延安李氏 烈女旌閭閣 (연안이씨 열녀정려각)

2015. 8. 5. 06:03뿌리를 찾아서/忠. 孝. 烈

 

소재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옥산리

 

[연안이씨 열녀정려각 전경]

연안이씨는 이형원의 딸로, 16살 때 박래영과 결혼하였는데,
시어머니는 이미 작고하였지만, 시아버지는 병환으로 문밖 출입도 못하고 있었다.
대소변을 받아내는 등 7년여 동안 극진히 간병하였으나 시아버지는 마침내 세상을 떠났다.

남편 박래영도 병약하여 24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나자 연안이씨는 그날 밤 남편의 뒤를 따라 자결하였다.
이러한 열행을 기려서 1892년(고종 29)에 나라에서 열녀정문을 내렸다.

 

 

[안내판 전경]

 

[안내판 글 내용]

 

[연안이씨 열녀정려각 전경 2]

정려각은 정면과 측면 모두 1칸이다.
외벌대 기단을 조성하고 원형 초석 위에 두리기둥을 사용하였다. 

기둥 머리에서 초익공을 두었으며, 지붕은 겹처마로 암수막새를 사용하였다. 

맞배지붕이지만 측면에 방풍판은 가설하지 않았다.
앞면에는 홍살을 넣어 개방하고, 측면과 뒷면에는 벽체로 막았다.

 

 

[烈女延安李氏之碑(열녀연안이씨지비)]

 

비에는 오석 비신 전면에
'烈女延安李氏之碑(열녀연안이씨지비)'라 새겨놓았으며,
열녀비 앞면에는 '열녀 연안이씨지묘'새겨져 있고, 그 열행을 기리는 銘(명)은 다음과 같다.

氷玉持操(빙옥지조) : 빙옥 같은 지조는
松栢制行(송백제행) : 송백의 제행이라.
萬人爭誦(만인쟁송) : 만인이 다투어 칭송함에
赫赫其名(혁혁기명) : 그 이름 밝게 빛나니라
有子克肖(유자극초) : 자식있어 쇠함을 극복하고
勿墜家聲(물추가성) : 가성의 실추됨을 없이하니
百世紹光(백세소광) : 그 빛 백세토록 이어 가리라.

조선 정려각의 전형적인 형식을 갖춘 건물로 내부에 정려문과 열녀비를 함께 둔 점이 특징적이다.

 

[旌閭門(정려문) 편액]

정려각 내부에 흑판에 백서로 쓴 열녀 정려문 편액을 걸었다.
정려각 중앙에는 열녀비가 서 있다. 

 

[정려각 앞쪽에 흐트러지게 핀 망초꽃]

1892년에 열녀정문이 내려졌을 때 초창하였고, 그 후 건물이 퇴락하여 1980년대 후반에 해체하여 복원하였다.

연안이씨 열녀정려각 북쪽으로 박인영 효자정려각이 있습니다.
그곳은 다음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