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 9. 06:06ㆍ문화산책/고택과 문학관
소재지 :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 2가 90
[2010년에 담은 李相定(이상정) 고택 전경]
李相定(이상정, 1897∼1947). 독립운동가.
본관은 月城(월성). 별명은 然浩(연호), 直(직).
호는 晴南(청남), 汕隱(산은). 대구출신. 時雨(시우)의 맏아들로서
相和, 尙火(상화), 相佰(상백), 相旿(상오)의 형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큰아버지 一雨(일우)밑에서 교육을 받았다.
큰아버지가 경영하던 그 당시 신학문과 민족정기의 요람이었던
講義院(강의원)에서 공부한 뒤 1912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의
成城中學校(성성중학교, 육군유년학교)를 마치고 미술학교·상업학교를 거쳐
고쿠가쿠인대학(國學院大學)에서 역사학을 전공하였다.
이곳은 독립운동으로 유명한 시인 이상화의 형 이상정 장군이 살았던 고택이다.
졸업 후 1919년 귀국하여 약 3년간 행동적 師道(사도)로서 五山(오산),
儆新(경신), 啓聖(계성), 信明(신명) 등의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시켰다.
조국에서의 독립운동에 한계를 느껴 1923년 만주로 망명,
북만주에서 약 2년간 민족교육을 통한 항일독립운동을 하며,
金九(김구), 金奎植(김규식) 등의 독립지사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광복된 조국의 앞날을 申翼熙(신익희) 등과 토론, 상해로부터 도와달라는
교민들의 요청으로 그곳에 가서 중국인들의 한국인박해로부터 교민보호에
진력하던 중 1947년 10월 어머니의 사망소식에 귀국하였다.
귀국 후 40여일 만에 뇌일혈로 돌아가셨다.
유고로 '飄泊記(표박기)'가 있고, 詩(시), 書(서), 畵(화)에
능하였으며, 1인자로 일컬을 만큼 篆刻(전각)에 뛰어났다.
1977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2010년에 담은 李相定(이상정) 고택]
독립운동가이자 대구 최초의 서양화가, 이상정의 아내 권기옥
한국인 최초의 여자 비행사로 알려진 그녀는 평양출신으로
독립운동가 이상정 장군의 부인이다.
權基玉(권기옥, 1901~1988)은 평양에서 태어났고 10대 소녀 시절
비밀결사대인 송죽회에 가입한 것을 계기로 독립운동에 투신한 이래
3.1 만세 운동 참가와 임시정부 독립운동자금 모금, 권총 운송등의 역활을
맡았다가 체포되어 6개월간 복역하였다.
이후 평안남도 도청 폭파사건에 가담하였으며, 양청년회 여자전도대 를 조직하였으며,
재구속 영장이 발부된 사실을 알고 1920년 중국 상해로 탈출했다.
상해에서 미국선교사가 운영하는 홍보여자중학교에서 한국 최초의
여자비행사로 중국군에서 10여 년간 복무하면서 항일활동을 하였다.
광복 후인 1949년 귀국.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
아마도 이상정과의 만남은 중국에서 이루어진 듯하다.
군복무 중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중경으로 이동해 국민정부
육군참모학교교관으로 활동했으며, 1948년 귀국 후 국방위원회 전문위원과
한국연감 발행인, 한중문화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남장한 공군 여장부로
중국 대륙을 누볐고 기개와 강한 의지로 개화기 우리나라에 큰 행적을 남긴
여성이었으나, 의외로 소박하여 화초가꾸기와 여행이 그녀의 취미였다한다.
지금은 유서깊은 이상정 장군 고택이 식당으로 사용중이지만,
별로 성업중이지도 않은것 같아서 마음 한 구석 씁쓸함이 스며든다.
[올해 담은 이상정 고택]
2010년도에 다녀오며 게시물로 올리며,
언젠가는 이곳도 문화재로서 보호되어 동생 이상화 고택과
서상돈 고택처럼 보호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해진다.라고 올렸는데...
[안내판 글 내용]
아직도 그대로이며 안내판만이 이상정 장군의
고택임을 증명하듯 대문 옆 한켠에 자리하고 있다.
[벽화로 그려 진 노무현 전대통령]
대구 도심에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근대 유명 인사들의
고택이 식당이나 주막으로 이용되면서 원형이 훼손되거나
변형될 우려를 낳고 있어 이를 보존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대구 도심에는 이상화, 이상정, 서상돈, 박기돈 고택 등이 남아있다.
이 고택들은 다른 고택과 달리 유명 인사들이 살았을
당시의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어, 역사적 보존 가치가 높다.
그러나 이 고택들 가운데 대구시가
소유해 관리하고 있는 곳은 이상화 고택 뿐이다.
중구청은 이상정, 박기돈 고택을 사들여
보존하기 위해 지난 2009년부터 5년째 민간 소유주와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진척이 없는 실정이다.
이상정 고택은 중구 계산동2가에 있으며,
현재 바보주막으로 영업 중이다.
이 주막은 비운의 노무현 대통령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조합원이 되어 2013년 가을부터 운영하고 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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