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광동(2)
-
孝(효)와 節義(절의)의 상징 瞻栢堂(첨백당)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평광동 979 대구문화재자료 제13호 [광복소나무와 첨백당 전경] 宣祖(선조, 25) 1592년 임진왜란 때 丹陽人(단양인) 禹翊臣(우익신) 자 有義(유의)가 난을 피해 경기도 驪州(여주)에서 남하하여 八公山(팔공산) 남쪽 龍岩山(용암산) 계곡 내의 작은 평지에서 자리를 잡고 살게 된 것이 坪廣洞(평광동) 丹陽(단양) 禹氏(우씨)의 世居地(세거지)가 되었다. 광복소나무에 대해 알아보시려면 요기 클릭 하셔요.^^ [좌측에서 담은 첨백당 전경] 대구 평광동에 자리한 첨백당은 고종 3년(1896) 丹陽 禹氏(단양 우씨)의 재실로 지어졌는데, 단양 우씨 후손 중에서 효성이 지극했던 禹孝重(우효중)과, 조선시대 말기 때 節義(절의)를 지켰던 선비 禹命植(우명식)을 기리고 있다. [안내판..
2018.05.10 -
대구 평광동 광복 소나무와 은행나무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평광동 979 [광복소나무와 뒷쪽 첨백당 전경] '소나무'하면 장수와 절개, 지조, 부부애, 그리고 우리 민족의 기상을 상징하는 나무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대구 동구에 '광복소나무'가 있다. 어떤 사연인지 알아보실까요. 뒤쪽에 보이는 첨백당은 정리대는대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광복소나무 유래 안내석] [광복소나무 유래 안내석 글 내용] [광복소나무 유래 안내석 뒷면] [광복소나무를 심은 사람들] [광복소나무와 첨백당 전경] 조선시대 선비 우명식 선생을 기리기 위해 1896년 지은 건물로 단양우씨 가문의 재실 첨백당앞 커다란 소나무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광복소나무'이며, 일제 치하에서 벗어난 1945년 8월 15일 단양 우씨 첨백당 문중의 다섯 청년이 광복을 기념..
2018.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