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25. 06:08ㆍ문화산책/고택과 문학관
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900
[이육사 문학관 현판]
[이육사 문학관 전경]
우리가 가는 날이 마침 월요일...
매주 월요일엔 휴관일. 굳게 닫힌 문.
관람객도 없이 설렁하였지만, 그대신 우린
문학관 밖에서 마음놓고 사진도 찍으며, 둘러보았다.
어릴 때 이름은 源祿(원록), 두 번째 이름이 源三(원삼),
자는 台卿(태경) 호는 陸史(육사)이다.
이육사 선생은 40년의 짧은 생애를 살면서
'청포도' '광야' '절정'과 같은 아름다운 서정시를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 위치한 이육사문학관은
이육사탄신 100주년을 맞아 건립되었으며, 민족사랑을 불태워 왔던
그의 자취를 다시금 찾아보게하는 좋은 장소이다.
[이육사 문학관 안내도]
[이육사 선생의 시 꽃 옆에서 기념 한컷]
꽃 / 이육사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나리쟎는 그 땅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없는 날이여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작거려
제비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이여!
한 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곳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 성에는
나비처럼 취하는 회상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보노라
[절정 시비와 육사 동상 전경]
[이육사 선생님 옆에서 나란히...^^]
[새롭게 복원한 생가]
문학관 외부에는 청포도 샘, 동상, 시비,
생가를 이전한 육우당과 육사 선생의 생가마을을 중심으로
낙동강이 바라보이는 오솔길도 만들어 문학관을 찾은 여행객들은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六友堂(육우당) 현판]
[六友堂(육우당)]
1933년 귀국. 육사란 이름으로 詩(시)
黃昏(황혼)을 新朝鮮(신조선)에 발표하여 시단에 데뷔
신문사, 잡지사를 전전하면서 시작 외에 논문, 시나리오까지 썼으며,
루쉰의 소설 故鄕(고향)을 번역하였다.
1937년 尹崑崗(윤곤강) 金光均(김광균) 등과 함께
동인지 子午線(자오선)을 발간 그 무렵 靑葡萄(청포도)를
비롯하여 喬木(교목) 絶頂(절정) 曠野)(광야)등을 발표하였다.
[뒤채]
퇴계 이황 선생의 14대 후손으로 조선조의
선비정신을 본받으며 성장하였으며
어린 시절 한문을 배워 깊은 소양을 길렀다.
1925년을 전후한 청년 시절 義烈團(의열단)에 가입하는 등
독립 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26년 北京(베이징)으로 가서 베이징 사관학교에 입학
[좌측에서 담은 전경]
1927년 조선은행 대구 지점 폭탄 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 투옥 3년간 옥고를 치루었다.
이때 대구 형무소에서 복역 중 囚人(수인) 번호가
'64'번이어서 일본인이 항상 '64' 하고 부르자 그것에
연유하여 호를 陸史(육사)라고 하였다.
출옥 후 다시 베이징대학 사회학과에 입학
수학 중 魯迅(루쉰) 등과 사귀면서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청포도 샘]
청포도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1943년 독립 활동을 계속하다 검거되어
북경으로 압송되었으며, 1944년 양력 1월 16일
새벽 5시에 북경 감옥에서 별세하였다.
1946 유고를 정리, 서울출판사에서
유고시집 陸史詩集(육사시집)이 간행되었다.
[동산에서 담은 이육사 문학관 전경]
육사가 생존했던 시대는 민족사적으로 볼 때
가장 불행하고 암울했던 시기였다.
민족의 주체성과 국권의 상실이라는 일제 강점기를 맞이한 것이다.
유구한 역사와 민족 자존이 크게 훼손된 시대였던 것이다.
이런 시대에 육사는 殉國(순국)의 정신으로 투쟁과 저항으로 일제에 맞섰던 것이다.
[문학관 앞 전경]
독립 운동을 통하여 나라 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하였으며,
일제강점기에 끝까지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죽음으로써
일제에 항거한 시인이자 민족운동가였다.
마지막으로 육사의 詩 광야를 올려봅니다.
曠野(광야)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山脈(산맥)들이
바다를 戀慕(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 곳을 犯(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光陰(광음)을
부지런한 季節(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梅花香氣(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千古(천고)의 뒤에
白馬(백마) 타고 오는 超人(초인)이 있어
이 曠野(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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