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문화체험관 桂山藝家(계산 예가)

2021. 5. 31. 06:00문화산책/여러 종류의 민속자료

[이상화 고택에서 담은 계산예가 젼경]

 

개화기의 민족 저항시인 이상화 고택을 소개하였으니,

이제는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는 계산예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상화 고택에서 담은 계산예가]

 

桂山藝家(계산예가)는 시간 속에서 만나는

어제와 오늘이고, 공간 속에서 만나는 옛날과 오늘입니다.

계산예가는 나를 찾는 여행의 시작입니다.

 

대구근대골목투어(근대골목투어)의 제2코스에 자리하고 있는 계산예가의 홍보글

 

[계산예가 설명글과 배치도]
[이상화 고택쪽에서 담은 계산예가]

 

이상화, 서상돈 고택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2012년 4월 18일 개관하였다.

 

계산동은 조선조 대구 읍성 남쪽 성곽을 끼고 형성되었던

자연부락이며, 동네에 있던 산 이름, 계산을 따서 마을 이름을 삼았다고 한다.

 

앞쪽에도 한복체험관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무료로 대여도 해 준다.

계산예가쪽에 있는 한복체험관은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 무료로 대여해주는 곳도 있지만,

유료로 대여해주는 곳도 있다. 물론 유료로 빌리는 옷이 더 고급지고 화려하겠지요.^^

 

[계산예가 전경]

 

시설은 한옥전시관, 체험실, 영상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까운 옛날에 대한 기억의 재생과 잊혀졌던 예술인의 당시 모습을

찾아 함께 하는 공간이라 합니다.

 

영상관은 건너 뛰었습니다.

직접 들리시는 분들은 영상관에도 들려보시면 더 좋겠지요.

 

계산예가와 마주하고 있는 담위 설치해 놓은 아이들의 모습이 정겹다.

 

[계산예가 현판]

 

정면 대청 맞은편에는 계산동의 근대 그림과 사진을 편집영상으로 보여주는 곳이며,

지금의 계산동이 되기까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모습이 한장 한장 사진과 그림으로 볼 수 있다.

 

[그림과 사진엽서로 만나는 대구 근대]

조금더 자세히 보시려면 클릭하셔서 보셔요.^^

 

[퀴즈로 체험하는 근대문화 / 문학 음악 미술]

근대문화체험실을 들어서면 근대문화인물들의 작품을 게임으로 풀어보는 체험실도 있다.

 

[대구 중구의 근대건축물과 아래쪽 모형]

근대문화골목의 주요 건축물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축소모형으로 제작, 전시해 놓은 공간이다.

 

[대구 중구의 근대건축물 안내도]
[스윗즈 주택 / 챔니스 주택]

 

청라언덕이라 불리우는 동산에 펼쳐진 아름다운 서양식 정원과 주택이 있다.

 

이 주택은 1893년경부터 대구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미국인 선교사들이 자신들이 거주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도심에 위치한 야트막한 언덕, 초록빛 담쟁이 덩쿨 가득한

붉은 색 벽돌 건물과 고풍스러운 서양식 정원이 펼쳐진 가운데 선교사 스윗즈,

챔니스, 블레어 주택 3채가 선교, 의료, 교육역사 박물관으로 운영 중이다.

 

[블레어 주택 / 계산성당]

 

서울과 평양에 이어 세 번째로 세워진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적벽돌과 회색 벽돌이 조화롭게 섞인 외관, 원형 스테인드글라스가

특히 아름답다.

 

계산성당 마당에는 '이인성 나무'로 이름 붙여진 감나무가 있는데,

이는 대구 출신 화가 이인성(1912~1950)이 그린 '계산동성당'에 나오는 나무다.

 

[이상화 고택 / 서상돈 고택]

 

이상화 고택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항일문학가 이상화 시인이

살던 집으로 본채와 사랑채로 나뉜 'ㄱ'자 한옥이다.

 

장독대와 재래식 펌프가 보존되어 있으며 그의

마지막 작품 '서러운 해조'가 탄생한 역사적인 장소이다.

 

서상돈 고택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섰던 조선 말기의 기업인이자

민족운동가였던 서상돈의 고택을 복원한 건축물이다.

 

서상돈은 당시 대구 최고의 부자였다는 말이 민망할

정도로 소박한 집으로, 그의 청빈한 삶을 짐작할 수 있다.

 

[에코한방웰빙체험관 구 교남 YMCM 회관]

 

에코한방웰빙체험관

1960년대 지어진 대구의 현대적인 병원 건물을

리모델링 및 부분증축한 건축물이다.

 

자연과 환경에 대한 전시공간, 체질에 맞는 한방차를 마시는

한방찻집, 안마, 자연영상, 음악, 향기 등 오감만족을 통해

심신휴식을 추구하는 힐링체험 공간으로 이루어진 전시 체험관이다.

 

[구 제일교회 / 화교협회]

 

구 제일교회

적벽돌조 고딕 건축물로 사료적 가치가 높은 구 예배당은

대구 유형문화재 제30호이며 현재 선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구 경북 지방 최초의 기독교회로 설립 초기 동산의료원의

전신인 재중원을 세워 의료활동을 했고 대남학교와 신명여학교를

설립해 대구 근대화에 힘썼다.

 

화교협회

대구의 대표적인 근대 건축물 중 하나로 당시 대구 최고의 부호였던

서병국의 주택으로 중국 건축가 모문금이 설계와 시공을 맡았다.

 

현재는 대구화교협회 사무실로 쓰고 있다.

 

[생애사 열전]
[생애사 열전]

 

생애사 열전 책 대여가 가능하다합니다.

대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관광안내소로 문의하시면 된다 하네요.

 

[계산예가에서 만나는 대구의 근대예술인들]

 

대구의 예술가들과 인물들을 그래픽 패널과 터치 키오스크로 만날 수 있는 전시관입니다.

학교, 음악, 문학, 미술 등으로 나뉘어 옛 자료 사진을 진열해 놓았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장국과 분단, 6.25전쟁을 거치는 동안

계산동 주변은 전국각지에서 몰려든 문인, 화가, 음악인들로 분비는

명실상부한 문화중심지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시대를 대표할 만한 문예지 간행이나 동인활동, 미술전람회, 음악회도 줄을 이었지만,

20세기 후반 급격한 산업화과정이 진행되면서 사람들은 흩어지고 미처 기록되지 못한

업적들은 기억에서 멀어졌다고 합니다.

 

이 전시실은 이렇게 묻혀버린 근대 예술인들의 당시 생활공간과 활동상을 찾아 관람객과 함께 호흡하는 공간이다.

 

[계산예가에서 만나는 대구 근대예술인들]
[전시관 내부 전경]

 

[학교]

 

해성학교. 대남학교. 교남학교. 계성중학교

 

[해성학교]

 

서화가 서동균이 수학했던 해성학교 1908년 계산성당 안

해성재를 해체한 자리에 성립학교란 이름으로 개교했다가 교명을 바꾸었다.

 

[계산성당 안에 있었던 해성학교 여자부 교사]

 

①은 1910년 여자부가 부설되면서 신축한 건물

②는 1916년 증축했다.

 

[1926년 희원학교 제2회 졸업생]

작곡가 박태준과 현제명이 수학했던 대남학교(종로초등학교의 전신)는 이 학교의 옛 이름이다.

 

[대남학교]

 

1917년부터 희원학교(남자부)와 순도학교(여자부)로 운영되던

대남학교는 1926년 사립 희도보통학교로 교명을 다시 바꾸었다.

 

[교남학원의 전신인 우현서루]

운영자 이일우의 손자가 고증한 것을 김일한이 그렸다.

 

[시인 이상화, 화가 박명조와 서동진이 교사로 근무했던 교남학원]

사진은 중등과 1회 졸업생들이다.

 

[1907년 계성중학교 재학생들]

 

1906년 개교할 당시 남문안예배당 내

선교사 사택 일부를 임시 교사와 기숙사로 사용했다.

 

[1915년 계성중학교 재학생과 교직원들]

당시 음악가 박태준이 1911년 현제명이 1913년에 입학해서 재학 중이었다.

[문학 / 터치스크린]

터치를 하면 문학에 대한 것을 알아 볼 수 있다.

 

 

 

[문학]

 

[개화기에 잡지들 / 해방 직후 대구에서 발간된 문예지. 잡지들]

 

개화기에 발간된 잡지들

 

위 좌측부터

1913년 최남선이 창간한 어린이잡지

1920년 창간된 종합잡지

1922년 창간된 순수문예동인지

1926년 강제 폐간된 '개벽' 대신 간행된 종합잡지

 

해방 직후 대구에서 발간된 문예지. 잡지들

 

아래 좌측부터

1946년 향토시인 이윤수가 창간한 시 전문 동인지

8.15해방 직후 대구에서 간행된 종합잡지

6.25 직후인 1950년 7월 종군문인단이 발간한 시집

 

[미술]

 

[1932년 <제3회 향토회전>이 열렸던 조양회관 입구]

앞줄 왼쪽부터 서병기. 서동진. 박명조. 최화수

 

[조양회관]

 

1922년 독립운동가 서상일이 지역 청년들에게

민족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달성공원 앞에 건립했던 조양회관

 

[1936년 <제1회 남조선미술전람회>가 열렸던 경상북도상공장려관]

김용조. 박명조. 이인성. 최화수 등이 출품했다.

 

[개인전 및 단체전]

 

위에서 좌측부터 차례로

1926년 개최된 <박명조 개인전> 현수막과 작품들

1927년 개최된 <제1회 서동진 수채화 전람회> 자료

1930년 개최된 <제1회 향토회전> 팸플릿

1928년 개최된 <제2회 서동진 수채화 전람회>

 

[미술 / 터치스크린]

[음악]

 

[대구 최초로 창단되었던 민간합창단, 대구성가합창단의 연주회]

1938년 대구공회당에서 열렸다.

 

[음악가들의 연주회장으로 애용되었던 대구공회당]

현재의 대구시민회관 자리에 있었다.

 

[음악 / 터치스크린]
[독창회. 음악가 / 예술인의 공동작업]

 

위쪽좌측부터

1930년대 전국순회 공연 중 평양 백선행기념관에서 열린 권태호 독창회

1928년에는 대구 제일소학교(옛 중앙초등학교) 강당에서 독창회를 개최한 바 있다.

 

1920년 숭실전문학교에 다닌 계성학교 출신들로 구성한 교남 4중창단

앞 중앙이 박태준. 시계방향으로 현제명. 김재범. 권영화

 

아래쪽 좌측부터

이인성이 표지그림을 그린 '문학' 1950년 6월호

그는 다섯 달 뒤인 11월 사망했다.

 

월북한 동시작가 윤복진의 동시에 박태준이 곡을 붙여 1939에 발간한 동요집

책 뒷면에 이인성이 그린 판화가 붙어 있다.

 

[사라져버린 공간]

 

좌측

시간 속에 묻혀버린 1940년대 남산동 풍경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마을에는 한때 시인 이육사가 살았다.

왼쪽 위에 있는 누각은 관덕정

 

우측

1936년 남산동 남산병원 3층에서 문을 열었던 이인성향화연구소 팸플릿

1978년 도로에 편입되었다.

 

[전시관 내부 전경]
[근대문화체험관 계산예가]
[제2코스 근대문화골목 안내도]

 

대구 도심 관광에서 빠질 수 없는 곳

바로 근대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있는 대구 중구 근대골목

대구의 근대사를 느낄 수 있는 골목투어로도 유명하다.

 

근대문화체험관 桂山藝家(계산 예가) 소개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