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8. 23. 06:08ㆍ문화산책/고택과 문학관
소재지 :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308
[蘭溪朴堧生家(난계박연생가) 전경]
우리나라 3대 樂聖(악성)에 속하는 蘭溪(난계) 朴堧(박연).
本貫(본관)은 密陽(밀양). 시호는 文獻(문헌)
初名(초명)은 然(연)이었고, 堧(연)은 후에 개명한 것이다.
字(자)는 탄보이고, 호는 蘭溪(난계)이니, 박연은 바위틈에 날렵히
피어난 고고한 蘭草(난초)의 자태에 매료되어 자신의 호를 蘭溪(난계)라고 했다.
[우진각(생가 안 기와집)]
고려 우왕 4년(1378) 8월 20일 삼사좌윤
박천석의 아들로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에서 태어났다.
태종5년(1405년)인 28세에 생원이 되었고,
34세(1411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교리, 관습도관제조,
악학별좌, 대제학 등을 역임후 세조 2년(1456년)에 삼남 계우가
단종 복위 사건에 연루되어 화를 당할뻔 하였으나, 세 임금을 봉직한
공으로 화를 면하고 관직에서 물러나 이곳으로 돌아와 살다가
세조 4년(1458년) 3월 23일 81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난계가 낙향할 때 匹馬(필마)에 하인 한 사람을 거느린 행장에 피리가 전부였다 한다.
[생가 안 초갓집]
작곡, 연주 뿐이 아니라 악기의 제작, 음악 이론의 연구과 조율
궁정음악의 정립과 혁신 등 음악에 관한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추앙받고 있다.
이같은 음악의 대성을 이룩하게 된 데에는 세종대왕의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와 더불어 적극적인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군 아래에 현신이 있게 마련으로 좋은 군신의 만남은
위대한 작품을 창작하게 된 초석이 되었으니 복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진각과 초가집 사이의 장독대]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0년 5월
안채, 사랑채를 학술용역을 근거로 복원하였다.
생가의 평면은 정면 3칸 측면은 전후퇴가 있는 겹집에
전면퇴에는 우물마루를 설치하고 한켠에는 부엌과 곡식창고를
부설한 고미반자에 우진각의 기와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부속채는 1동으로 외양간, 광과 방 1칸인 초가지붕으로 되어있다.
고미반자 : 고미받이에 고미 서까래를 걸고 산자 엮기 후 흙칠한 반자
[생가 앞쪽 계단에서]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며 아랫쪽 계단에서 인증샷
다음은 난계국악박물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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