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산송씨 입향조 宋演孫(송연손) 墓(묘)

2019. 5. 30. 06:11뿌리를 찾아서/묘역 답사

 

소재지 :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379

 

[永慕齋(영모재) 옆 전경]

 

이곳은 不憂軒(불우헌) 丁克仁(정극인) 墓(묘)를
찾아가는 길에 길을 잘못 들여 우연히 들리게 되었다.

 

처음엔 목적지가 아니었기에 실망을 하였지만,
묘소를 둘러보니, 범상찮은 기운이 느껴져서 그냥 돌아오지 않고,
휴대폰에 소중하게 담아왔다.

 

[永慕齋(영모재) 현판]

[永慕齋(영모재)]

 

그때 담아 온 여산송씨 입향조 송연손 재실과 묘소를 소개하겠습니다.

 

여산송씨 입향조 宋演孫(송연손) 재실

永慕齋(영모재)를 지나 조금 더 오르면 7~8기의 묘소가 있다.
그 중간쯤 되는 지점에 송연손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송연손 묘소 초입에서 담은 전경]

 

이곳 묘역에는 망두석이 초입에 2기가 세워져 있으며,
그 2기의 망주석이 묘역를 지키는 수문장 역활을 하고 있는 듯하다.

 

[宋 棆(송 륜) 묘 전경]

[宋 棆(송 륜) 墓碑(묘비)]

 

맨 앞쪽 墓碑(묘비)에는
軍資監奉事礪山宋公諱棆之墓(군자감봉사여산송공 휘 륜 지 묘)
配位 端人道康金氏祔(배위 단인 도강김씨 부) 라 새겨져 있지만,
이분에 대해서는 검색을 해 보았지만, 찾을 수 없어서 그냥 통과 합니다.

 

[2번 째 묘]

 

묘앞에 세워진 묘비가 신도비처럼 웅장해서 유명인인듯 한데...
제 짧은 지식으로는 알 수 가 없어서 그냥 통과합니다.
남편에게 물어보면 되겠지만, 여자가 묘소 소개를 하는것을
약간 못마땅해 하시기에 물어보지 않고 그냥 담아온 사진으로만 소개합니다.

 

[2번째 墓碑(묘비) 앞면]

[2번째 墓碑(묘비) 뒤면]

[3번째 묘 의인 청도김씨 묘]

[3번째 청도김씨 묘비]

 

3번째 묘비에는
'宜人淸道郡金氏之墓(의인청도군김씨지묘)' 라 새겨져 있지만,
어떤 분이신지는 알 수 없기에 이곳도 통과 합니다.

 

[4번째 通德朗(통덕랑) 宋 梴(송 천) 묘 전경]

[通德朗(통덕랑) 宋 梴(송 천) 묘]

[通德朗(통덕랑) 宋 梴(송 천) 묘비]

 

묘비에는
通德朗礪山宋公輝梴之墓(통덕랑여산송공휘천지묘)
配位恭人彦陽金氏(배위 공인언양김씨)라 새겨져 있으며,
앞쪽에는 문인석 2기가 세워져 있으나 이곳도 검색을 해 보았으나
찾지 못하여 통과 합니다.

 

[ 宋 梴(송 천) 묘 좌측 문인석]

[ 宋 梴(송 천) 묘 우측 문인석]

 

宋 梴(송 천) 묘 뒤쪽이 바로 여산송씨 입향조 송연손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宋演孫(송연손) 신도비와 묘 전경]

 

송연손은 세조 6년(1460)~중종 3년(1508)
조선 전기 문신. 자 善源(선원), 본관 礪山(여산).


태인현 동촌에서 출생하였는데 지금의 전라북도 井邑市(정읍시) 옹동면 출신이다.
증조부는 典書公(전서공) 宋禧( 송희), 조부는 宋繼性(소계성), 부친은 宋復利(송복리)이다.


성종 17년(1486) 進士試(진사시)에 합격한 뒤 벼슬은 濟用監主簿(제용감주부)와
谷城縣監(곡성현감)을 거쳐 軍資監主簿(군자감주부) 龍潭縣令(용담현령)을 지냈다.
중종 1년(1506) 中宗反正(중종반정)시에는 중종이 潛邸(잠저)에 있을 때 師傅(사부)였던
인연으로, 靖國原從功臣(정국원종공신)에 올랐다.
중종 3년(1508) 韓山郡守(한산군수)로 나아가 관아에서 별세하였다.


인종 1년(1545) 純忠補祚功臣(순충보조공신) 礪原君(여원군)에 追贈(추증)되었다.
文章(문장) 詩畵(시화)에 능하였으며, 특히 詩詞(시사)에 뛰어나
'湖南別曲(호남별곡)' 10章(장)이 많이 불리워진다.


아들 셋을 두었는데 宣傳官(선전관) 宋世球(송세구) 校理(교리) 宋世琳(송세림)
吏曹判書(이조판서) 宋世珩(송세형)이다.

 

[宋演孫(송연손) 신도비 앞면]

[宋演孫(송연손) 신도비 뒤면 윗쪽 중간 옥토끼]

 

신도비 뒤면에 새겨진 계수나무 아래 방아찧는 옥토끼가 새겨져 있다.
신도비에서 이런 문양을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기하기도 하였지만, 그땐 담아올 수 없었다.
신도비 앞쪽은 쉽게 담을 수 있었지만, 뒤쪽은 비탈진 수풀이 우거진 곳이라
담기가 쉽지 않아 포기하고 돌아왔는데, 돌아와서 검색을 해보니
이 옥토끼 문양이 특이해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위에 올린 뒤쪽 옥토끼 문양 아래쪽은 파도을 의미하며
옥토끼 문양 위쪽은 하늘의 구름을 표현한 것이라 합니다.


이 사진은 그 다음 주 남편이 풍수회원들과 함께 답사가서 담아온 사진입니다.
보슬비가 부슬부슬내려 안그래도 가파른 곳에 세워진 신도비 뒤면을 담기 어려워
옥토끼 부분만 담아왔네요.
그것도 어디에요.
얼른 뚱쳐 이곳에서 소개합니다.^^

 

[宋演孫(송연손) 묘 전경]

[宋演孫(송연손) 묘비]

 

묘비에는
通政大夫韓山郡守宋公之墓(통정대부한산군수송공지묘)라 새겨져 있다.

 

[송연손 묘 뒤쪽 묘 전경]

 

이곳 묘비의 비신은 사라지고 없고,
비좌와 상석만 쓸쓸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누구의 묘인지 알 수 없네요.

 

[비좌]

 

도난을 당했는지... 누군가가 일부러 파손을 하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宋 儆(송 경 묘]

[宋 儆(송 경) 墓碑(묘비)]

 

墓碑(묘비)에는
生員礪山宋公諱儆之墓(생원여산송공휘경지묘)
配位 慶州李氏祔(배위 경주이씨부)라 새겨져 있다.

 

[송 경 묘 뒤쪽 묘 전경]

[묘비]

 

비신에 새겨진 글이 심하게 마모 되어 누구의 묘인지 알 수 가 없다.
묘앞쪽에 문인석 2기가 세워져 있는것을 보면 유명인인듯 하지만... 통과 합니다.

 

[우측 문인석]

[좌측 문인석]

[반곡 조세영 묘와 앞쪽 신도비 전경]

 

宋世珩(송세형) 조선전기 예조참판, 호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獻叔(헌숙), 호는 盤谷(반곡)

 

아버지 군수 宋演孫(송연손). 어머니는 金甫添(김보첨)의 딸이다.
형은 교리 宋世琳(송세림)이다.

 

[宋演孫(송연손)의 아들 盤谷(반곡) 宋世珩(송세형) 묘]

 

문장에 능했으며 중종 19년(1524) 생원시에 합격하고,
이어 성균관에서 수업하면서 진사시에도 합격하였다.


1528년 진사로서 使行貿易(사행무역)의 폐단 등 時弊(시폐)를 상소하여 거의 모두 채납시켰다.
1532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承政院注書(승정원주서)로 발탁되었으나,
金安老(김안로)등에게 배척되어 크게 진출하지 못하였다.


중종이 潛邸時(잠저시) 아버지 송연손이 중종의
師傅(사부)였던 관계로 어려서 중종과 같이 지낼 때가 많았다.
뒤에 왕위에 오르자 중종이 이를 잊지 않고 자주 불러 안부를 물었는데,
김안로 등은 그들의 간사한 행동의 정상이 위로 알려질 것을 염려, 모함하고 배척하였다.

 

[宋世珩(송세형) 묘비 앞면]

 

삼사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고, 1542년 弘文館應敎(홍문관응교)에 올랐다.
이 때 李滉(이황)과 함께 趙光祖(조광조)의 伸寃(신원)을 청했으나 실현되지 못하였다.

 

[宋世珩(송세형) 묘비 뒤면]

 

이조판서를 연임하던 중 병사하였다.
문장에 능하면서 행정 능력도 있었는데, 특히 재정에 밝아 시폐 개혁에 힘썼다.

 

[宋世珩(송세형) 신도비 앞면]

[宋世珩(송세형) 신도비 뒤면]

[맨 뒤쪽 조세형 묘 뒤에서 담은 안산 전경]

 

좀 더 상세히 알려드리려 하였지만,
더 이상은 제 짧은 실력으로는 알려드릴 수가 없습니다만,
최선을 다해 정리해서 소개하였으니 양해바랍니다.

 

여산송씨 입향조 宋演孫(송연손) 墓(묘) 소개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