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김씨 태산군 입향조 金繼志(김계지) 묘

2019. 6. 18. 05:41뿌리를 찾아서/묘역 답사

 

소재지 :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광산김씨 태산군 입향조 金繼志(김계지) 묘역 전경]

[광산김씨 비석군]

[設壇事蹟碑(설단사적비)]

[業績碑(업적비)]

[支出現況碑(지출현황비)]

[功績碑(공적비]

[재실(영모재) 와 관리소 전경]

 

松谷(송곡) 光城君(광성군) 金繼志(김계지)
출생지는 모르나 그가 잠든 곳은 전북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원촌이다.

 

[재실(영모재)]

 

이곳에는 정부인 남원양씨 묘도 같이 있고, 신도비도 있다.
그의 호에 걸맞게 소나무로 둘러싸인 곳에 재실인 永慕齋( 영모재)가 있다.

 

[재실 앞 광산김씨 비]

[광산김씨 태산군 입향조 金繼志(김계지) 묘역 전경]

 

金繼志(김계지) 고려 후기의 무신, 초명, 향. 호, 松谷(송곡).
아버지는 千牛衛海嶺別將(천우위해령별장) 都卓(도탁)이며,
어머니는 興德郡夫人(흥덕군부인) 曺氏(조씨)이다.

 

[광산김씨 태산군 입향조 金繼志(김계지) 묘역 전경]

 

광성군 김계지는 본래 이름은 金逈(김형)이었으나
임금의 뜻을 이어간다는 뜻으로 '金繼志(김계지)'란 이름을
임금으로부터 하사 받았다고 한다.

 

[광산김씨 광성군파 선조 合祭床(합제상) 전경]

[광산김씨 광성군파 선조 合祭床(합제상)]

[좌측에서 담은 壇碑(단비) 전경]

[金公承祖(김공승조) 壇碑(단비) 전경]

[壇碑(단비)]

 

壇碑(단비)에는
千牛衛海領別將金公承祖(천우위해령별장김공승조)
配興德郡夫人曺氏(배흥덕군부인조씨) 之壇(지단) 라 새겨져 있다.

 

[壇碑(단비) 전경]

[金 須(김 수) 단비]

[金台鉉(김대현) 단비]

[金光轍(김광철) 단비]

[우측에서 담은 壇碑(단비) 전경]

[우측옆에서 담은 金繼志(김계지) 墓(묘) 전경]

 

공은 태종 3년(1403) 상호군으로서 경상. 전라. 충청도
敬差官(경차관)으로 파견되어 병선을 점검하고 萬戶(만호).
千戶(천호) 등의 근무상황을 규찰하였다.

 

406년 左軍摠制(좌군총제) 재직중 조사의의 난 평정에
기여한 공으로 군공 1등에 등제되면서 토지와 노비를 하사받았고,
곧 전라도병마도절제사로 파견되었다.

 

[좌측 文人石(문인석)]

[우측 文人石(문인석)]

[長明燈(장명등)]

[金繼志(김계지) 墓(묘)]

 

1407년 삼군총제서로 명나라에 관마진헌을 위한
進獻官馬色(진헌관마색)이 설치되면서 그 提調(제조)를 겸임하였다.

 

1408년 전라도도절제사 때에 천거한 만호 朴光桂(박광계).許承亮( 허승량)이
탐관오리로 죄를 받게 되자 천거의 책임을 추궁당한 뒤 면직되었다.

 

그러나 곧 풍해도(지금의 황해도) 병마도절제사 겸 판해주목사에 기용되었다.

 

[墓碑(묘비)]

 

이곳에는 2기의 묘비가 있었다.
한기는 묘 바로 옆쪽에 또 한기는 좌측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좌측 墓碑(묘비)]

 

공의 공적을 황희의 상소로 田結奴婢(전결노비)를 下賜(하사)하였다.
先王(선왕)의 뜻을 이루었다 하여 王(왕)이 賜名(사명)을 繼志(계지)라 하시니
御賜田民(어사전민)이라는 文券(문권)을 지어 지금까지 전하여 온다.

 

光城君(광성군)에 封(봉)해졌다.
配(배)는 정부인 南原楊氏(남원양씨)이다.

 

[묘 뒤쪽 土地之神(토지지신)]

[송곡 묘 뒤에서 담은 안산 전경]

 

1409년 田獵軍(전렵군)의 수를 加定(가정)하고 子弟牌(자제패)를
만든 뒤 이들의 赴防(부방)을 면제하게 한 일로 다시 면직되었다.


전국에 걸친 11도병마도절제사의 설치와 함께
다시 강원도병마도절제사에 서용되었으며, 1410년에 사직하였다.
무예에 능하였고, 태종의 신임을 받으면서 경. 외의 군정에 기여한 바 많았다.


1410년 2월 29일 태산있는 집에서 공이 죽으니,
태종은 내시를 전라도 태산군까지 내려보내 조문을 하게 했으며,
전라도 관찰사에게 명하여 장사를 후하게 치르게 하였다 한다.

 

[次子(차자) 金瀋(김심) 墓(묘) 전경]

 

바로 아래쪽에는 어느분의 묘인지 묘비가 세워져 있지 않아 통과합니다.
그 아랫쪽은 金繼志(김계지)의 次子(차자)인 金瀋(김심)의 墓(묘)가 자리하고 있다.

 

[墓碑(묘비)]

[묘역 맨 아랫쪽 묘에서 담은 전경]

 

묘역 맨 아래쪽 묘에도 상석과 망주석은 있으나,
묘비가 세워져 있지 않아 통과합니다.

 

[광산김씨 태산군 입향조 金繼志(김계지) 묘역 전경]

 

이곳이 명당이여서인지, 큰 아들 金滓(김재) 광산군 이조판서,
둘째 아들 金瀋(김심) 호조판서, 셋째 아들 金澮(김회) 한성판윤,
넷째 아들 金演(김연) 형조판서, 다섯째 아들 金沈(김침) 호조참판,
막내 여섯째아들 金渾(김혼) 병조판서 벼슬을 하였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