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평광동 광복 소나무와 은행나무

2018. 5. 3. 06:07갤 러 리/노거수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평광동 979

 

[광복소나무와 뒷쪽 첨백당 전경]

 

'소나무'하면 장수와 절개, 지조, 부부애,
그리고 우리 민족의 기상을 상징하는 나무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대구 동구에 '광복소나무'가 있다.
어떤 사연인지 알아보실까요.

뒤쪽에 보이는 첨백당은 정리대는대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광복소나무 유래 안내석]

[광복소나무 유래 안내석 글 내용]

[광복소나무 유래 안내석 뒷면]

[광복소나무를 심은 사람들]

[광복소나무와 첨백당 전경]

 

조선시대 선비 우명식 선생을 기리기 위해 1896년
지은 건물로 단양우씨 가문의 재실 첨백당앞 커다란 소나무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광복소나무'이며, 일제 치하에서 벗어난 1945년 8월 15일
단양 우씨 첨백당 문중의 다섯 청년이 광복을 기념코자 인근 백발산에 올라가
소나무를 뽑아 첨백당 앞에 옮겨 심은 소나무라 합니다.

이 나무의 높이는 7m 정도 됩니다.
둘레만 90cm가 넘는 113년생 나무입니다.

 

[기념석]

 

이 소나무 옆에는 급작스럽게 해방의 소식을 듣게된 백성들이
그 기쁨을 놓칠세라 길 옆에 있던 돌을 집어 급하게 바위에 새겨넣은 기념석이 있다.

 

[기념석에 새겨진 글]

 

논에 물꼬를 조절하는 갯돌을 가져와
檀紀(단기) 4278. 8. 15. 解放記念(해방기념)이란
글씨를 새겨 나무 옆에 세웠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 흐릿해지긴하였지만, 자세히 보면
단기 4278년 8월 15일 해방 기념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광복소나무와 은행나무]

 

광복소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光復松愛人會(광복송애인회)은 최근 새 표지석을 세웠습니다.
광복 당시 기념물로서 유일한 이 소나무를 통해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서입니다.

처음부터 '광복 소나무'라 이름 붙여졌으며,
나무 옆에 있는
'광복기념' 표지석 또한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첨백당쪽에서 담은 광복소나무 전경]

 

이 소나무는 2010년 5월 정부가 전국 지자체를 상대로
지역 내 광복소나무와 같이 당시 기념물이 있는지를 조사한 결과
국내 유일의 기념물로 공식 확인됐다.

광복소나무 좌우로는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가 큰 키를 자랑하며 있다.

 

[광복소나무 우측 안내팻말과 보호수 은행나무 전경]

 

조선 고종 33년(1896) 선비 우명식과 효자 우효중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첨백당 내에 은행나무를 심었다 합니다.

 

[보호수 안내글 내용]

[광복소나무 우측 보호수 은행나무 전경]

 

우효중은 禹翊臣(우익신)의 12세손이다.
우익신은 원래 여주에서 살았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난을 피해 아들과 손자 각 한 명씩을 거느리고 팔공산 남쪽
龍岩山(용암산) 계곡으로 남하하여 그들의 세거지로 삼았다.

우효중은 그의 아버지가 병환으로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아버지의 입에 드리워 결국 회생시켰다 한다.

 

[첨백당에서 담은 은행나무 전경]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시묘살이 3년을
하루같이 하였는데 조정에서는 그의 효행을 높이사서
朝奉大夫重蒙敎官(조봉대부중몽교관) 同知中樞府事(동지중추부사)
로 증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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