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제일 교회 내 현제명 나무

2017. 2. 1. 06:18갤 러 리/노거수

 

소재지 :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 234 대구제일교회내

 

[우측에서 담은 玄濟明(현제명) 나무 전경]


玄石(현석) 玄濟明(현제명) 대구 출신의
성악가이자 작곡가 일제 말기와 해방직후 활발한 음악활동을 펼쳤다.


1931년에는 조선음악가 협회를 창립하고 이사장이 되었다.
그는 같은 해에 '현제명 작곡집 제1집'을 펴낸다.
'현제명 작곡집 제2집'은 1933년에 나온다.


1940년에는 일제에 의해 연희전문학교 교원의 직위를 잃게 된다.
일제 말의 어둠의 시기에 그는 일본에 기울게 된다.

 

[안내판]


수종 : 이팝나무
수령 약 200년

 

[玄濟明(현제명) 나무]


그의 노래들은 중고등학교 교과서 등을 통해서 해방 후 널리 불려졌다.
'고향생각', '그 집 앞', '산들바람', '희망의 나라로', '나물 캐는 처녀'
현재 서울대 음대를 창설하은데 주역이되었다 한다.


그러나, 그는 우리 근대 음악사의 기틀을 세운
업적과 함께 항상 친일행적이 문제가 되었던 인물들이다.

 

[좌측에서 담은 玄濟明(현제명) 나무 전경]


한국 근대 음악사의 개척자이자 선구자 음악인들을 친일파로
매도하지 말라고 음악계 인사들이 친일음악가 재평가를 위해서 나섰다.


시인이자 작사가인 정치근씨는 당시 상황을 체험하지 않은
세대들이 제멋대로 친일을 운운하는 것은 역사왜곡이라며 일제의
강요에 생명을 부지시키기 위해 쓴 것을 가지고 반역으로 몰아붙인다면
너무 가혹한 행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