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東宮(동궁)과 月池(월지)

2019. 2. 21. 06:08문화산책/정자와 누각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517

 

[경주 동궁과 월지 출입구 전경]

 

경주는 천년의 고도라고 주로 말한다.
약 천 년 동안 신라의 도읍이었으며, 단 한 번도 도읍지를 옮기지 않았다 한다
그래서 신라의 역사 유적, 유물들이 도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경주는 자주 다닌곳이기도 하여 많이 알고 있다 생각을 하였는데,
그렇지 못하였나보다.

 

동궁과 월지로 가자 하는데, 낮선 이름이라 뭐지?
하였는데, 와서 보니 눈에 익고, 귀에 익숙한 雁鴨池(안압지) 였다.

 

[동궁과 월지 안내판 글 내용]

[동궁과 월지 안내도]

 

1. 복원건물(제1건물) 2. 복원건물(제3건물) 3. 복원건물(제5건물)

 

[경주 역사 유적 지구 안내 글 내용]

 

[복원건물(제1건물) 전경]

 

복원건물(제1건물) 앞쪽으로 보이는 공터는
월지 서편. 남편 건물터로 1975년 발굴조사한 결과 월지의 서편과
남편으로 26개의 건물터가 확인되었는데, 배치와 구조로 보아 이 건물터는
신라 왕실의 주요 전각과 이를 둘러싼 회랑으로 밝혀졌다.


발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건물의 구조와 규모를 고증하여 1978년부터 1980년까지
3년에 걸쳐 월지의 서편과 남편 건물터에 대한 정비와 복원이 이루어졌다.


월지 서편 호수 기슭에 돌 축대가 있는 5곳 가운데 건물터 3곳(1.3.5호 건물)은
복원하고, 나머지 건물터는 흙을 덮어 보존한 뒤 그 위에 주춧돌을 얹어서 건물터의
배치와 규모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비하였다.(안내글 옮겨 적음)

 

[1호 복원 건물]

[1호 복원 건물 안내판 글 내용]

[1호 3호 복원 건물 과 월지 전경]

[월지의 이모저모 애니메이션 편집]

 

원래 안압지라는 이름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사실 안압지라는 명칭은 신라 때 썼던 이름은 아니고,
조선 초기의 기록인 동국여지승람과 동경잡기등에 기록된 것이라 한다.


조선시대에 이미 폐허가 되어 갈대가 무성한 이곳 호수에
기러기와 오리들이 날아들자 雁鴨池(안압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1980년에 안압지에서 발굴당시 '月池(월지)'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어 신라시대에 이 곳이 月池(월지)라고 불렸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하네요.

 

[1호 복원 건물쪽에서 담은 3호 복원건물과 5호 복원 건물 전경]

 

文武王(문무왕) 674년에 궁전 경주 월성의 동쪽에 호수를 만들고,
679년에 같은 위치에 동궁을 별궁으로 짓고 여러 건물의 이름을 새로 지었다.

 

[3호 복원건물과 5호 복원 건물 전경]

[3호 복원 건물 전경]

 

동궁에서 호수와 가장 인접한 곳에 臨海殿(임해전)을 세웠고,
호수를 바라보며 연회를 즐기는 장소로 쓰였다 하며 신라가
멸망하기 직전인 931년 왕건이 서라벌을 방문했을 때 경순왕이
왕건을 임해전에서 접대하기도 했다.

 

[3호 복원 건물]

[3호 복원 건물 안내판 글 내용]

[안압지와 임해전의 복원 모형]

 

동궁과 월지의 모형
이 모형은 동궁과 월지를 중심으로 하여 신라 동궁으로
생각되는 궁의 모습을 50분의 1로 축소, 추정 제작한 것이다.


2년간 의학술발굴조사에 따라 궁전의 건물, 회랑, 원지 등의
유적을 확인하여 1977년부터 1980년까지 연못에 인접한 건물 3동을
추정복원하고 유적지를 정비하였다.


모형의 크기는 가로 5.6m, 세로 4m로서
건물 13동, 회랑 156칸, 원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설계와 제작에 따른 고증은 발굴 조사로
확인된 건물지와 건축부재를 근거로 하였다.(안내판 글 내용 옮겨 적음)

 

[3호 복원 건물 내부 전시된 자료와 설명 글 안내판 전경]

[당초무늬암막새 / 쌍조무늬수막새]

[3호 복원 건물 내부 전시된 유물 애니메이션 편집]

[매병모양토기]

[5호 복원 건물 전경]

[5호 복원 건물]

[5호 복원 건물 안내판 글 내용]

[5호 복원 건물과 3호 복원 건물 전경]

[3호 복원 건물과 1호 복원건물 전경]

[복구될 건물 주춧돌]

 

동궁 및 월지 유적은 1980년에 정화공사를 거쳐 신라 궁궐의
苑池(원지)로 복원되었고, 3채의 누각도 발굴조사 때 출토된
목조 건물 부재와 신라시대의 다른 유적들을 참조하여 복원되었다.


그밖의 건물터는 주춧돌만 정연하게 확인하여
원래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도록 정비하였다 합니다.


이곳에 세워질 그 옛날의 복원 건물이 궁금하다.
주춧돌만 드문 드문 놓여 있는 넓은 잔디 위에 고증을 거쳐
옛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보여줄 그 날을 기다려본다.

 

[앞쪽 석조유구 안내판과 1호 복원 건물 전경]

[석조유구 안내판 글 내용]

[복원될 동궁 월지]

[동궁과 월지 문화재 안내도]

[水槽遺構(수조유구) 전경]

[수조유구 안내판 글 내용]

[水槽遺構(수구유구) 애니메이션 편집]

[동궁과 월지의 야경 사진]

 

이곳은 야간 경관조면 시설이 설치된 지역으로서 안전 사고 및
전기감전의 위험이 있으니 조명기구를 손으로 만지거나 발로 차는
행위, 물병, 돌, 나무 등으로 파손하는 행위는 절대 하지 맙시다
(경고판 글 내용 옮겨 적음)


이곳은 연못에 비치는 동궁의 야경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으로 사진가들에게 유명하다.


밤 10시 이후에도 연중 문을 여니 야간 방문 코스로 잡으면 좋다.

 

[위 동궁과 월지 야경 사진]

 

경주의 야경으로 유명한 경주 동궁과 월지
특히 물에 비친 반영이 아름답다 하지만, 초아에겐
먼 꿈 같은 전설이 될 것 같아요.


남편이 워낙이 밤외출을 싫어라해서..
여행을 가도 일찌감치 숙소를 정해 들어가며
새벽 잠이 없는 초아가 일찍 일어나도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방안에서만 보내는 시간이 고문이 되기도 하지요.


그러나 꿈은 놓지 않고 꿔보려합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도 있으니 언젠가는
초아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면서...
총총히 동궁과 월지 소개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