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24. 06:08ㆍ문화산책/고택과 문학관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 550-1
[동리, 목월문학관입구에서 바라본 인물관 전경]
[신라를 빛낸 인물관 현판]
[신라를 빛낸 인물관 전경]
신라를 빛낸 인물관 건물이 매표소 바로 옆쪽에 있었지만,
들어올 땐 문학관부터 들려보느라 뒤로 미루어 두었던 신라를 빛낸 인물관으로 향했다.
[출입구에서 담은 전경]
[출입구 양측 벽면에 세워진 석조물]
석조물 아래에는 김동리 선생댁 정원의 석조물이라 이름표가 붙어 있네요.^^
[포토존]
기념 촬영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둔 포토존
신라의 화랑과 함께 사진을 찍어 기념으로 간직하여도 좋겠지요.
[인물관 내 전시실 전경]
둘러보실까요.
[인물관 전시실 내부]
[인물관 전시실 내부 2]
[천마총 출토 금관]
[신라의 인물]
신라는 천 년에 가까운 역사를 이어오면서 많은 인물들을 배출했다.
고대의 역사를 기록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신라 천 년을 지탱해 온
여러 인물군상을 기록하고 있다.
나라를 이끌었던 56명의 군왕. 이들을 보좌했던 여러 충신과 재상들,
전쟁에서 활약했던 장군과 화랑, 학문과 예술을 이끌었던 학자와 예술가,
효행으로 이름을 떨친 효자와 효녀 등 수많은 인물들의 삶이 기록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圓光法師(원광법사)와 世俗五戒(세속오계)]
圓光(원광)은 世俗五戒(세속오계)를 지은 승려이다.
진흥왕 때 출가하여 중국에 유학 한 뒤 600년에 귀국하여
신라에 불교를 보급하였다.
그가 청도 嘉悉寺(가실사)에 있을 때 화랑 귀산과 추항이
찾아와 가르침을 청하자 世俗五戒(세속오계)를 지어 주었다
事君以忠(사군이충). 事親以孝(사친이효). 交友以信(교우이신).
臨戰無退(임전무퇴). 殺生有擇(살생유택)의 5계는 이후 화랑도의 중심 이념이 되었다.
事君以忠(사군이충) : 임금 섬기기를 忠(충)으로써 할 것
事親以孝(사친이효) : 어버이 섬기기를 孝(효)로써 할 것
交友以信(교우이신) : 친구 사귀기를 信(신)으로써 할 것
臨戰無退(임전무퇴) : 전쟁에 다다라서는 물러서지 말 것
殺生有擇(살생유택) : 생명 있는 것을 죽이되 가려서 할 것
[흥윤사 신라 십성]
신라 十聖(십성)은 신라 최초의 사찰인 興輪寺(흥륜사)
금당에 모신 신라의대표적인 고승 열 분을 가리키는 말로
阿道(아도 혹은 我道). 厭觸(염촉). 安含(안함). 惠宿(혜숙). 義湘(의상).
表訓(표훈). 蛇巴(사파). 原曉(원효). 惠空(혜공). 慈藏(자장)을 말한다.
금당 북쪽 벽에 남쪽을 향해 앉아 있는 미륵불상을 중심으로
동쪽 좌대에는 阿道(아도), 厭觸(염촉), 安含(안함), 惠宿(혜숙), 義湘(의상),
서쪽에는 表訓(표훈), 蛇巴(사파), 原曉(원효), 惠空(혜공), 慈藏(자장)의
소상을 안치했다(삼국유사 3권 탑상)
이 열분의 성인들은 어느 시점에 동시에 선정하여
안치시킨 것이 아니고 불교 전래로부터 혜공왕(765~780)
이전까지 신라 역사 중 각 시기마다 큰 영향을 끼친 스님들을
선정하여 차례로 안치한 것으로 여겨진다.
[신라 十聖(십성)]
[阿道和尙(아도화상)]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볼 때
아도 화상은 신라에 불교를 전래시킨 인물로 전해진다.
본래 천축인이라고도 하고, 고구려에서 온 사람이라고도 한다.
또한 墨胡子(묵호자)와 동일 인물로 보기도 한다.
[厭觸(염촉. 異次頓(이차돈)]
법흥왕 때의 인물로 불교를 국교로 정하고자 할 때
토착 신앙과의 충돌로 신라에서 불교의 공인이 어렵게 되자
스스로 순교를 자청하여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되도록 만든 인물이다.
이차돈의 머리가 떨어지는 순간,
젖빛과 같은 하얀 피가 높이 솟아오르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安含(안함)]
安含(안함, 578~ 640)은 신라 시대의 승려이다.
진평왕 때(600년)에 중국으로 가다가 되돌아왔으며,
이듬해 중국 대흥사에 머무르다가 돌아와 황룡사에 머물렀다.
'전단향화성광묘녀경'을 번역하고, '참서(예언서)'와
'東都成立記(동도성립기)'를 저술하였다.
'安弘(안홍)'이라고도 한다.
[신라 十聖(십성)]
[惠宿(혜숙)]
선덕여왕 때의 고승으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나,
스스로 시골 촌민 속에 묻혀 촌민을 교화하면서 살았다.
왕의 부름까지 뿌리치고 귀족 불교의 테두리를 벗어나
숭고한 敎化行(교화행)을 하였다.(생몰년 미상)
[義湘(의상)]
華嚴宗(화엄종)의 개조로 당 유학 이후 부석사를 짓고
華嚴宗(화엄종)을 강론하여 해동화엄종의 창시자가 되었으며
전국에 10여 개의 華嚴宗(화엄종) 사찰을 건립 하였다.
의상 문하에서 10대덕이 배출될 만큼 신라 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慈藏(자장)]
진골 출신으로 당에 가서 수학하고 돌아와
皇龍寺九層木塔(황룡사 9층 목탑)의 건립,
통도사 창건 등 신라에서 불교가 부흥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戒律宗(계율종)의 선구자이다.
[惠空(혜공)]
문무왕 때의 고승으로 조그만 절에서 지내며
파계승 같은 일을 일삼았지만, 기적을 많이 일으켰다.
원효가 여러 경전을 쓸 때 항상 혜공에게 물었다는
일화로 볼 때 당대 최고의 고승이었을 것이다.
혜공이 늘 조그만 절에 기거하고 파계승 같은 행동을
보인 것은 일반 민중에 敎化行(교화행)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신라 十聖(십성)]
[原曉(원효)]
황룡사에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당 유학길 도중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불교 대중화의 선구자로 불교 사상의 융합과 그 실천에 힘쓴
淨土宗(정토종)의 선구자이며 한국 불교의 첫손 꼽히는 인물이다.
[蛇卜(사복)]
원효의 후배도반이면서 조력자. 蛇卜(사복), 蛇巴(사파),
蛇伏(사복) 혹은 蛇包(사포) 또는 蛇童(사동)이라고도 불렀다 한다.
흥륜사 금당에 모셔진 신라 十聖(십성) 중 한 명이다.
그의 생몰연대는 불분명한데, 다만 원효가 高仙寺(고선사)에
머물 때(681~687) 사복 어머니의 장례를 함께 거행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한다.
사복의 어머니는 경주 만선북리에 있는 과부였다.
남편없이 태기가 있어 아이를 낳았는데, 나이 12세가 되어도
말도 못하고 일어나지도 못하므로 蛇童(사동, 뱀아이)라 불렀다 한다.
[表訓(표훈)]
義湘(의상)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으로
경덕왕 10년(751) 佛國寺(불국사)가 창건되자 주지가 되었다.
그의 佛心(불심)이 두터워, 景德王(경덕왕)의
後嗣(후사)를 얻게 해달라는 청을 받고 天宮(천궁)을 왕래하며
정성껏 기도하여 10朔(삭) 만에 아들 惠恭王(혜공왕)을 낳게 하였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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