를 생각해서 사과 속 내밀곤 했지요.
"응 그래 난 이게 젤 맛있어...."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딸이 무안 할까봐 서운한 표 한번 내시지 않으셨지요.
그러나 전 그때도 정말로 엄마는 그걸 좋아하시는 구나 생각했습니다.
엄마도 우리처럼 맛있는 거 맛없는 거 가릴 줄 아시는 줄 몰랐답니다.
내 배만 부르면 당연히 엄마의 배도 부른 줄 알던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들 먹이기 위해 늘 참았던 엄마를 생각 못 했지요.
어쩌다 저녁이 조금 늦어져도 엄마는 당신의 잘못이라기에....
난, 엄마가 정말 잘못 했나보다. 이렇게 생각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공경하시며, 손님들 맞이하며 가계일 보며.....
전천후 슈퍼우먼이 되어야만 했던 울 엄마
온 집안 일 엄마 혼자서 다 해야만 하는 줄 알았던 철부지였어요.
밖에서 속상하는 일 있어도,
엄마에게 화풀이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니까,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만 우리 집의 북이었습니다.
모두가 때려도 울지 못하는 북 이었지요.
엄마니까 그래야만 하는 줄 알고........
늘 당당하게 투정부리며 속없이 행동했지요.
당신이 가신 후 뒤늦게 깨닿고는.......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과 설픔에...
또 얼마나 당신을 원망하였는데요.
따끔하게 가르치지 않으시고, 너무 잘해주셔서
그랬다는 원망아닌 원망을 하며,
철없이 군 모든 잘못 세상떠난 엄마 탓으로 돌렸지요.
난 엄마라도 그렇게 못 해요.
엄마처럼은, 예전의 내 엄마처럼 못해요.
친구들이 그러더군요........지금도.......
"네 엄마 같은 분이 어디 있어!!"
"네 엄만 특별했어!!"
"특히 너 한태는.......더...."
옛말에 자식은 전생의 빚쟁이래요.
그래서 그 빚을 받기 위해 자식으로 태어난다고 하든걸요.
울 엄마 나 한태 무슨 빚을 그리 지셨기에,
끝없이 베푸시다 가셨을까요?
담 세상에 당신과 나 거꾸로 되어서,
당신이 빚을 받을 차례가 되어도 전 그 빚 다 값을 수 없을 겁니다.
도저히 값지 못하지요.
아니 영원히 값을 수 없는 빚을 전 지고 말았습니다.
엄마이기 때문에..꼭 자식에게 잘 해야 된다는 건 없지요.
그러나 전 예전엔 그래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당신은 이 세상 어느 어머니가 자신의 딸에게 해 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랑과 너그러움을 베풀어 주셨지요.
당신의 품안에서 옳고 그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는 법,
물러서는 법을 사랑을 배웠지요.
당신을 주장하지 안으시며,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밑거름이 되어주셨던.......당신
당신의 그 희생정신과 행동이 가랑비에 옷 젖어들 듯이,
알게 모르게 내게도 스며들게 하셨지요.
그러나 당신은 크나큰 한가지 실수를 범하셨습니다.
당신자신의 건강은 늘 뒷전으로 돌렸다는 것,
언제나 가족의 건강을 위해 손발이 다 닳도록 수고 하셨지만,
당신자신의 건강을 챙기지 않았다는 죄 가장 큰 실수였답니다.
50을 겨우 넘긴 초반기에 당신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지요.
지금의 제 나이보다 10여년이나 아래 인 나이에..............
가신지 벌써 40년이란 세월이 흘려갔지만,
아직도 피멍처럼 당신은 내 가슴속에 남아있답니다.
어쩌다 우연히 스치기라도 하면........
또다시 당신생각으로 오랫동안 가슴앓이를 한답니다.
죽어서도 차마 못 잊을 당신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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