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5)
-
奈勿王陵鷄(내물왕릉)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14 [경주 향교 입구 쪽에서 담은 내물왕릉 전경] 사적 제188호. 내물 왕릉은 계림의 서쪽에 있다. 경주향교를 둘러본 후 향교 밖 좌측 안쪽에 있는 奈勿王陵鷄(내물왕릉)으로 향했다. [내물왕릉 입구 쪽 전경] 계림은 본래 始林(시림)이라 불리었으나, 脫解王(탈해왕) 때 흰 닭이 울고 금궤 안에서 옥동자를 얻은 다음 이렇게 불리었다는 전설이 있다. [내물왕릉 전경] 무덤의 모습은 땅 위에 둥근 봉분만 갖춘 신라 초기의 양식이며 근처에 있는 신라 13대 왕인 미추왕의 무덤과 같은 양식이다. 계림은 고목이 무성한 숲으로, 무덤의 동쪽에 있으며, 첨성대와 가까운 곳에 있다. [안내판 글 내용] [奈勿王陵鷄(내물왕릉)] 신라 17대(재위 356~402) 왕으로서 성은 김씨이며 ..
2019.02.08 -
경주 사적 제457호 月精橋(월정교)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274 [교촌마을쪽에서 담은 月精橋(월정교) 전경] 월성 서쪽 끝에 위치하며 남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로 경덕왕 19년 2월 궁성 남쪽 문천에 월정교와 춘양교 두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교촌마을 쪽 안내판 글 내용] [교촌마을쪽 月精橋(월정교) 현판] [교촌마을쪽에서 담은 月精橋(월정교)] 고려시대 문관 김극기가 월정교를 보고 “무지개 다리가 거꾸로 강물에 비친다”는 시를 남겼다. 이를 감안하면 다리는 아치형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경주시는 해외 사례 등을 검토해 일직선의 들보교로 복원하여, 고증을 무시한 채 마구잡이식으로 이루어졌다며 설왕설래 중이라 하네요. [교촌마을쪽에서 월정교 내부 전경]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졌던 교량으로, 조선시대에..
2019.01.25 -
밀양 鼇淵亭(오연정)
소재지 : 경상남도 밀양시 교동 208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15호 [鼇淵亭(오연정) 표지석 전경] 표지석 옆 경사진 언덕을 오르면 곧장 鼇淵亭(오연정) 넓은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 쪽에서 담은 안내판과 오연정으로 가는 길 전경] [오연정 안내판 글 내용] [오연정 가는 길] 경상남도 밀양시 校洞(교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로 1995년 5월 2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15호로 지정되었다. [오연정 행랑채 景行齋(경행재) 전경] 조선시대 明宗(명종) 때 김제. 울산 군수 등을 지낸 孫英濟(손영제)가 고향으로 돌아와 머물던 別墅(별서)이다. [景行齋(경행재) 현판] [景行齋(경행재)] 임진왜란과 1717년의 화재로 불탔다가 1771년 중건, 1936년에 후손들이 확장. 중건하였다. [景行齋(경행재..
2018.09.06 -
慶州鄕校(경주향교)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17-1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1호 [경주향교 안내도와 안내 글 내용] [동쪽 협문에서 담은 명륜당으로 통하는 협문] 鄕校(향교)의 外三門(외삼문)이 닫혀 있었지만, 동쪽 협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명륜당과 서재]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고려시대 때 賢儒(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신라 신문왕 2년(682) 國學(국학)이 설치되었던 곳이라 한다. [명륜당] 그 뒤 성종 23년(1492) 경주부윤 崔應賢(최응현)이 중수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대성전이 소실되어 위패를 道德山(도덕산) 斗德庵(두덕암)으로 옮겼다가 선조 33년(1600) 경주 부윤 李時發(이시발)이 대성전과 전사청을 중건하고 위패를 還安(환..
2016.01.27 -
慶州(경주) 崔氏古宅(최씨고택)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69 중요민속자료 제27호 [최씨고택 솟을 삼문 전경] 고택의 대문은 일반적인 솟을대문보다 높이가 낮으며, 솟을대문 형식을 취했으나 화려하지 않고 수수하고 평범하다. 건축 당시 근처에 위치한 향교보다 2단계 낮게 터를 깎아내고 지었다고 한다. 최씨가문이 부자이지만 자세를 낮추고 살았다는것을 알수 있다. [안내판 글 내용] [솟을 대문] 열린 대문은 늘 반갑다. 그러나, 낯선곳의 방문은 늘 조심스럽다. [최씨고가] 사랑채, 안채, 대문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곧장 보이는 것이 사랑채이다. [사랑채] 이 사랑채에는 구한말 의병장 신돌석장군, 면암 최익현, 스웨덴의 구스타프 국왕(당시 왕세자), 의친왕 이강공등 당대의 기라성 같은 손님들이 머물었다고 한다..
2016.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