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22. 06:19ㆍ문화산책/정자와 누각
소재지 :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
頭陀山(두타산. 1,352.7m)
[두타산 주차장]
외국의 지리와 풍속 신화 전설을 기록한
중국 최고의 지리책인 [산해경] 해외동경편에
'七年洪水 治山治水 檀君臣彭虞(칠년홍수 치산치수 단군신팽우)'로 되어있다.
지금으로부터 4300년전 단군 성조께서 팽우에게 높은 산과 냇물 등
산천을 다스리게 했는데, 그때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내려 온 산천이
모두 물에 잠기게 되자 높은 곳으로 피난을 가야 했다.
이때 팽우는 이 산에 머물게 되었고 그 후 무명인 이 산은
홍수 때 산봉우리가 섬같이 보였다고 하여 머리 頭(두), 섬 陀(타)자를 따서
두타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하기도 하고 또 생명에 도움 을 준 산이라 하여
일명 加利島(가리도)라 전해져 내려오기도 한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두타산의 '頭陀(두타)'는 梵語(범어) dhuta의 음역으로서,
번뇌의 티끌을 털어 없애고, 의. 식. 주에 탐착하지 아니하며 청정하게 불도를 수행하는 것을 이른다.
후세에는 산야와 세상을 순력하면서 온갖 신고를 인내하는 행각의 수행,
또는 그러한 수행자를 지칭한다고도 한다.
입장권을 끊고 조금 걸어 들어서면
곧장 이어지는 다리가 두타산으로 가는 입구이다.
[천하에 산수로서 이름난 나라는 우리나라만한 데가 없고,
우리나라에서도 산수로 이름난 고을은 영동만한 데가 없다.
영동의 산수 중에서도 기이한 형승으로 이름난 것은 금강산이 최고이고,
그 다음이 두타산이다.
산의 근원이 백두에서 일어나 동쪽으로 달려와 철령이 되고,
금강산이 되고, 대관령이 되었으며, 구덩이처럼 움푹 파인 곳은 계곡이 되고,
우뚝 솟은 것은 산봉우리가 되었다.
우뚝 선 것, 급하게 기울어진 것, 높고 험한 것, 탄탄하게 뻗은 것 거의가
한두 가지 형상으로는 말할 수 없는 수많은 모습을 지니고 있다.
두타산은 실로 삼척부의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골짜기의 깊음과 수석의 기이함이 인구에 회자된 지 오래되었다] (성암선생유고 권2)
[무릉계곡]
[무릉계곡 2]
2002년도에 집중호우로 거의 폐허화되었으나,
다행히도 절경이 펼쳐지기 시작하는 금란정 일대의 무릉계곡일대는
많이 훼손되지 않았다 하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崔寅熙 詩碑(최인희 시비)]
[낙조]
落照(낙조)는 두타산 무릉계곡을 소재로 썼으며,
삼화사 일주문 가기전 조금 못 미쳐 세워져 있다.
시가 적힌 부분만 좀 더 크게 해서 올려보았습니다.
[양사언 석각]
무릉계곡내 금란정 가기전에 바위에 새겨진 양사언의 글씨(양사언 석각)이 있다.
'武陵仙源 中臺泉石 頭陀洞天(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이라 쓴,
조선 전기 4대 명필의 한 사람인 蓬萊(봉래) 楊士彦(양사언, 1517-1584)의
호쾌한 필력이 넘치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작품 상징
동양의 근본사상인 유, 불, 선 삼교를 동양사상이 추구하는
최고의 이상인 천인합일로 승화시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조화, 통일, 일체화합을 의미함.
武陵仙源(무릉선원) - 道敎(도교)[神仙(신선)] 思想(사상)
유토피아 理想鄕(이상향)을 추구하는 염원과 無何有之鄕(무하유지향)의 유일성을 나타냄.
中臺泉石(중대천석) - 佛敎(불교) 또는 儒敎思想(유교사상)
자연과 인간의 조화와 통일을 추구하면서 인간의 내적 도덕성을 자연적인 발로로 나타냄.
頭陀洞天(두타동천) - 佛敎思想(불교사상)
번뇌의 티끌을 없애며 의식주에 탐착하지 않고 청정하게 불도를 수행하여 이땅에
佛國淨土(불국정토)를 이루고자 하는 願力(원력)을 나타냄. (안내판 참조)
조선 전기 4대 명필가의 한 사람인 봉래 양사언의 석각과
매월당 김시습을 비롯해 수많은 시인 묵객의 詩(시)가
1,500여 평의 무릉반석 위에 새겨져 있다.
아마도 이곳 냇가 무릉반석에 새겨져 있는 양봉래의 절묘한 글씨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점점 선명치 못하여져 감상하는 이들을 위해 이를
복각해 놓은 것이라고도 한다.
이들 세 용어 '선원, 천석, 동천'이란 말은 모두 도교사상, 신선사상과
관련한 무릉도원의 선경을 상징하고 있는 말들이므로, 양사언이 두타산의 진면목을
단 3개 용어를 통하여 참으로 적절하게 잘 표현해 놓고 있다고 생각된다
[양사언 석각]
양사언(1517~1584) 본관 청주. 호 봉래, 완구, 창해, 해객 별칭 자 응빙
명종 1년(1546)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대동승을 거쳐 삼등현감, 평창군수,
강릉부사, 함흥부사, 철원군수, 회양군수를 지내는 등 지방관을 자청하였다.
자연을 즐겨, 회양군수 때 금강산 만폭동 바위에
'봉래풍악원화동천' 8자를 새겼는데 지금도 남아 있다 한다.
안변군수로 재임 중 지릉의 화재사건에 책임을 지고 귀양갔다가,
2년 뒤 풀려나오는 길에 병사하였으며, 詩(시)와 글씨에 모두 능하였는데,
특히 초서와 큰 글자를 잘 써서 안평대군, 김구, 한호 등과 함께
조선 전기의 4대 서예가로 불렀다.
작품집에 '봉래시집'이 있고, 작품 중에는 많이 알려진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등이 있다.
[金蘭亭(금란정) 전경]
한말까지 유림들은 향교 명륜당에 모여 유학강론에
전념하였으나 한일합병을 당하여 폐강하기에 이르자 이에 분개하여
우의를 다지는 금란계를 결성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정자를 건립하기를 결의하였다.
그러나 일본 관헌들에 의해 제지당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뒤 1945년 해방을 맞이하자 금란계원과 그 후손들이 선인의 뜻을 계승하여
정자를 짓기로 합의하고 1949년 봄에 건립하였고 1956년 9월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金蘭亭(금란정) 현판]
[정면에서 담은 金蘭亭(금란정)]
이곳에서 무릉반석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금란정에는 계원들의 시구 현판이 걸려있고,
북쪽 삼화사의 풍경소리 또한 은은하게 들려온다 한다.
[金蘭亭(금란정) 현판]
金蘭亭(금란정)에는 글씨체가 제 각각
다른 현판들과 싯귀들이 적혀 걸려 있었다.
[金蘭亭(금란정) 현판]
[[金蘭亭(금란정)]
논어에 나오는 金蘭之交(금란지교)에서 따 온 이름이라고도 한다.
[金蘭亭(금란정) 내부에 걸린 편액들]
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語 其臭如蘭
(이인동심 기리단금 동심지어 기취여란)
<뜻 풀이>
두사람이 한 마음이면 그 날카로움이 쇠를 끊을만 하고,
한 마음에서 나오는 말은 그 향이 난초의 향과 같이 그윽하다.
[金蘭亭 洪在文 詩(금란정 홍재문 시]
[金蘭亭(금란정) ]
금란정 건물은 1910년 한일병합이 강제로 이루어진 이후
동해시의 향교가 그 기능을 상실하고 폐지되기에 이르자 울분을 참지 못한
선비들이 이곳에 정자를 짓고 학문을 교유하면서 지은 건물이라 한다
정자가 놓여있는 터에서 바라보면 무릉계곡
초입에 놓여있는 거대한 무릉반석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금란정 바로 뒤 바위에는 빽빽하게 적혀 있는 이름들....
저 숫하게 적힌 이름들을 보며, 인생무상을 느꼈다.
[금란정 백주년 기념비]
[무릉중대반석(약칭 무릉반석)]
옛 풍월객들이 수도 없이 이곳을 찾았으며,
이름을 천추에 남기려는 선비들은 반석에 이름을 새겼다.
그리고 옥호거사가 쓴 초서 12자는 명작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안내원도, 안내판도 없으니 명작이라 한들 내눈에는 다 명작같아보이기도 하고
그냥 평범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름을 천추에 남기려는 선비들은 반석에 이름을 새겨 놓았다.
바위 마다 깊게 새겨진 이름 이름 이름 이름 석자...
무엇을 저들은 나타내고자 했을까?
이름이였을까? 아니면 왔다간 자신들의 흔적을 바위에 새겨놓고 간 것일까?
신선이 노닐었다는 무릉계곡 일명 무릉도원이라 불리우는
무릉계곡은 두타산과 청옥산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계곡으로 수많은
기암고석과 절경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어 마치 현존하는 선경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無陵溪谷(무릉계곡)]
가는 곳마다 바위 사이로 흐르는 玉水(옥수)다.
그래서 이름도 無陵溪谷(무릉계곡)이라 불렀나 보다.
자연이 만들어놓은 아름다운 풀장을 보는것 같았다.
기암괴석이 즐비하게 절경을 이루고 있어,
마치 선경에 도달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무릉계는
수많은 관광객을 도취시키며, 많은 전설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유서 깊은 명 승지로, 1977년 국민관광지 제1호로 지정되었다.
태고의 신비와 전설 속에 무릉계곡은 이 곳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한 관광명소이다.
신선들이 노닐었다는 두타산 가는 길은 온통 선경이다.
이름들어 알만한 유명인사들의 싯귀와 바위에 새겨놓은 이름 이름 이름들...
인간의 텃없는 삶이 지나가버린 한줄기 바람같다.
선경아래 서면 모두가 신선이 아닐까
나 또한 선경아래 섰으니 오늘 하루는 신선이 되어나볼까
구름을 타고 비도 내리며 옛님과 함께 어울려
한바탕 질탕하게 놀아나 볼까
[되돌아 내려오며 금란정에서 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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