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2. 12. 05:50ㆍ뿌리를 찾아서/왕릉 답사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 67-1
[주차장에서 담은 오릉 안내판과 숭덕전 외삼문 전경]
넓은 주차장에는 주차된 자들이 별로 없이 텅 비어 설렁하긴하지만,
그래도 간간이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은 끊일듯 이어지고 있는듯 하다.
[오릉 출입구 삼문 전경]
삼문 좌측 옆 한쪽에 세워놓은 차량 옆으로 나란히 주차해 놓고,
매표소부터 들렸다. 경노라 입장권은 없지만, 그래도 표는 받아야겠기에...
증명서를 보여드리고 입장권을 받았다.
[경주 주요관광지 거리표와 안내도]
[만화로 설명한 박혁거세 탄생과 신라건국]
[경주 오릉 안내도 글 내용]
[오릉 안내도]
[오릉 영문, 중국어 안내 글 내용]
[五陵(오릉) 표지석]
[삼문(출입구) 쪽에서 담은 안쪽 전경]
사적 제172호. 지정면적 8만 9,950㎡.
'三國史記(삼국사기)' 등 문헌에서는 '蛇陵(사릉)'이라고도 한다.
[오릉 숲]
이 능은 남산의 서북쪽에 해당하는 경주 분지의 남쪽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라 초기 박씨 왕들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오릉 숲]
모두 5기가 있으며,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거서간과 왕비 閼英(알영),
제2대 남해차차웅, 제3대 유리이사금, 제4대 파사이사금의 무덤으로 전하고 있다.
[신라오릉정화사업기념비 전경]
[신라오릉정화사업기념비 글 내용]
겨울이라 잎은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았지만,
그래도 숲은 내게 도시에서 찌든 마음속 먼지까지 정화시켜주는듯하다.
[오릉 숲]
함께 한 남편이
"천천히 둘러보고 와" 하기에
"그럼 나 먼저가요."
하고는 총총히 오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릉 숲]
오릉 동쪽에는 박혁거세의 위패를 모신 '崇德殿(숭덕전)'
그 뒤에는 박혁거세의 왕후 알영이 탄생한 '閼英井(알영정)'이 있다.
[오릉 숲]
'三國史記(삼국사기)'에 제1대 朴赫居世(박혁거세), 제2대 南解(남해),
제3대 儒理(유리), 제5대 婆娑王(파사왕) 등 4왕이 모두 曇嚴寺(담엄사) 북쪽
蛇陵園內(사릉원내)에 장례를 지낸 기록이 적혀 있다 합니다.
[오릉 숲]
'三國遺事(삼국유사)'에는 제1대 박혁거세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에 승천하였다가 7일만에 유체가 5체로 나누어져 땅에 떨어졌다.
[숲사이로 보이는 오릉 전경]
나라 사람들이 이를 모아서 장사지내려 하였으나 큰 뱀이
방해하므로 5체를 각각 장사지내서 오릉이 되었고 이로 인해
蛇陵(사릉)이라 하였으니 담엄사 북쪽에 있는 능이 그것이다.
라는 기록이 적혀 있다 합니다.
[오릉 숲]
이곳이 그 오릉입니다.
그렇게만 추정할뿐 확실한건 아니랍니다.
[우측 옆에서 담은 오릉 전경]
그러나 담엄사 북쪽에 있다고 기록되어있으니
담엄사의 유적만 확인되면 신라초기 왕들의 무덤인지
아닌지도 알 수 있겠지요.
[우측 옆에서 담은 오릉 전경]
경주 오릉의 내부 구조는 알수 없어나 외형은 경주 시내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다른 많은 삼국시대 신라고분과 같이 표면에 아무런
장식이 없는 원형 토분으로 되어있다.
[崇義門(숭의문) 현판]
[崇義門(숭의문) 전경]
앞쪽 노거수 두 그루가 수문장처럼 숭의문을 지켜주는듯
자리하고 있는 풍경이 좋아 한컷 담아 보았습니다.
[祭閣(제각)]
임진왜란 이후 박씨 문중에서 주관 춘분 때는 숭덕전
추분 때는 오릉 앞 제각에서 제사를 지낸다 합니다.
[앞쪽에서 담은 오릉 전경]
1호분의 앞쪽에는 후대에 세운 장명등, 비석, 배례석 등이 있습니다.
[1호분앞 석물과 오릉]
오릉은 말 그대로 다섯개의 능인데,
이 다섯개를 한 눈에 보기는 힘이 듭니다.
특히 사진으로는 더더욱....
[좌측에서 담은 오릉과 숲길 전경]
릉 안쪽으로 들어가서 담으면 모를까?
그러나 릉 한쪽은 출입금지 구역이니 그렇게 할 수도 업으니
이렇게 담는 것으로 만족해야겠습니다.
[오릉 전경]
후대에 세운 장명등, 비석, 배례석 등이 있다.
[1호분앞쪽 석물]
무덤은 마립간 시대의 대표적 무덤 양식인 돌무지덧널무덤으로
추측되는데, 신라 건국초기의 무덤은 돌무지덧널무덤이 아니라
널무덤이나 덧널무덤이라고 조사되었으므로, 오릉이 신라 초기의
왕릉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합니다.
[오릉의 이모저모]
돌무지덧널무덤, 즉 적석목곽묘로 추정되는 이유는 대형봉토분을 갖는
적석목곽묘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목곽이 썩게되면 붕괴되면서 봉분의 정상부가
살짝 내려앉으면서 편평해지게 되는 현상이 보이기 때문이다.
[오릉의 이모저모]
다만 봉분 자체적인 크고 작은 붕괴나 유실은 꼭 목곽이
썩는 것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추측에서 그칠뿐이다.
[오릉의 이모저모]
그리고 눌지 마립간대의 치트키 '修葺歷代園陵(수즙역대원릉)'의
기록으로 인해서 원래의 무덤을 크게 적석목곽묘로 개축했을 가능성도 있다.
[뒤쪽에서 담은 오릉 전경]
가장 높은 무덤이 약 8미터에 이른다고 하니
능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실 수 있으시겠죠.
무덤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언덕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뒤쪽에서 담은 오릉 전경]
뒤쪽에서 안산의 전경을 담고 싶었지만, 높은 둔덕이 없으니
그렇다고 누군가처럼 사다리를 들고 다닐 수도 없으니
보이는대로 담는 것으로 만족해야겠습니다.
[뒤쪽에서 담은 오릉과 앞쪽 제각 전경]
그 형태가 제각각인 '五陵(오릉)'은 조선
세종 시기만 해도 박혁거세의 능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다시 담아 본 오릉 전경]
기록에 따르면 하늘로 올라간 혁거세의 유체가 다섯 개로
분리가 되면서, 각각 조성한 것이 '五陵(오릉)'이라 했다 합니다.
[오릉 숲]
그러다 조선 후기가 되면서 다섯 개의 능은 각각 박혁거세와
알영부인, 남해왕과 유리왕, 파사왕의 능으로 비정이 되었다 합니다.
경주 五陵(오릉) 소개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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