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성공원내 기념비

2017. 3. 16. 06:03문화산책/여러 종류의 민속자료

 

소재지 :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 294 달성공원

 

[達城徐氏(달성서씨) 遺墟碑(유허비) 전경]

達城徐氏(달성서씨) 시조 서진은 고려 때
奉翊大夫(봉익대부), 判圖判書(판도판서)등을 역임하였고,
나라에 큰 공을 세워 達城君(달성군)에 봉해지고
달성(현 대구광역시 달성군)을 食邑(식읍)으로 하사받아
世居(세거)하게 되었다.

비돌은 정읍에서 가져온 돌로 만들었다고 하며,
비석의 글씨는 달성서씨인 竹農(죽농) 徐東均(서동균)이 썼다.

 

[達城徐氏(달성서씨) 遺墟碑(유허비)]

고려 중엽 이후 達城徐氏(달성서씨)가 대대로 살던 사유지였으나,
조선 世宗(세종) 때 徐氏(서씨) 일문이 헌납하여 국유로 귀속되었다.

1905년 공원으로 조성되었으며, 1967년 5월 대구시에서
새로운 종합공원 조성계획을 세워 현재의 대공원으로 만들었다.

 

[석주 이상룡 구국기념비 와 왕산 허위선생 순국기념비 전경]

[석주 이상룡 구국기념비 앞 면]

大韓協會(대한협회) 회장 등을 지낸 한말의 독립운동가이다.
1910년 국권 피탈 이후 間島(간도)로 망명하여 新興講習所(신흥강습소),
扶民團(부민단) 등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에 힘썼다.

 

[석주 이상룡 구국기념비 뒷 면]

그 후 1926년 임시정부 초대 國務領(국무령)이 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왕산 허위선생 순국 기념비 전경]

구미에서 태어난 왕산 허위선생(1854~1908)은
의병장 곽재우와 어깨를 견줄 정도로 독립운동 공적은
높이 평가 받았지만 시민들에겐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가 옥사 한 후 고향의 가족은 일본 헌병과 경찰의 등쌀을
이기지 못해 만주로 야반도주해 국내, 러시아, 중앙아시아 등지로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고 한다.

 

[왕산 허위선생 순국 기념비 앞 면]

정미의병(1905) 당시 '서울진공작전'을 주도한
그를 기려 서울시는 동대문~청량리 구간을 66년 이후
그의 호를 따라 '왕산로'로 부르고 있다.

 

[왕산 허위선생 순국 기념비 뒷 면 전경]

한말과 일제강점기를 통해 허위 가문은 수많은 항일운동가를 배출하였다.

허위의 맏형 허훈은 진보의진의 창의장이었고,
셋째 형 허겸은 형과 아우를 도와 의병 투쟁에 참여하였다.

1910년 국권 상실 이후에는 허겸, 허형, 허필은 그 일가를
이끌고 만주와 노령으로 망명하여 항일 투쟁을 계속하였다.

 

[왕산 허위선생 순국기념비 와 석주 이상룡 구국기념비 전경]

[石齋(석재) 徐丙五(서병오) 藝術碑(예술비) 전경]

[석재 서병오 선생 예술비명 내용 글]

[어린이 헌장 기념비]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헌장비.
1957년 '어린이헌장'이 선포되고, 58년 5월5일
공원 입구에 자연석으로 '어린이헌장비'가 세워졌다.

시인 마해송이 처음 제안, 대구아동문학회와 언론계가
주도했으며 당시 제2군사령관 최영희 장군의 후원이 있었다.

그후 이 비가 허물어졌지만, 1970년 5월5일
김수학 시장 재임시 다시 만들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竹儂(죽농) 徐東均(서동균) 藝術碑(예술비) 전경]

호는 竹儂(죽농)). 대구광역시 달성 출신. 가학으로 한문과 글씨를 배웠다.
3.1운동 때는 만세운동에 참가하여 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竹農(죽농) 徐東均(서동균) 藝術碑(예술비)]

藝術碑(예술비) 자체가 '竹農(죽농)''대죽(竹)'자 모양이라 한다.

 

[竹農(죽농) 徐東均(서동균) 藝術碑(예술비) 전경 2]

19세 때 徐丙五(서병오)에게 서화를 사사하였다.
조선서화협회전에 3회 입선하고 조선미술전람회에 연 8회 입. 특선하였다.

한때는 일본에도 체류하면서 그곳의 작가들과
교류하였으며, 40대 때는 경북여자고등학교에 재직하였다.

 

[大神師水雲崔濟愚(대신사수운최제우) 象(상) 전경]

[안내판 전경]

[안내 글 내용]

[大神師水雲崔濟愚(대신사수운최제우) 象(상) 앞 면]

人乃天(인내천: 사람이 곧 하늘) 사상으로 동학을
창시한 경주 사람 수운 최제우(1824~64)를 기리는 동상이다.

 

[大神師水雲崔濟愚(대신사수운최제우) 象(상) 뒷 면 전경]

'邪道(사도)로 백성을 선동, 민심을 어지럽혔다'
는 혐의로 체포돼 경상감영에서 처형됐다.

최제우 순교 100주년 기념 동상건립위원회가 이 동상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