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3. 14. 06:02ㆍ문화산책/여러 종류의 민속자료
소재지 : 대구광역시 중구 수창동 101-11
[대구은행 북성로 지점(우현서루 옛 터) 전경]
우리나라 최초의 항일운동 대구에서 일어난 국채보상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또 이후 각계에서 일어난 항일운동가 상당수
키워낸 곳이 바로 友弦書樓(우현서루)였으며, 현 대구은행 북성로 지점
자리가 友弦書樓(우현서루) 자리였다 한다.
[은행 앞 소남 이 일우와 태극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일제에 저항했던
이상화 시인의 할아버지 이동진 선생이 을사늑약 한 해 전인
1904년에 友弦書樓(우현서루)를 지었고, 이상화 시인의 큰아버지인
小南(소남) 李一雨(이일우) 선생이 이일우 선생이 이곳을 운영하였다.
[小南(소남) 李一雨(이일우)]
友弦書樓(우현서루) 는 1911년 강제폐쇄 때까지
新知識(신지식) 보급은 물론 抗日(항일) 지식인의 사랑방이자
학숙으로 대구 抗日(항일)운동의 산실이자 애국지사의 양성소였다.
[태극기와 태극기의 의미풀이 글]
[友弦書樓(우현서루) 안내판 전경]
언론인 장지연, 독입운동가 박은식, 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 일본에서 폭탄을 던진 김지섭 의사 등 주요 인물만도 150여명이었다.
[우현서루 안내글 내용]
[우현서루 외국어 안내판 전경]
[우현서루 외국어 안내판 글 내용]
근래에 이동진 선생의 큰 아들인 소남 이일우 선생의
고택에서 이 우현서루가 일제에 의해 지금까지 알고 있던
'강제 폐쇄'가 아니라 '강제 매각'되었다는 걸 밝힐 수 있는
등기등본과 근저당 포기 증서 등이 발굴되었다 합니다.
[대구은행 북성로 지점(우현서루 옛 터) 전경 2]
폐쇄 뒤에도 講義院(강의원)이란 고급 서당과 학교 운영등
대구 변혁에 나섰으며, 그의 활동은 조카인 저항시인 이상화
네 형제와 숱한 대구 출신 문인의 자양분이 되었다 한다.
기존 건물 외벽에 설치된 조형물은 보는 각도에 따라
우현서루와 이일우 선생의 모습이 보였다가 사라졌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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