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 가미정(2층 가미전시관)

2017. 10. 13. 06:11문화산책/여러 종류의 민속자료

 

소재지 : 대구광역시 중구 성내2동

 

 

좁고 가파른 계단으로 가미 전시관으로 올라가 보겠습니다.

 

 

계단을 올라 만난 첫 번째의 전시물
'말하는 꽃 妓生(기생) 이야기'

妓生(기생) : 전통사회에서 잔치나 술자리에서
노래, 춤 및 풍류로 참석자들의 흥을 돋우는 일을 업으로 삼았던 여자.

 

 

기생의 발생과 변천, 기생이란 누구인가
일제 치하 권번 제도와 기생의 수난 등
말하는 꽃 기생의 이야기로 벽면을 채워 두었다..

 

 

대구요정의 어제와 오늘 대구의 최고 기생 '鸚鵡(앵무)' 등 
흥미진진한 기생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쉽게 풀어 적어 놓았다.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대표 인물로 거론되는 이가
광문사 부사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서상돈(1850~1913)이다.
巨商(거상)이었던 그가 낸 성금 액수가 당시 집 한 채 값인 100원이었는데
그와 똑같은 거금을 내 세상을 놀라게 한 여성 18세 기생 '앵무' 鸚鵡(앵무)였다.

예명이 앵무인 이 기생의 본명은 廉嚨山(염농산, 1889~1946)으로
한학과 시, 가무에 능한 관기였다가 달성 권번의 초대 회장을 지냈다고 한다.

당차게 100원을 내놓은 때 나이가 18세였고,
30세 때는 성주군 용암면에 홍수방지 제방을 쌓게 거금을 쾌척했으며,
1938년에는 폐교 위기에 몰린 대구 교남학교에 전 재산의 절반인 2만 원을 내놓았다.

당시 매일신보는
'염농산 여사가 교육사업에 몸을 던져 만장부가 하지 못한
일을 능히 함으로써 수전노 제씨의 심장을 자극하고 있다'고 기록했다.
(웹에서 자료 발췌)

 

[옛 요정의 미니어처 전시]

일제강점기부터 60년대, 70년대, 80년대까지
대구의 밤을 밝혔던 1300여 개의 요정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전시해 놓았다.

 

[사진으로 보는 그 시절 대구]

 

 

 

 

 

 

 

 

 

 

 

 

 

 

 

 

 

 

[다리미와 인두]

전시된 다리미로 인두를 보니 어릴 적 생각이 났습니다.
둘이서 마주 보고 빨랫감을 잡아당겨 다리미로 밀면 쭈글쭈글했던
옷들이 반듯하게 피어지는 게 신기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깜박 실수하면 다리미에 얹진 숯이 떨어지거나, 
불똥이 튀어 구멍을 내기도 하고, 발이나 손을 데기도 하였지요.

저도 그때 다친 흉터 자국이 오른쪽 발에 남아 있답니다.^^
그래도 그 시절이 그립고 행복했습니다.

 

 

 

 

 

 

[達磨圖(달마도)]

중국 禪宗(선종)의 창시자.
당시의 불교와는 정반대인 좌선을
통하여 사상을 실천하는 새로운 불교를 강조했다.

달마도가 집에 걸려있으면, 악귀가 물러가고 
액운이 거치며, 흐르는 수맥으로부터 보호해준다고 알려져 있다.

 

 

 

[다시 담아 본 계단 입구쪽 전경]

이밖에도 참으로 많은 자료로 채워져 있었다.
언젠가 다시 들려 찬찬히 둘러보고 싶은 욕심이 날 정도로....

 

[가미정 입구에서 담은 우측 골목 전경]

[좌측골목길로 나와서 담은 골목 전경]

좁은 골목길 안쪽에 있기에 찾기가 어렵다.
저도 삼세번 만에 찾아갔답니다. ㅎ

대구에 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아니라면 들리지 못하였겠지요.

이 자리를 빌려 흔쾌히 허락해주신 
가미정 주인님께 다시 한번 더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