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주년 3.1절 아침해가 비치는 곳 조양회관

2022. 3. 1. 06:00뿌리를 찾아서/忠. 孝. 烈

[주차장에서 담은 조양회관 전경]

 

애국선열의 발자취를 따라 들려보며 숭고한 독립정신과

애국지사의 조국사랑을 새겨봄도 뜻깊은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지난 2002년 향토 항일운동의 뿌리인 조양회관의 정신을 살리기 위해 기념탑을 건립키로 하고

성금 모금을 시작하여, 대구, 경북 항일독립운동기념탑이효목동 망우공원 내에 세워졌다.

 

3.1절을 맞이하여 항일독립 운동 기념탑과 뒤쪽에 있는 조양회관에 다녀왔습니다.

오늘의 우리들이 있기까지 선조 님들의 목숨도 아끼지 않으시고 버리셨던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조양회관]

 

朝陽(조양) '조선의 빛이 되어라' 라는 뜻과

'아침해가 비치는 곳'이라는 뜻으로 건물 이름을 조양회관이라 하고,

이때부터 대구 지역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계몽운동을 펼쳐나갔다.

 

[ 동암 서상일 좌상과 뒤쪽 항일독립운동기념탑 전경]
[동암 서상일 선생 좌상 / 제작 김익수]
[좌상 뒤쪽 안내글]

 

조양회관의 걸립 발기자는 東庵(동암) 徐相日(서상일, 1887~1962)이다.

그는 1887년 이 지역 세력가이자 부농이었던 徐鳳基(서봉기)의 아들로 대구에서 태어나셨다.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09년 安熙濟(안희제), 金東三(김동삼), 尹炳浩(윤병호) 등과

무장항일투쟁 단체인 大東靑年團(대동청년단)을 조직, 독립운동을 펼쳤다.

 

일제가 소위 '문화통치'를 실시하고자하매, 고향으로 내려와 동지들을 규합해 대구구락부를 만들었다.

이 단체가 朝陽會館(조양회관) 건립의 모체가 되었다.

 

[출입구에서 담은 전경]
[대구 평광동 광복소나무 / 정시식 /2020. 4.20 / 대구평광동 첨백당]

 

희로시마에 원자폭탄 투하로 세계대전이 종료되었다는 소식이

이 심심산골 평광동에도 날아들어 마을 어른들이 첨백당에 모여 기쁨을 나누었다.

 

그러다가 우한성씨(단양 우씨 첨백당 문중의 종손)가 말석에 앉아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젊은이들에게

'오늘 해방을 기념하는 나무를 심자. 너희들, 산에 가서 소나무 몇 그루 캐 오느라'고 했다.

우채정을 비롯한 다섯 명을 인솔하여 세 그루의 소나무를 캐 와서 마당 한가운데 심었다고 한다.

그리고 논두렁 물막이 들에 우채정씨가 전서로 '檀記 4278. 8. 15 解放記念'이라고 쓴 글을

우경정씨가 표석에 새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평광동에 터를 잡은 우씨들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어

이 광복소나무를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고 있다.

 

기념으로 심은 소나무 세 그루 중 한 그루는 죽고 한 그루는 옆으로 누워 자람이 좋지 않아서 베어냈다고 한다.

광복소나무 뒤의 첨백당에는 항상 태극기가 걸려 바람에 나부끼면서 대한민국의 번영을 염원하고 있다.

(위 사진속 안내글이 작아 읽기 어려울것 같아 옮겨 적음)

 

[대구 경북 독립운동 전시실 출입구]
[전시실 내부 전시자료 전경]
[전시실 내부 전시자료 전경]
[전시실 내부 전시자료 전경]
[전시실 내부 전시자료 전경]
[구국 독립운동의 물꼬를 튼 왕산 허위 선생]
[구국 독립운동의 물꼬를 튼 왕산 허위 선생]

 

영국 "데일리 메일"의 기자 멕켄지가 촬영했다.

'한국의 비극'에 수록된 사진이다.

1908년 왕산 허위가 지휘했던 2차 서울탄환작전 때의 의병 사진이다.

 

[전시실 내부 전시자료 전경]
[전시실 내부 전시자료 전경]
[전시실 내부 전시자료 전경]
[전시실 내부 전시자료 전경]
[영원한 민족의 스승 도산 안창호 선생]
[영원한 민족의 스승 도산 안창호 선생]
[전시실 내부 전시자료 전경]
[전시실 내부 전시자료 전경]
[전시실 내부 전시자료 전경]
[김구 선생]
[전시실 내부 전시자료]
[전시실 내부 전시자료 전경]
[안중근 의사 만시]
[전시실 내부 전시자료 전경]
[1층 복도 벽면 대구. 경북 독립유공자 전시 자료 전경]
[3.1 운동]
[3.1 운동]
[국내 항일운동]
[의병]
[의병]

 

조양회관 1층에는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상황이 전시되어 있고,

2층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활동사진과 태극기 변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하였다.

1층은 둘러보았으니, 이젠 2층을 둘러보기로 하겠습니다.

 

[2층 강의실 겸 전시실 전경]
[2층 강의실 겸 전시실 전시자료 전경]

 

대구지역의 민족 지도자들이 민중을 깨우치고 민족혼을 불어넣고자 건립한 건물로

현재 광복회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독립운동 사료전시실도 새롭게 단장하여

시민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호국정신의 산교육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강의실 벽에 걸린 선열님들의 사진과 아래쪽 전시자료 사진도 함께 올려봅니다.

 

 

광복회는 일제가 명성황후를 시해하였던 1895년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국내외에서 항일독립운동을 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중 정부로부터 훈. 포장을 받은 분과

그 후손들이 회원이 되어 민족정기를 선양하고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설립한 공법인

단체로 서울에 광복회 본회, 전국 광역시와 도데 지부, 시. 군. 구에는 지회를 두고 있다.

 

[2층 강의실 겸 전시실 전시자료 전경]
[2층 강의실 겸 전시실 전시자료 전경]

 

이렇게 숫한 사람들의 목숨으로 우린 지금 이 땅에서 평화를 누리고 살고 있지요.

이 보다 더 숫하게 많은 사람들의 목숨또한 드러나진 않았지만...더 많았겠지요.

그분들께도 감사의 마음으로 머리를 숙였습니다.

 

[2층 강의실 겸 전시실 전시자료 전경]
[2층 강의실 겸 전시실 전시자료 전경]
[역사속 문화재 태극기 변천사 전시실 출입구 전경]
[역사속 문화재 태극기]

 

독립기념관 특별기획 순회전 문화재 태극기 사진전

특별기획 순회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지요.

소중하게 담아와서 소개합니다.

 

[소전시실 태극기 사진전 전시 자료 전경]
[소전시실 내부 태극기 전시 자료 전경]
[소전시실 내부 태극기 전시 자료 전경]

 

대구 독립운동의 대표적 유적지이다.

일제강점기에 중국, 만주 등지에서 항일민족운동을 펼치던

徐相日(서상일,1887∼1962)이 대구에서 大邱俱樂部(대구구락부)라는

친목단체를 결성하여 지역 청년들을 교육하는 한편 민족의식의 구심이 될 회관 건립을 추진하였다.

 

이 건물은 1922년 4월 착공하여 7개월만에 중공되었다.

이 건물은 압록강에서 가져온 낙엽송을 사용했고, 붉은 벽돌로 외벽을 감싼 2층 건물이며,

그 외에 단층 부속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본관만 남고 나머지는 철거되었다.

 

현재 망우공원 내에 있는 조양회관은 원래 중구 대신동 달성공원 앞에 있었으며,

8.15광복 후에는 원화여자고등학교의 도서관, 교무실로 사용되다가 1982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조양회관 건물 앞쪽에서 담은 풍경]

 

아랫쪽 항일 독립운동 체험학습관에 전시된 전시 자료와

항일독립운동기념탑과 주변 소개는 내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기까지 참으로 많은 선조님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한

이 조국을 3.1절을 맞이하여 잠시나마 되새겨보며 오늘을 알차게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