慶州鄕校(경주향교)

2019. 2. 7. 05:53문화산책/향교와 서원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17-1

 

[慶州鄕校(경주향교) 외삼문]

 

원래는 이곳을 통하여 향교로 들어가야하지만,
이곳은 향교의 큰 행사나 있을 때 열리는 곳이구요.


우측길 향교 담을 따라 걷다가 담이 꺾어지는 쪽으로 가면
또 다른 향교의 문이 있다. 이 문은 항상 개방되어 있으니 향교를 가시려면
이곳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경주향교 표석비]

[慶州鄕校(경주향교) 현판]

[慶州鄕校(경주향교) 출입문]

[경주향교 배치도]

[경주향교 안내글 내용]

[향교 출입문에서 담은 전경]

 

일각문을 들어서자마자 관리사동 바로 앞에
신라시대의 우물로 추정되는 오래된 우물이 있다.


이 우물은 올해 실시되는 '우물포럼' 대상에 포함되는 등
그 역사적 가치가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는 우물이라 합니다.

 

[다시 담아본 우물 전경]

 

慶州鄕校(경주향교)는 경주시의 계림 서쪽, 蚊川(문천) 북쪽에 있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하며, 신라시대 신문왕이
682년에 國學(국학)을 설치하였던 곳이라고 한다.

 

[우측 전교실 전경]

 

그 후 경주의 국학은 고려 왕조에 들어서서 鄕學(향학)으로 강등되었다.

 

[좌측 고직사 전경]

 

조선 개창 뒤에도 향교로써 지방교육 기관의 역할을 이어갔다.
成宗(성종) 23년(1492년) 경주부윤 崔應賢(최응현)에 의해 한양
성균관의 제도에 준하여 새로이 중수되었다.

 

[입구에서 담은 앞쪽 향교로 통하는 협문 젼경]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宣祖(선조) 33년(1600년)
대성전과 전사청을 중건하고, 4년 뒤에는 대성전의 동서 撫(무)를 중건하였다.
명륜당과 동서 齋(재) 등의 강학공간은 光海君(광해군) 6년(1614년)에 중건되었다.

 

해방 뒤 6.25 전쟁으로 향교는 관리되지 못하고 방치되었고,
서재와 전교실이 무너지기까지 하였다.

 

[동재 뒤쪽 전경]

 

1956년에야 지방 유림들이 다시 모성계를 결성,
향교를 중수하고 전교실을 복원하였다. 1978년 담장을 다시 쌓았다.

 

[尊經閣(존경각) 현판]

[尊經閣(존경각) 전경]

 

명륜당 북쪽, 송단 동쪽에 위치해 있는 정면 2칸, 측면 1칸의 건물로
顯宗(현종) 10년(1669년) 부윤 閔周冕(민주면)이 송단 동쪽에 지었다.
지금의 건물은 1989년에 복원된 것이다.


도서관의 기능을 담당한 곳으로 책도 관리하고
옛 성균관에서 내려온 글을 판각 하던 곳이었다 합니다.

 

[尹李相公晩運頌功碑(윤이상공 만운송공비)]

[명륜단 옆 서재 전경]

 

경주향교는 경상북도 안에서 가장 규모가 큰 향교이다.
제향공간인 대성전을 앞에 두고, 강학공간인 명륜당을 뒤에
두는 전형적인 前廟後學(전묘후학) 배치를 갖추고 있다.

 

[명륜당 옆 동재 전경]

 

현재는 대성전과 명륜당, 동무, 서무, 전사청,내신문등이 남아 있고
특히 대성전은 정면3칸 측면3칸의 맞배지붕 양식으로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明倫堂(명륜당) 현판]

[明倫堂(명륜당)전경]

 

경주향교에서 교생들이 학습하고 생활하는 곳,
명륜당과 동서 재를 포함하는 강학공간은 대성전의 제향공간보다 낮게 배치되어 있다.

 

명륜당은 앞면 5칸, 옆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집이다.
중앙에 대청 3칸을 두고 좌우로 겹실 1칸을 두었다. 앞면 1칸은 모두 통칸이다.

 

[明倫堂(명륜당)]

 

憲宗(헌종) 7년(1841년)과 高宗(고종) 10년(1873년)
대성전과 함께 중건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1978년에 다시 중건되었다.

 

1982년에 동재와 같은 양식으로 서재와 함께 고직실이 중건되고,
1995년 명륜당에 이어 2002년에 동재가 중건되었다.

 

[명륜당 우측 전경]

 

동서 재 모두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축물로
앞면 반칸에 툇마루를 두고 내부는 모두 통칸으로 삼았다.

 

[명륜당 좌측 전경]

 

경주향교스테이는 2010년부터 시작해 매년 성년식(관,계례)반,
예절학교반, 제사의례반, 세시풍습반, 서예및 한문서당반등 5개분야별로
전통문화 및 유적지 답사 체험프로그램을 서재 및 명륜당에서 운영한다.


현재 이곳에서는 2011년부터 계속 진행되어온
전통혼례는 현재 경주문화재단과 함께 하고 있으며,
혼례는 경주만의 특성적인 전통혼례로서 매주 토, 일요일 오후 3시에 치른다.

 

[경주 향교 외삼문과 내삼문 전경]

[경주향교 대성전 안내판 글 내용]

[神三門(신삼문) 현판]

[神三門(신삼문) 전경]

 

대성전앞 내삼문이다.

 

[大成殿(대성전) 전경]

 

慶州鄕校(경주향교) 大成殿(대성전)은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에 있는 조선 시대의 건축물이다.
2011년 12월 2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727호로 지정되었다.
경주향교는 대설위 향교로서 경상북도에서 규모가 가장 큰 향교이다.

 

[대성전 좌측 서무 전경]

 

전체적으로 임란이후 중건 때의 모습(기단의 축조방식과 고맥이석의 조영기법,
공포와 창호, 가구에 고식의 기법)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2000년 수리때 종도리에서
발견된 상량문은 대성전의 역사와 경주향교의 변화를 밝혀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대성전 우측 동무 전경]

 

전면 3칸, 측면 3칸. 맞배지붕. 주심포계 외 1출목 2익공식 공포로 짜여 있다.

 

[담밖에서 담은 대성전]

 

대성전 앞면의 계단석은 雁鴨池(안압지)에서 옮겨왔다고 하는데,
명륜당 기단 등에서 발견되는 석탑 부재 등의 유구와 함께 보존 가치가 크다.

 

[내삼문과 대성전]

 

대성전에 딸린 건물이자 대성전과 함께 향교의 제향공간을 이루는
동서의 撫(무)는 전면 12칸에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선조 37년(1604년)
부윤 尹惺(윤성)이 중수하였는데, 5년 뒤인 광해군 원년(1609년)에 동서 무가 영건된 것을
축하하여 전교를 받들어 朴汝樑(박여량)이 지은 祝文(축문)이 남아 전한다.

 

[대성전 담과 동무 뒤쪽 전경]

 

대성전에서는 해마다 음력 2월과 8월에
釋奠禮(석전례)가 열리며, 그 밖의 다른 시기에는 개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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