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 14. 06:03ㆍ문화산책/고택과 문학관
소재지 : 대구광역시 중구 남성로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30호
[대구 구 제일교회]
제일교회는 경북지방에 처음 생긴 기독교회로,
선교사들이 이 지방을 개화시키기 위해 근대적 의료 및
교육을 전개했던 곳으로 선교사들이 근대적 의료 및 교육을
전개하였던 거점으로서 역사적 의의를 지닌 곳이다.
고종 32년(1895) 부산에 있었던 북장로교 선교본부가 대구로
옮겨지고, 광무 2년(1898) 기와집 4동을 교회당으로 사용하였다.
계속해서 신도가 늘어 1908년에 재래양식과
서구 건축양식을 합작시킨 새로운 교회당을 지었다.
[정면에서 담은 제일교회]
현재 이 건물의 전체적인 양상은 평면이 남북으로 긴 직사각형이고,
앞면 중앙에 현관을 두고 오른쪽에는 종탑을 세운 간결한 고딕 건물이다.
대구 제일교회는 대구의 수많은 교회 건물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고, 기독교가 근대화에 기여한
상징물로서 근대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1933년 신도들의 헌금과 중앙교회의 성금으로
교회당을 새로 짓고 '第一敎會(제일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1994년 새로운 제일교회가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에
건립되면서, 현재 이곳은 선교관으로 역사관으로 쓰여지고 있다.
[안내판과 제일교회 50주년 기념비 전경]
[안내판 글 내용]
[안내판 글 내용 2]
[제일교회 50주년 기념비]
[좌측 안내판 전경]
[목사 安義窩(안의와, 설립자 아담스의 한국명) 선교 기념비]
안의와 목사(Rev. James Edward Adams)는
대구에서 처음 교회를 설립하고, 제일 처음 초등학교와
남자 중학교를 설립하였다.
그는 대구, 경북 장로교회의 창시자가 됨과 동시에
대구기독교학교의 창시자가 되었다.
안의와의 집안은 대를 이어 복음화에 이바지하였다.
그 결과 안의와 집안은 대구, 경북 기독교 역사상 유례없는
큰 업적을 남겼다.
최초의 순교자를 탄생시킨 것도 안의와 집안이었다.
[앞쪽 골목길에서 담은 구 제일교회 전경]
제일교회내부를 둘러보기위해 몇번의 발걸음을 하였는지...
그러나, 들릴때마다 바깥대문이 잠겨져 있다.
바깥대문이 열려 있을 때도 건물 내부로는 '외부인 출입금지'란 팻말이
걸려 있어 들어가보지 못하고 되돌아와야했다.
검색을 해 본 결과 토요일과 일요일엔 개방한다기에
토요일 시간을 내어 들려보았지만,... 역시...여러가지 사정상
개방 하지 않고 있다 하네요.
시내에 볼일이 있어 들릴 때면 행여하고 다시 또 발걸음을 할것같다.
혹시 둘러보게되면 내부는 그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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