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 松湖書院(송호서원)

2019. 3. 26. 05:53문화산책/향교와 서원

 

소재지 : 경상북도 군위군 군위읍 외량리

 

[松湖書院(송호서원) 표지석]

 

참 이상한 현상 하나.

네이버에서는 주소 검색 하면 군위 송호서원이 나오는데...

왜 이곳에서는 주소를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서원앞 '송한지'는 주소 검색에 나오는데,

'송한지'가 서원보다 더 유명하다는건가?

아님 더 중요하다는건가?

그도 저도 아니면 연꽃으로 유명한 '송한지'가 더 널리 알려져서인지..

암튼 좀은 야릇하다.

 

그나 저나 난 '송한지'는 스쳐지나치고 내게 더 중요한 '송호서원'만 담고 돌아왔다.^^

연꽃철이여서 연꽃이 피어있었다면 지나치지 못하고 담아왔겠지요. ㅎ

 

[松湖書院(송호서원) 전경]

 

지은지 얼마 되지 않은듯 반듯하고 깨끗한 서원의 모습이 어색해 보였다.
고택이나, 서원, 서당 등 문화재로 등록된 건물은 복원을 하여도 깨끗함보다는
원건물을 손상하지 않을정도로 하였으면 좋겠다는것은 저 혼자의 생각인지...

 

[持敬門(지경문) 현판]

 

[持敬門(지경문)]

 

지경문은 닫혀 있고 사람의 인기척도 없다.
행여 다른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협문이라도 있을까 하고
찾아보았지만, 역시... 없다.


들어갈 수 없는 곳은 늘 아쉽지만, 문을 닫아 둘 수 밖에 없는
사정을 익히 알기에 나무랄수도 없다. 담너머로 담을 수 밖에는..
그것도 담이 높으면 어쩔수 없이 외각만 담고 돌아올 수 밖에 없다.

 

[송학서원 옆 유허비각 전경]

 

영조 1년(1725)에 창건하여 영조 29년(1753) 서당으로 발족하였다.
정조22년(1798) 사당을 건립하여 松湖祠(송호사)로 개창하였다가
순조 15년(1815) 송호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83년에 복원되었다 한다.

 

[松湖書院(송호서원) 현판]

[담너머로 담은 松湖書院(송호서원)]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祠宇(사우), 4칸의 강당, 5칸의 廚所(주소),
중앙의 神門(신문)과 양쪽 협문으로 된 三門(삼문) 등이 있다.

 

[송호서원과 옆 협문]

 

송호서원은 앞쪽에 강당을 두고 뒷면에
묘우인 尙德廟(상덕묘)를 둔 전학후묘의 배치이다.


연안이씨 이형례의 부친인 李淑璜(이숙황) 그리고
그의 고손인 李軫(이진)과 李輔(이보)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廟宇(묘우)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담너머로 담은 尙德廟(상덕묘)]

 

李淑璜(이숙황)
본관 延安(연안). 호 茅軒(모헌), 李軫(이진)과 李輔(이보)의 고조부이다.
세종 때에 용궁현감을 역임하였으며, 뒤에 成均館直講(성균관직강)을 지냈다.

 

[담너머로 담은 尙德廟(상덕묘)]

 

李輔(이보, 1545~1608)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 延安(연안). 자 景任(경임), 호 南溪(남계).
성리학자 軫(진)의 아우이다. 군위에 살면서 柳成龍(유성룡)으로부터
학문을 전수받아 경전과 性理(성리)에 밝았다.


선조 13년(1580)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金垓(김해)의 從事官(종사관)으로 크게 활약하였다. 전란으로
피폐해진 인동을 임시로 맡아 다스리면서 募粟官(모속관)을 겸하여
군량미 조달에 공이 많았다.

 

[담너머로 담은 내삼문]

 

뒤에 金應南(김응남). 鄭崑壽(정곤수) 등의 천거로 당진현감에
임명되었으나, 인동주민들의 요청에 의하여 인동현감으로 부임하였으며,
선정을 베풀어 크게 명망이 있었다.


체찰사 李元翼(이원익)이 天生山城(천생산성)을 쌓을 때, 그 役事(역사)를
책임맡아 수개월 만에 준공을 보았으며, 1604년 거창현감으로 전직되었으나
노쇠하여 관직에서 물러났다.

 

[담너머로 담아 본 송호서원]

 

李軫(이진, 1536~1610)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 延安(연안). 자 君任(군임), 호 松塢(송오).
군위 출신. 일찍이 李滉(이황)의 문인이 되어 柳成龍(유성룡)과 더불어 수학하였다.


선조 26년(1593) 임진왜란 당시 좌랑으로서 閔汝慶(민여경)과
함께 의주에서 경성으로 양곡을 선박으로 수송하는 임무를 맡았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정읍현감으로서 순찰사 陣下(진하)에 들어가 왜적을 맞아 싸웠다.

 

[송오 남계선생 유허비각]

[송오 남계선생 유허비]

[송오 남계선생 유허비 뒷면]

[활짝 핀 청매]

[유허비각 뒤쪽 청매 한그루]

[송오서원 전체 전경]

 

매년 3월 中丁(중정, 두번째 丁日)과 9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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