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26. 06:00ㆍ문화산책/고택과 문학관
이상화 고택은 여러번 포스팅해서 소개를 해 드렸지만,
조인스가 없어지고, 많은 자료들이 사라졌습니다.
다시 담아와서 소개를 해 드릴까 합니다.
청라언덕을 들린 후 며칠을 벼루었습니다.
이곳 주변을 다시 찬찬히 담아와서 소개를 해야겠다는~
그랬는데, 담아와서도 정리를 하지 않고 버려두었습니다.
다른 포스팅에 밀려 이제야 정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길 건너 이상화 고택 가는 길 부터 담아보았다.
길을 건너면 이렇게 거리에 태극기와 이상화 시인,
국채보상운동을 일으키신 민족운동가 서상돈 선생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한국관광의 별과 한국인이 꼭 가봐야할 한국관광 100선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대구 중구 골목투어 안내도가 그려져 있다.
참고하시면 더 알뜰한 여행이 될 수 있겠지요.
뒤돌아 다시 담아 올려봅니다.
이곳을 지나, 보도를 내려다보면
이상화님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전문은 아니지만,
보도에 적혀 있다.
들에도
이렇게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골목길은 우리가 살아온 역사이자 문화이며 소중한 문화재이다.
골목길은 우리가 살아온 상상의 공간이며 창조의 시작이다.
대구근대골목으로 조그만 여행을 통해 잊혀진 추억과 삶의 공기를 찾다.
라는 슬로건 아래 안내도와 함께 간단한 설명도 적혀 있다.
싯귀가 끝나는 지점에서 좌측으로 안내판과 골목이 보입니다.
이곳을 통해 골목길이 끝나는 지점에 이상화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골목길을 들어서면 곧장 좌측으로 커다란 벽화속의 이상화 시인님이 반겨주지요.
안쪽으로 조금 더 가면 이상화 시인의 생애와 그의 대표 詩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전문이 적혀 있습니다.
글씨가 작아 읽기가 불편하시면 클릭하셔서 원본크기로 보셔요.
담쟁이가 벽을 타고 오르는 풍경과 함께 아치가 세워진 곳을
지나면 바로 곧장 보이는 서상돈 고택과 좌측으로 이상화 고택이 보인다.
뒤돌아 지나온 골목길도 담아보았다.
오래 들리지 않았더니, 인력거도 있네요.
앞쪽에는 한복을 대여해주는 곳도 있지만, 담아오지 않았네요.
앗 나의 실수...ㅎㅎ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한복을 대여해서 입으시고 골목길을 둘러보는 것도 좋겠죠.
이곳은 따로 포스팅해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이상화 고택만 들려보겠습니다.
이곳에 올린 사진중 자세히 보시고 싶으시다면 클릭하셔서 보시면 됩니다.
서상돈 고택 쪽에서 담은 이상화 고택 전경
이젠 이상화 시인의 고택으로 들어가보실까요.
일제당시 민족시인이었던 이상화 선생 고택과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서상돈 선생의 고택은 대구시 중구 계산동에
서로 이웃하고 있으며 그동안 지역에서는 이들 고택에 대한 보존운동이
펼쳐져 대구시민의 오랜 숙원이 이루어졌다.
李相和(이상화, 1901~1943) 본관은 경주.
아호는 想華(상화) 尙火(상화) 白啞(백아) 無量(무량)을 썼다.
한국 현대시의 이정표를 세운 민족시인 이상화는
아버지 時雨(시우)와 어머니 金愼子(김신자)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큰형 상정은 독립운동가이다.
5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큰아버지 一雨(일우)에게 교육을 받았다.
1916년 경성중앙학교에 입학해 1919년 수료하고,
강원도 일대를 방랑하기도 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대구학생운동에 참여하고
백기만과 함께 거사하려다 사전에 발각되어 잠시 서울에 피신했다.
1921년 현진건의 추천으로 '백조' 동인으로 창간호에
시를 발표하고 3호에는 '나의 침실로'를 실었다.
아테네 프랑세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하다
관동대지진으로 귀국하였다.
신간회 대구지회 출판간사로 있으며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한 사건에 연루돼 대구경찰서에 구금되기도 했다.
'역천' '나는 해를 먹다.' '서러운 해조' 등을 발표하고
백씨 이상정 장군을 만나러 중국을 유람하고 돌아와 경찰에 구금됐다.
말년에 위암으로 4년간 투병하시다가 이곳에서 운명하셨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기억하며, 더 많은 시간이 흘러도
아니 역사가 살아있는 한 그의 생각과 사상과 詩(시)들은 전해질 것이다.
국민훈장 애족장이 추서되고 죽순문학회서 '상화시인상'이 제정됐다.
일제의 칼날에 맞선 저항시로 나라 잃은 민족의 해방을 부르짖은
독립투사로 학생들에게 민족을 깨우쳐주던 스승으로 짧은 생을 불태운 시인 이상화
봄이 오기를 목 놓아 노래했던 시인 이상화는 제국주의 지배의 모순을
드러내며 현실 사회의 개선을 위해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벌인 저항서인이다.
암울했던 일제시대 민족 광복을 위해 저항정신의 횃불을 밝힌
'나의 침실로'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등 부단한 시작활동을 통해
치열한 저항정신을 보여주었고 동시에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가 바탕이 된
투명하고 아름다운 시적 완성을 이루어 냈다.
본 고택은 이상화가 말년(1939~1943)을 보낸
역사적인 장소로 이상화의 숨결이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더 많은 시간이 흘러도 아니 역사가 살아있는 한
그의 생각과 사상과 詩(시)들은 전해질 것이다.
대구시민의 오랜 숙원이던 독립 운동가이며
시인으로 유명한 이상화. 국채보상운동의 선구자셨던
서상돈 고택이 2008년 복원 개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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