顧母嶺(고모령) 노래비와 노랫말에 얽힌 사연

2016. 3. 17. 06:10추천합니다/관광지와 휴게실

소재지 :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고모령 노래비 전경]


예전에 고모령 고갯길에 세워졌던

노래비가 이젠 망우공원 입구로 내려와 있다.
노래에 얽힌 사연과 노래가사 어머님이 좋아하시던

그 노래가 이젠 나의 애창곡이 되었다.


'비내리는 고모령'에 얽힌 전설과 현인의 노래


박시춘에 의해 작곡되어 가수 현인에 의해

1946년에 불린 '비내리는 고모령'일본제국주의 시대

고향을 등지고 타향으로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슬픔을 담은 노래로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유행가였다.

 

[비내리는 고모령 노래비]

 

옛날 왜정 시대에 경산에 있는 작은 마을 어떤 아주머니가 살고 있었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홀로 두 아들을 키우면서 살았는데,

독립운동을 하던 두 아들은 왜놈에게 잡혀서 모두 대구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남편없이 기른 두 아들이 모두 감옥에 가 있는 것이 어머니로서는

견디기 힘든 슬픔이었는지라 시간만 나면 감옥으로 면회를 가곤 하였는데,

그날도 대구 감옥에 있는 아들을 면회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한다.


고모령 고갯길에 이르렀는데 그날따라 비는 내리고,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서러움으로 고모령을 넘어오던 어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경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고개를 넘어야 하고,

그 고개를 넘으면 대구가 더 이상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이 고개는 고개를 돌려서 본다는 顧()와

어머니 母()를 붙여서 嶺(고모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깨끗히 포장된 고모령 고갯길]


고모령은 대구시 동촌 유원지 부근에 있는 인터불고 호텔과

만촌 자전거 경기장 사이의 길을 통해서 고모리와 고모역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인데,

이곳에 전해지는 전설은 유행가의 내용과는 거리가 있다.


[1절]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에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오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
넘어오던 그날밤이 그리웁고나


[2절]

맨드라미 피고 지고 몇몇해던가
물방앗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해서 못잊느냐 망향초 신세
비 내리는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3절]

눈물어린 인생고개 몇구비드냐
장명등이 깜박이던 주막집에서
손바닥에 그린 하소 졸아가면서
오늘밤도 불러 본다 망향의 노래

 


노래의 내용으로 보아서는 어머니를 고향에 두고 고모령을 넘어

만리타국으로 떠나온 아들이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고향과 어머니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아들의 애끓는 마음이

아주 잘 표현된 노래인데, 현인이란 가수의 저음에 실려 발표되자

엄청난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지금도 우리들의 가슴을 울리는 노래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기차가 서지 않는 고모역 전경]


1925년에 영업을 시작한 고모역은 1970년대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기차역이었으나 지금은 사람이 타고

내리는 열차는 정차하지 않고 화물차만 머무르는 간이역으로 바뀌었다.


민족의 한을 노래한 '비내리는 고모령'으로

유명한 이곳이지만 기차역인 고모역 부근은 한 맺힌 전설 때문인지

열차사고가 끊이지 않는 곳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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