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교육박물관(교육역사관 1)

2021. 3. 1. 06:00뿌리를 찾아서/忠. 孝. 烈

[민족저항기의 자료가 전시된 전시실 내부]

 

우리나라 전통시대부터 개화기,일제강점기까지의 교육의 변화와 발전을 소개합니다.

교육역사관은 한 국가와 인간의 발전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교육의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교육역사관 1은 우리나라 전통시대부터 개화기, 민족저항기까지 교육의 변화와 발전을

시대상의 흐름에 따라 소개합니다.(옮겨 적은 글)

 

오늘은 3.1절이기에 그 중에서 민족저항기의 자료들을 소개해 드릴까합니다.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 신우동맹]
[가슴속에 품은 애국 / 비밀결사단]

 

대구사범학교

 

1939년 7월, 경부선 복선화 공사에 동원된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이

일본인 교사의 차별에 항거한 '왜관사건'을 계기로 '문예부'를 조직하여

비밀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민족성이 담긴 학생 문집 '반딧불'을 발간하여 민족정힌을 일깨우며,

일제에 항거하는 등 문학활동을 통한 문예부의 항일운동은 '연구회',

'다혁당'으로 이어졌다.

 

우리 토깡이

 

바람은 부는구나 떠는구나

西쪽나라 죽고 죽으랴니

東쪽나라 뻙은 물이 한창이구라

불은 元來 꺼지는 것이다.

자든 토깡이 깨일때가 이르럿거늘

둘러쌓은 총구먹을

뚫고 뚫어 다라나자면

첫재는 날램이요 둘재는 연구인걸

날램이 내할터이니 연구맡으소서

연구내할터이니 날램맡으소서 -D.S-

 

(반딧물에 게재된 항일 시로 우리를 西(서)쪽나라와 작은 토끼로, 일제를 東(동)쪽나라로 비유하였다.

독립을 위해 학생들의 몸과 정신 수련을 강조한 작품으로, '불은 元來(원래) 꺼지는 것'이라는

문구에 일제의 패망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표현하였다.)

 

대구공립상업학교

 

태극단

1942년 대구공립상업학교와 인근 학교 재학생이 모여 결성한 비밀결사단체이다.

무장 항일투쟁을 준비하다 이듬해 5월 단원 전원이 체포되었지만 이 단체의 활동은

1920년대 광주학생항일운동과 함께 대표적인 학생독립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학생들이 일어나다]

 

국권침탈 이후 일제는 '조선교육령'을 통해 우리의 민족성을 없애려고 하였다.

대구의 학생들은 일제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의식을 고취하기 위하여

비밀결사 단체를 결성하여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

 

[민족을 위해 떠난 소년 / 정학이]
[목숨을 건 필사적 항쟁 / 동맹휴학]
[세 친구의 항일운동]
[세 친구의 항일운동]
[대구의 3.1 운동]
[전시실 내부 전시자료 전경]
[전시실 내부 전시자료 전경]
[태극기]
[대구의 3.1 운동 / 자세히 보시려면, 클릭하셔서 원본싸이즈로 보셔요]
[대구 만세운동의 출발점 / 계성학교 / 아담스관]
[계성학교 혜성단 / 대구만세운동의 출발점 아담스관]
[전시실 내부 전시자료 전경]
[태극단 비문 초안 / 복제(대구상원고등학교 역사관 소장자료)]

 

태극단은 대구상원고등학교의 전신인 대구공립상업학교의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1942년에 조직한 비밀 결사 단체이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투쟁할 것을 강령으로 삼아

항일운동을 펼쳤지만, 1943년 5월에 단원의 밀고로 26명의 단원 전원이 체포되었다.

 

단장 이상호를 비롯하여 단체를 이끌던 6인은 높은 형을 선고 받았고, 고문으로

숨지거나 옥고를 치렀다. 이 문서는 태극단 결성의 의미를 되새기고, 단원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석의 비문 초안으로 작성되었다.

 

[전시실 내부 전시자료 전경]
[전시실 내부 전시자료 전경]
[대한매일신보]

 

국채 1,300만원 보상취지문 내용 중

 

무릇 신민이 忠(충)으로 행하고 義(의)를 숭상하면 나라는 흥하고 백성은 평안을 누리며,

不忠(불충)하고 不義(불의)하면 나라는 망하고 백성의 멸함은 고금의 역사에 근거함이라.

 

아! 우리 이천만 동포는 국가가 이처럼 위난인데도 결심하는 이 없고 방도를 기획하는

일 한가지 없으니 나라가 ㅁ아해도 괜찮단 말씀인지... 우리의 국채 1,300만원은 대한의

존망이 달린 일이라 할지니... 우리가 어찌 월남 등 멸망한 민족의 꼴을 면할 수 있으리오.

이천만 동포가 석 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만 대금을 모으나면 거의

1,300만원이 될 것이니... 국민들의 당연한 의무로 여겨서 잠시만 결심하면 갚을 수 있는

일이라... -대한매일신보(제444호) 1907년 2월 21일-

 

[국채보상운동 / 서상돈 / 김광제]
[김광제]

 

민족운동가

1907년 대구광문사 사장, 국채보상취지서 발표 및 운동 전개

1910년 대한협회 활동

1910년대 마산구락부에서 문예활동

1920년 제2의 독립선언서를 작성하여 제2의 3.1운동 계획

1982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서상돈]

 

민족운동가

1898년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활동 민권보장 및 참정권 획득 운동

1907년 대구광문사 부사장 국채보상취지서 발표 및 운동 전개

1999년 건국훈장 애족장

 

[세계가 주목한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되다]
[忠義所激(충의소격)]

 

국채를 보상하기 위해 연금을 모집하는 일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이 매일

넘쳐나는데 그 중 특이한 사례로는 남문 안 포목전 전득영씨의 12세 아들이

세뱃돈으로 받은 구화 2원을 의연금으로 낸 것과 상사동에 사는 부인이 오직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머리에 꽃고 있던 은비녀를 팔아 돈을 보냈다.

 

이처럼 평범한 부인과 어린아이에게도 충의가 넘쳐나니 한국의 앞날에 큰

희망이라 하더라. -대한매일신보(제447호) 1907년 2월 24일-

 

[전시실 내부 전시자료 전경]
[한국판 안네의 일기]
[여학생 일기 / 복제(개인소장)]

 

현재는 경북여자고등학교인 대구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재학생이

1937년 2월부터 12월까지 약 11개월에 걸쳐서 작성한 일기장이다.

 

음악회 연습이나 조회 참여, 수학여행 등 오늘날의 학생들과 별로

다르니 않은 일상을 기록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일본어를 국어라 부르고,

신사를 참배하고, 내선일체를 강요받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일제강점기의 강압적인 환경에 놓인 여학생의 불안한 심리를 확인할 수 있다.

(옆의 설명글 옮겨 적음)

 

[ [남학생일기]

 

'등교하자마자 교련복을 입고 무장을 하였다'

남학생일기는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현 경북 고)학생 안장호가

쓴 것으로 1933년 4월 5일부터 1937년 2월 21일까지의 기록이다.

 

이 일기에는 만주사변기념일 행사 연습을 위해 복장을 한 내용과

교문 밖에 집합해 전투 교련을 한 내용 등 주로 전투 연습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쓰여 있다. 반면 한 일본이 선생님이 병으로 일찍

귀가하여 '선생님은 힘드시겠지만' 빨리 마치게 되어 기쁘고 고맙다는

내용으로 남학생의 익살스러운 모습도 나타나 있다. (옮겨 적은 글)

 

깜박하고 담지 못한 남학생 일기도 흐려서 읽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대충 내용을 적어 올렸습니다.

 

[황국신민화 교육]
[전시실 내부 전시자료 전경]
[전시실 내부 전시자료 전경]
[전시실 내부 전시자료 전경]
[나라를 잃고 교육마저 빼앗기다]

 

일제는 강압적으로 우리나라를 빼앗은 후 헌병의 무력을 동원하여

무단통치를 실시하다가 3.1운동 이후에는 우리 민족을 분열시키기 위해

문화통치를 하였다.

 

이후 일제의 침략 전쟁이 확대되면서 우리 민족정신을 없애기 위해

일본어와 일본 역사 가르치기, 일본 왕에게 충성 맹세하기, 일본식 성명 강요,

우리 말과 글 사용 금지 등의 민족말살정책과 황국신민화정책을 추진하였다.

 

[황국신민 서사비 / 궁성요배]
[일제강점기 고등학생들의 수학여행 일정표]

 

일제의 강압적인 식민교육과 대구 학생들의

독립운동 등을 유물 전시 및 재현을 통해 전시된 자료를

소개하였습니다.

 

3월이 되면 늘 생각나는 '유관순 누나'

오늘도 3월 하늘 우러르면 그날의 함성이 들려올 듯합니다.

어릴 적부터 들어온 그 이름 유관순 누나 아직도 그는 살아서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누나로 남아 있습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지키기 위해 목숨도 아깝지 않게 여기시고

노력하신 선조 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오늘 하루만이라도

경건하게 지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