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26. 06:00ㆍ문화산책/정자와 누각
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묵계하리길 42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73호
[만휴정으로 이어진 오솔길]
[안내판 글 내용]
[안내판 영문 글 내용]
[만휴정으로 이어진 오솔길 2]
조선시대 지어진 안동 晩休亭(만휴정)은 청백리로 추앙받는
金係行(김계행)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말년에 기거한 정자로
폭포를 비롯한 주변경관이 조화를 이루어 정자건축 중 으뜸으로 꼽힌다.
[용계폭포]
만휴정은 용계폭포 윗쪽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녹음이 우거져 수풀에 가려 윗쪽에 자리한 만휴정은 보이지 않네요.
[만휴정과 안내판 전경]
나이 50에 청탁을 거부하고 과거를 치를 만큼
강직한 성격으로 벼슬이 이조참판과 대사헌까지 이르렀는데
연산군에 의해 시국이 어려워지면서 파직과 복직을 반복했다.
선생은 연산군 6년(1500) 폭정을 피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조용한 길안 묵계골에 들어와 은거했는데 이때 즐기던 곳이다.
[안내판 글 내용]
[안내판 영문 글 내용]
[길 건너에서 담은 만휴정 전경]
晩休亭(만휴정)이란 '늦은 나이에 쉰다'는 뜻으로
김계행이 말년에 얻은 정자의 의미를 잘 나타내고 있는 이름이다.
만휴정은 김계행의 장인 金腆(김전)이 지어
처음에는 雙淸軒(쌍청헌)이라는 당호로 불렀다고 한다.
[만휴정 들어가는 좁은 나무다리]
김계행이 만년의 늦은 나이에 이곳을 은거생활의 장소로
즐겨 사용한 것에서 이름이 晩休亭(만휴정)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만휴정 다리와 너럭바위 전경]
[다리위에서 담은 너럭바위 전경]
너럭 바위에 글이 새겨져 있었다.
[너럭바위에 새겨진 글]
吾家無寶物(오가무보물) 寶物惟淸白(보물유청백)
'우리 집에 보물은 없다. 보물이 있다면 오로지 청백 뿐이다'는 뜻이다.
이것은 그의 유언으로 지금도 만휴정 들보에도 편액되어 있다.
[다리 위에서 담은 아랫쪽 전경]
암반을 굽이돌아 하얀 물줄기를 아래로 쏟아내는 송암폭포와
그 위로 단아하게 자리하고 있는 만휴정 원림의 아름다운 전경이다.
[晩休亭(만휴정) 현판]
[길건너에서 담은 晩休亭(만휴정) 전경]
뒤로는 계명산, 앞으로는 금학산과 황학산이
겹겹으로 둘러싸고 길안천까지 흘러 절경을 이룬다
계류 건너에 축대를 쌓아 터를 닦고 낮은 담을 설치하여
정자의 경계를 분명히 하면서도 정자에서 바라보는 조망을
해치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
[좁은 다리와 만휴정 협문 전경]
만휴정에 가려면 우선 계곡을 건너야 한다.
길 이쪽에서 만휴정까지는 좁은 다리가 놓여 있다.
다리를 건너 만휴정으로 향했다.
[만휴정 출입구]
이곳에서 '공주의 남자' 드라마와, 또 영화 '사도'의 후반부
임금인 송강호와 조선 정조인 소지섭이 나오는 장면도 만휴정에서 촬영하였으며,
JTBC의 조선연애사극 '하녀들'의 촬영배경이되기도 하였다 합니다.
[만휴정 표석비]
[좌측 옆에서 담은 만휴정 전경]
정자와 담사이의 마당은 공간이 거의 없이
맞붙여 있기에 자연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는것 같기도 하다.
[晩休亭(만휴정) 내부]
[雙淸軒(쌍청헌) 현판]
[정자 내부에 걸린 편액]
持身勤愼(지신근신) : 몸을 삼가고 가지런히 하며,
待人忠厚(대인충후) : 사람을 대할 때 충직, 온후하라
[정자 내부에 걸린 편액]
吾家無寶物(오가무보물) : 우리 집에 보물은 없다.
寶物惟淸白(보물유청백) : 보물이 있다면 오로지 청백 뿐이다.
[정자 내부에 걸린 편액]
보백당은 이곳에서 성현의 학문을 탐구하고
가문의 앞날을 준비하며 후진 양성을 위해 남은 여생을 보냈다.
지붕은 홑처마에 팔작지붕으로
처마선이 날렵해 정자의 맛을 한껏 살리고 있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와가로 되어 있다.
정자 앞쪽 3칸은 3면이 개방된 누마루 형식으로,
누각 주위 3면으로는 난간을 둘렀고 뒷면 양쪽에는
온돌방을 두어 학문하는 공간으로 활용했다.
[안쪽에서 담은 보백당 협문]
보백당이 자손들에게 경계한 내용을 보면,
'너희들이 잇달아 科名(과명)에 오른 것은 퍽 다행한 일이다.
이 고장 사람들이 더러는 나를 복이 많다고도 한다.
그러나 나는 집안이 번창한 것이 도리어 두렵다.
너희들은 이를 명심해 스스로의 몸가짐을 삼가고 사람들과 만날 때도
정성을 다해서 경박한 일로서 죽어가는 나에게 욕을 끼치지 말도록 하여라.'
는 것이다.
이것은 선생이 평생 수양을 통해
터득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실천덕목이었다.
[주변 풍경]
후손들은 그 뜻을 기려
'持身勤愼(지신근신), 待人忠厚(대인충후)'라는
여덟 글자를 현판에 새겨 만휴정 내부에 걸어두었다.
[주변 풍경 2]
[다리위에서 담은 입구쪽 전경]
[입구쪽에서 담은 만휴정 전경]
묵계의 깊은 산골짜기 송암동 폭포위에 위치한
만휴정은 김계행의 만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 곳이라 한다.
[웹에서 모셔온 만휴정 내원도]
위 그림에서 보듯이 한눈에 절경임을 알아 보실 수 있겠지요.
윗쪽 넓은 너럭바위위에는 수백명이 너끈히 앉아 쉴 수 있다하니
한여름 더위를 피해 들리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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