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25. 05:51ㆍ뿌리를 찾아서/忠. 孝. 烈
소재지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872번지 외
등록문화재 제 406호
[뒤쪽에 보이는 아치형 철교가 구 왜관철교]
왜관철교는 구한말 일제가 1901년 착공해 1904년말 완공한
붉은 벽돌과 석재로 만들어진 아치형 교각에 근대 철도 다리 중 보기 드문
트러스교로 1905년부터 운행을 시작한 경부선 철도가 지나가는 단선 철도교였다.
구 철교는 왜관교의 남쪽에 현재의 철교는 북쪽에 있다.
[앞쪽 왜관교와 뒤쪽 구 왜관철교]
1941년 11월 강 상류 쪽 100m 지점에 복선 철교가 건설된
후부터 경부선 도로 교량과 인도교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한국전쟁의 격전지 상징물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8년 10월 등록문화재 제 406호 지정됐다.
1970년 11월 바로 위쪽에 경부간 국도의 왜관교를
새로 가설한 후에는 인도교로 이용했으나 그간 복구 부분이
너무 노후하여 1979년 11월부터는 통행을 전면 차단하였다.
[현 왜관철교]
1991~93년, 2007~2010년 두 차례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통해
안전한 현대적 교량으로 재탄생해 칠곡군민과 왜관읍민들의 인도교로 이용되었다.
이 인도교가 6.25전쟁 발발 61주년인 지난해 6월 25일 새벽에 다시 무너져
4대강 정비 사업으로 인하여 붕괴되었다하여 논란을 빚었다.
[현 왜관철교]
철도청에서는 철거를 검토하였으나 호국의 傷痕(상흔)을 간직한
이 다리를 보존하자는 郡民(군민)들의 의사를 수렴, 칠곡군이 무상관리 승인을 받고
91년 8월부터 93년 2월까지 교각 1기 신설, 상판 63m 복구, 트러스 도색, 난간보수, 교면 및
접속도로를 포장하여 복구함으로써 '護國(호국)의 다리'로 명명되어 전쟁과
호국의 산 교육장으로서 주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人道(인도)로 활용되고 있다.
[구 왜관철교]
6·25전쟁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하던 50년 8월. 남하하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미군 1기병사단에 의해 왼쪽에서 2번째
교각 구간 徑間(경간) 1개를 폭파시켜 북한군의 추격을 따돌리는 역할을 한
역사적 다리로 6.25전쟁 격전장의 중요한 상징물로서 역사적 가치가 큽니다.
[현왜관교 너머 구 왜관철교]
대구와 부산이 함락위기에 놓였던 1950년 8월 1일,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을 중심으로 최후의 방어선(워커라인, 낙동강 교두보)을
구축하고 격전을 벌이게 되는데 이 곳 왜관 일대는 그 중심지였다.
이에 따라 그 해 8월 3일 왜관 전 주민의 疏開令(소개령)이 내렸고
낙동강 방어선의 교량들은 적 도하방지를 위해 8월 4일 새벽까지 모두
폭파되었는데 이 때 왜관철교도 폭파되었다.
[현 왜관교 뒤로 보이는 구 왜관철교 아치]
뒤에는 적이 밀려오고 막다른 처지에 몰린 피난민들은
수심이 얕은 곳으로 몰려 강을 건너기 시작하며, 짐스러운 것은 버리기까지
하면서 군의 제지를 피해 강을 건넜는데 등에 업은 아이가 익사하는 줄도 모르고 건넌
부녀자등 정신없이 강을 건너는 가운데 희생자가 많이 속출하였다 한다.
[현 왜관교 뒤로 보이는 구 왜관철교]
적은 전차가 건너올 수 없어 일단 강 서편에 집결하고
미제1기병단은 8월 4일 아침까지 강 東岸(동안)에 진지구축을 완료했다.
B29 전투기 98대가 강 건너편 일대 67㎢에 26분 동안 90톤이나 되는
폭탄을 떨어뜨려 인민군 4만명중 3만여명이 죽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융단폭격 작전으로 세계전사에 기록되어 있다.
왜관을 빼앗길 경우 대구는 북한군의 야포 사정권안에 들게 되며
부산까지 밀리게 되므로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중심으로
다부동전투와 함께 필사적으로 전선을 지켜 북한군에게 큰 타격을 줌으로써
전세를 역전시키고 반격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렇게 하여 칠곡군은 '護國(호국)의 고장'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지금은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 살기좋은 고장으로 발돋움해 있다.
왜관철교는 2008년 10월 문화재청에 의해 등록문화재 제406호로 지정된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이며,소유권은 국토해양부가 가지고 있다 합니다.
6.25전쟁 일어난 지 어느듯 66주년이 되었지만,
아물지 못한 상처와 끝나지 않은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선열님들과
이름도 성도 없이 무명으로 돌아가신 많은 분들의 영령을 위로하며
그분들의 발자취를 돌아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올려봅니다.
10년 간 부르지 못하게 했던 6.25노래
이젠 소리내어 불러봐도 되겠지요.
유튜브에서 모셔왔습니다.
함께 불러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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