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봉리 忠臣閣(충신각)

2019. 4. 24. 05:52문화산책/정자와 누각

소재지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 498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59호

[쌍봉리 충신각 전경]

[안내판 글 내용]

[안내판 영문 글 내용]

[쌍봉리 충신각 출입문 전경]

다행히 협문은 바깥쪽에서 열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열고 들어갈 수 있어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갔다.

[金海金氏忠臣門(김해김씨충신문) 현판]

협문을 열고 들어서니 곧장 현판이 보였다.
현판은 金海金氏忠臣門(김해김씨충신문)으로 되어 있다.

[金海金氏忠臣門(김해김씨충신문) 내부]

건물의 규모는 앞면 2칸, 옆면 1칸이며,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며, 단청을 하였으나 소박하며,
뒤쪽만 벽을 설치하고 나머지 3면은 화살 모양의 나무(홍살)를 돌려 개방하였다.

[좌측 충신각 내부 전경]

[충신 행훈련판관 철산부사 김인갑지려]

김인갑은 선조 12년(1579) 무과에 급제하고
선조 24년(1591) 훈련원 판관이 되었는데, 진주성 싸움에서
전사하자 선무원종공신으로 기록되었고 병조판서 벼슬에 올랐다.

[우측 충신각 내부 전경]

[충신 증 훈련검정행부장 김시엽지려]

김시엽은 광해군 13년(1621)에 무과에 급제하고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과 인조 5년(1627) 정묘호란 때에 공을 세웠다.
병자호란 때 전사하자 승정원 우승지 벼슬에 올랐다.

[金海金氏忠臣門(김해김씨충신문) 내부]

병자호란 때 전사한 김인갑의 아들 김시엽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조선 고종 10년(1872)
세웠다고 하는데, 충신각 내부에는 김인갑과 그의 아들 김시엽의 정려판은 걸려 있는데,
김인갑의 아우 김의갑의 정려판은 보이지 않았다.

충신각 내부 를 담고 나서니 앞쪽에 곧장 보이는 풍영정이 보였다.
지나칠 수 없지요. 담아왔습니다.

[風詠亭(풍영정) 현판]

[風詠亭(풍영정) 전경]

1926년 일제 강점기 때 건립된 영풍정과 풍영정은
2층의 우진각지붕 평기와 건물로 정면 2칸, 측면 1칸의 누태형 건물이다.

[숲에 광장 안내글]

[보호수(느티나무)]

풍영정 주위에는 느티나무 보호수들이 줄지어 자리하고 있다.
500여년전 마을이 형성되면서 행해진 것으로 추정되는 당산제를
매월 음력 정월 대보름반에 이곳 느티나무 아래에서 지낸다고 한다.

[쌍봉마을 표석비]

쌍봉마을은 마을 앞에 육봉과 대산이 있어 쌍봉이라 했다는 설과
마을 주위의 산들이 쌍쌍이 있어 쌍봉이라 칭하였다는 설이 있다 합니다.

[풍영정 앞쪽 기념비 전경]

마을 입구에는 자랑스러운 역사유적들이 마을의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의병장행사 양선생회일 순의기념비와 태극기가 새겨진 비석은 쌍산의소에서
의병하시던 분들의 성함과 밑에는 의병의 노래가 새겨져 있다.

1907년 의병활동을 하다 일제에 붙잡혀 순절한 쌍봉마을 출신인 의병장
양회일선생을 비롯한 의병들의 발자취와 500년 역사와 전통이 숨쉬고 있는 마을이다.

[쌍산의소에서 의병하시던 분들]

[의병의 노래]

[風詠亭(풍영정)과 노거수]

[풍영정 우측 노거수(느티나무)]

[風詠亭(풍영정) 전경]

마을 깊숙한 곳에는 학포 양팽손의 학문과 후학을 기르쳤던
학포당이 자리하고 있어 이 마을은 전통적 문화가 고스라니 남아 있다.

원래는 학포당과 학포선생이 묘소를 방문하기 위해 들렸다가
우연히 만나게된 쌍봉마을의 충신각과 풍영정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쌍봉리 충신각 소개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