湖巖(호암) 李秉喆(이병철) 生家(생가)

2015. 12. 16. 06:28문화산책/고택과 문학관

 

소재지 :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 723

 

 

[湖巖(호암) 李秉喆(이병철) 生家(생가) 솟을 대문]


삼성그룹의 모체인 삼성상회를 설립하고
삼성물산을 세워 무역업을 하면서 제일제당과 제일모직을 설립하였다.


'중앙일보'를 창설하여 언론사 경영에 참여하였으며
사업의 다각화를 통하여 국가경제 발전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호암 이병철 선생 생가 팻말]


누구나 부러워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재벌로 손꼽히는
호암 이병철 생가는 어떤 명당이길래 그런 富(부)를 누릴 수 있었을까?


민간의 낭설에 의하면 호암 이병철 회장도 젊었을때 2번의
사업실패를 맛보았다고 전하고 세번째 시작한 대구의 쌀장사 삼성상회가
삼성그룹 모태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 진위는 가릴 수 없다 하네요.

 

 

[호암 이병철 생가 안내판]

 

[안내판 글 내용]

 

[우물과 사랑채]


그 동안 몇 차례의 증, 개축을 거쳐 집을 수리하면서
남부지방의 특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이 아쉽다 한다.


한국경제발전을 이끈 대표적인 인물인 삼성그룹 창업자
고 호암 이병철 회장의 생가가 관광객들에게 대문을 활짝 열었다.


'부자나는 곳에 가면 부자 된다'는 속설 때문인지
고 이병철 회장의 생가에는 부자되고 싶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호암 생가는 개방이후 이 지역의 새로운 명소가 되고 있다.
마을 이름도 부자마을이라 부르기도 한다.

 

 

[안채]


일반인에게 개방한 후 안채에는 도자기와 한복, 그릇 등
생필품들이 방마다 배치돼 있고 사랑채에는 병풍 등 생활소품들을 진열해 놓았다.


입구와 안채마당 두 군데 우물은 옛날처럼 두레박으로 물을 퍼올려 마실 수 있게 해 놓았다.

 

 

[안채 앞 우물]


원래는 우물이 사랑채 앞에 하나 밖에 없었는데
안채 앞을 흐르는 수맥을 막고자 우물을 별도로 하나 더 팠다한다.

 

 

[광]


호암선생이 태어난 생가의 재산은 천석지기였다한다.
천석을 쌓았던 광을 지나칠 수 없어 곳간에 해당하는 광을 들여다 보았지요.

 

 

[氣(기) 바위]


대문에서 바라보이는 산자락 아래 바위들이 흘러내리는 기를 모은다고 한다.
산세가 말대가리 형국으로 내려오다 노적봉같이 생긴 바위에 막혀 기가 뭉친 곳이라 하며,
남강의 물이 흘러오다 유속이 느려지면서 돌아가는 기가 이 땅의 터와 부딪쳐서
부자가 나오는 명당이라고도 한다.

 

 

[氣(기) 바위 전경]


풍수지리에 의하면, 이 집은 곡식을 쌓아 놓은 것 같은

露積峯(노적봉) 형상을 하고 있는 주변 산의 기가 산자락의 끝에

위치한 생가 터에 穴(혈)이 되어 맺혀 있어 그 지세가 융성할 뿐만 아니라,

멀리 흐르는 남강이 물이 빨리 흘러들어지 않고 생가를 돌아보며 천천히 흐르는

逆水(역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한다.

 

 

[氣(기) 바위]


생가 안채 오른쪽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바위의 모양이
마치 벼가마를 쌓아 놓은 것 같기도 하고, 돈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것 같이 보여
이 氣(기) 바위를 스다듬으면 부자가 된다는 설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들려
한번씩 만져보고 간다하네요.


전 사진만 찍고 그냥 왔습니다.
만져보고 올껄 잘못했나요??

 

 

[우물과 안채]


생가는 마치 龍(용)이 집을 품고 있는 형국이며,
 龍(용)에게 필요한 물이 생가내 우물에서 솟아나고 있다는 것이
호암 선생 집안이 오랫도록 복록을 누리는 이유라 하기도 한다.

 

 

[돌단풍]

 

[돌단풍]


생가 화단에 심겨져 있는 돌단풍이 봄을 맞아 활짝 꽃을 피우고 있었다.

 

 

[생가 앞쪽 별채]


호암 생가에는 개방이후 40만명의 사람들이 다녀갔다 한다.
부자가 태어난 집을 찾아 자신도 부자가 되는 기운을 받고 싶기 때문인 듯 하다.

 

 

[생가 뒤 가옥]


이곳도 누군가 재벌의 집이라 듣긴 했는데...
돌아오는 길에 그만 까먹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 내려 해도 가물가물 생각날 듯 생각날 듯하다
저만큼 멀어져 버렸어요....ㅠ.ㅠ

 

 

[별채]


결혼 후 분가하여 살았던 집은 생가 들어오는 골목 입구에
별도로 넓은 터에 별장처럼 생가보다 더 잘지으진 집이라 하지만,
사람이 살고 있어 개방은 하지 않고 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