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17. 06:03ㆍ문화산책/향교와 서원
소재지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 373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1호
[東洛書院(동락 서원) 전경]
[동락 서원 강당 안내판 글 내용]
[동락 서원 강당 안내판 영문 글 내용]
[동락 서원 앞 380년 된 노거수(은행나무) 전경]
효종 6년(1655)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張顯光(장현광)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서원의 강당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1호이다.
[380년 된 노거수(은행나무)]
공자가 은행나무 단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 杏壇(행단)이다.
'학문을 닦는 곳'이라는 뜻으로 널리 쓰이는데 우리나라의 향교나 서원에 어김없이
커다란 은행나무가 서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遵道門(준도문) 현판]
[동락 향교 외삼문 遵道門(준도문) 과 안내판]
[遵道門(준도문)]
서원 외삼문 계단을 올라갔건만 한 곳의 빈틈도 없이 닫혀있다.
행여나 하고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역시....
올려다보고 담아 보았지만, 遵道門(준도문) 현판 글씨 밖에는
담을 수 없어 실망스럽지만, 서원의 주변을 담았다.
[동락 서원 좌측 아래쪽에서 담은 전경]
숙종 2년(1676) '東洛(동락)'이라 사액되어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다.
[좌측에서 담은 동락 서원 전경]
東洛(동락)이란 동방의 伊洛(이락)이라는 뜻으로
'仁同邑誌(인동 읍지)' 나 '증보문헌비고'의 祠院條(사원도)에 의하면,
효종 6년(1655) 제자들이 설립하여 숙종 2년(1676) 동락이라는 사액을 받고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고 기록되었다.
[天淵臺(천연대) 전경]
'天淵臺(천연대)'라는 글자가 세로로 새겨져 있는데
이 刻字(각자)가 조성된 시기와 유래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天淵臺(천연대)]
'天淵臺(천연대)' 는 '詩經(시경)'의 대아한록편에 나와 있는
'鳶飛戾天魚躍于淵(연비려천 어악우연)'
솔개는 날아 하늘에 닿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노니
이라는 문장에서 인용한 글자로, 인륜의 '道(도)'는 억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와 같이 행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는 의미라 한다.
[서원 좌측 담]
서원으로 들어가는 외삼문은 닫혀 있고,
이곳저곳 기웃거려 보았지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없다.
[담 밖에서 담아 본 동락 서원]
사진으로 보기에 담도 낮은 듯 보이지만,
층으로 쌓아놓은 담은 외부의 손길도 피하는 듯....
[아래쪽에서 담은 서원 담과 누각]
[아래쪽에서 담은 동락 서원 담]
비탈진 둔덕 위에 쌓은 담은 낮은 듯 보였지만,
가팔진 둔덕 위에 있어서 오르기도 힘들었지만, 근처에
가면 높아서 담 밖에서 사진 담기도 거부하네요.
[동락 서원 좌측 담 전경]
[구미대교 전경]
[380년 된 노거수(은행나무)]
주변으로 떨어진 은행이 수북하게 늘려있다.
한때는 은행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주워갔다는데...
요즘은 떨어진 채 그냥 둔 곳이 더 많다.
[다시 담아 본 구미대교 전경]
[서원 앞 쉼터 육각정]
[서원 앞 노거수와 동락 서원 전경]
[동락 서원 우측 담]
[동락 서원 우측 담 2]
행여 올라가면 담 너로 서원내부를 담을 수 있을까 하고
오르려 하였지만, 쌓인 낙엽과 솔잎이 미끄러워 근접을 못하게 하네요.
아래쪽에서 담만 담고 돌아왔습니다.
[동락 서원 관리소? 전경]
[동락 서원 관리소?]
이곳도 문이 닫혀 있기는 마찬가지...
그래도 요즘은 문을 열어둔 곳도 많은데...
또 문을 닫아 두었더라도 열고 들어갈 수 있게 해 둔 곳도 있어서..
둘러보고 나올 땐 얌전하게 다시 처음처럼 닫아놓고 오기도 하였는데..
이곳은 문도 닫혀 있고 어디에도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누구에게 여쭈어볼 수도 없기에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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