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2015. 7. 26. 05:16살아지는 이야기/초아의 옛글 방

 

나이가 들면서 발걸음은 더 바빠지고 시간은 턱없이 모자란다.
식구가 늘어나며 돌보아주어야 할 일도 많고 방문할 곳도 많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할머니니까, 무슨 일이 있으며, 할 일이 뭐가 있느냐는 식이다.
그저 손자들이나 돌보아주고 저희가 부를 땐 대기해 있다가
후다닥 달려와 주기를 기대한다.

하긴, 예전에 나도 그랬다.
할머닌 그저 손자들이랑 놀아주고 옛이야기나 해주는 그런 사람인 줄 알고 있었다.
할머니에겐 할 일도 친구도 없는 줄 알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옛말에 할아버지와 할머닌 손자들의 거름이라는 말이 있다.
그땐 그 말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였으며,그냥 귓등으로 흘러 들었다.
그 말의 뜻이 얼마나 큰 희생을 의미하는 것인가를 이제야 겨우 알 것 같다.

한 알의 밀알이 썩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며,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며 언제나 내게
말씀해주시던 어머님 말씀도 이제야 그 숨은 뜻을 알 것 같다.
 
아직도 가끔 아주 가끔은 나도 한번쯤은
내 맘대로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일탈을 꿈꾸어 보기도 한다.
꿈으로만 그칠 줄 뻔히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하고 자꾸만 꿈꾸는 나.
언제쯤 온전히 다 버리고 편안하게 살아질까?

가고 싶은 곳도 많고 함께하고 싶은 친구들도 많다.
나이가 들수록 허기진 것 같은 이 공복감은 무엇일까?
늘 허전하고 누가 뭐라고 하지않아도, 눈앞이 흐려오며 가슴은 막막해진다.

내게 허락된 시간이 살아온 시간보다 더 짧아졌으리란 생각만으로도 서럽다.
젊을 땐 사느라 바빠서 그저 하급지급 살아온 것 같다.
옆도 돌아볼새 없이, 조금은 환경적으로 마음도 몸도 여유가 생겨
정말 나만을 위한 나의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사랑해야 할 사람들 열심히 사랑해도 모자랄 시간을 우린 서로 가슴을 아프게 한다.
왜 상대방의 입장이 되기보다는 나의 입장에서 생각해주기를 기대할까?

한걸음 물러섰는데, 두 걸음인들 어떠리,
나도 그렇게 해주었으니 너도 해달라는 보상심리
상대방이 그렇게 해주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서운함도 생기는 것 같다.
 
죽음 앞에선 다 헛되고 헛된 것 목숨이 붙어있기에
아옹다옹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죽이고 있다.

때로는 삐치고 때로는 웃고 때로는 아무짝에도 필요없는
자존심을 내세우며 아파하고 상처주고 상처받고, 왜 그렇게 살아야할까?

가득가득 차는 욕심을 버리고
또 버리며 사는 날까지 그렇게 버리며 살아야 할까 보다.

 

 


2004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