玄風郭氏十二旌閭閣(현풍곽씨12정려각)

2015. 10. 1. 06:14뿌리를 찾아서/忠. 孝. 烈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시리 1348-2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9호

 

[玄風郭氏十二旌閭閣(현풍곽씨12정려각)]

 

현풍곽씨일문에 삼강을 지킨 28인의 공을 기린12각이 나열되어 있으며,

각 정려의 건립연대는 각각 다르나 조선 영조 때에 정려를 받아 이들의 현판이 봉안되어 있는 곳이다.

 

건물은 정면 12칸, 측면 2칸의 주심포집으로 팔작지붕이며 이 안에는 2기의 비석과 12개의 현판이 있다.

건물과 현판은 최근의 것이나 일문삼강을 비롯한 십이정려각은 전국에서도 그 유례가 흔치 않은 것 중의 하나로써 중요한 민족사적인 유산이 되고 있다.

 

 

[현풍곽씨12정려각(문화재자료 제29호) 표석]

 

三綱五倫(삼강오륜)을 지킨 충신과 열녀, 효자에게 나라에서

포상 하였으며, 그들이 사는 마을 입구에는 정려각(旌閭閣)을 세워주었다.

 

三綱(삼강)은 : 君爲臣綱(군위신강). 父爲子綱(부위자강). 夫爲婦綱(부위부강)을 말하며
五倫(오륜)은 :  君臣有義(군신유의). 父子有親(부자유친). 夫婦有別(부부유별). 長幼有序(장유유서). 朋友有信(붕우유신)을 말한다.

 

 

[一門三綱(일문삼강) 현판]

 

현풍 곽씨 집안의 유교 도덕의 기본이 되는 三綱(삼강)을 지킨 28인의 정려비로,
선조 31년(1598)부터 영조 때(재위 1567∼1608)까지 포상된 12명을 한 곳에 모시고 있다.

한 마을의 한 성씨(곽씨)에서 12명의 포상자가 나왔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一門三綱(일문삼강 이란 : 한집안에서 삼강(忠ㆍ孝ㆍ烈)을 모두 실천한 가문을 말하는 것이라 합니다.

 

 

[四孝子閭(사효자려). 兩孝子閭(양효자려) 현판]

 

정려각 안에는 2개의 비석과 12개의 현판이 있다.
건물과 현판은 최근 것이나, 12정려각은 그 유례가 흔치 않은 것으로 중요한 유산이라 할 수 있다.

 

旌閭(정려)는 충신, 효자 열녀들을 표창하던 조선시대의 제도이다.
그러나 한 문중에서 이렇게 많은 12정려가 내려진 경우는 전국적으로도 그 유례가 드물다 한다.
 
삼강문을 통과하니 삼강2효자, 열부 6정려, 4효자를 기린 2기의 비석과 12개의 현판이 있는 정려각이 있었다.
一門三綱(일문삼강), 四孝子閭(사효자려), 兩孝子閭(양효자려)라 적힌 현판이 보였고, 그에 대한 사연도 안타까웠다.

 

 

[玄風郭氏十二旌閭閣(현풍곽씨12정려각) 좌측 전경]

 

임진왜란 때 安陰縣監(안음현감) 곽준이 黃石山城(황석산성)에서 전사.
두 아들 履常(이상) 履厚(이후)도 뒤따라 전사하였으며, 딸과 며느리도 자결하여 일문에 三綱(삼강)이 나왔다.

이에 선조가 정려하였다.
 
곽재우의 사촌동생인 郭再勳(곽재훈)의 아들 4형제가 임진왜란 당시

천식에 걸린 아버지와 함께 동굴에 숨어 있었는데 아버지의 기침 소리에 왜병에게 발각되었다.
굴 안으로 왜병이 들어오면 아버지를 죽이실까봐, 편찮으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큰 아들이 굴 밖으로 나가

왜병의 총에 맞아 죽었지만, 왜병이 되돌아 서려할 때 다시 굴 속에서 기침소리가 났다.
 
왜병이 굴 안으로 들어오려하자 이번엔 둘째아들이 굴을 나가서 총에 맞아 죽었으나,

다시 또 아버지가 기침을 해서 왜병에게 들켜 세째아들과 네째아들도 차례로 굴을 나가 죽었다.
 
이상하게 여긴 왜병이 굴에 들어와서 혼자 남은 병든 아버지를 보고 굴 밖으로 끌어내었으나

아버지를 대신해서 목숨을 버린 아들들의 효심에 탄복한 왜병장군이 아버지의 등에 표식을 달아 주었으며,

그곳을 지나는 왜병들도 표식을 보고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고 한다.

 

 

[冠石(관석)??]

 

정려각 좌측 모퉁이에 놓여 있는 이 것은 어떤 사연을 안고 있을까??

 

 

[玄風郭氏十二旌閭閣(현풍곽씨12정려각) 우측 전경]

 

郭弘垣(곽홍원)의 부인 密陽朴氏(밀양박씨)는 강도가 들어와

남편을 해치려 하자 대신 죽음으로 顯宗(현종)이 정려하였다
 
곽수영의 부인 安東權氏(안동권씨)는 결혼 후 1년도 못되어 남편이
병으로 위독하게 되자 대신 죽기를 주야로 기원했으나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남편을 잃게 되자 식음을 전폐하여 따라 죽게 되니 현종이 정려하였다.

 

 

[玄風郭氏十二旌閭(현풍곽씨12정려) 碑(비) 전경]

 

또 다른 이야기는 남편이 죽자 남편을 따라 죽으려고 한 며느리가
먼저 죽으면 부모님에게 슬픔을 안겨 줄것이라는 것을 알고 부모님이 돌아가실때까지

기다렸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신후 남편을 따라 죽었다는 열려의 이야기이다.
 
효자 곽경성려는 아픈 부친을 위해서 추위에도 불구하고
호수에서 가물치를 잡아 아버지께 올렸다는 이야기등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위해 왜적과 싸우다 죽은 아버지와 아버지가 전쟁터에 나갔는데,

편하게 집에 있을 수 없다며, 전쟁터에 나가 싸우다 아버지를 따라 죽은 아들. 남편을 따라 자결한 아내.

 

 

[玄風郭氏十二旌閭閣(현풍곽씨12정려각) 전경]

 

아버지가 죽자 네 살 다섯 살 된 아이가 어른도 따라하지 못할 애절한 곡을 했다는 두 효자
 
정혼한 남편이 결혼도 하기 전에 죽었지만 곽씨 일문에 시집 와서, 절부와 열부가 돼 죽어간 여인.
 
남자는 나라와 부모를 위해 죽어 상을 받고, 여자는 남편과 부모때문에 죽어 상을 받아야 했던

삼강오륜을 지키려 죽어간 조선 여인들의 애달픔을 12정려각이 말하는 듯하여, 가슴이 서늘해 왔다.

 

 

[忠孝世業(충효세업) 淸白家聲(청백가성) 石碑(석비)]

 

忠孝世業(충효세업) : 충과 효를 대대로 물려오는 업으로 삼고 

淸白家聲(청백가성) : 청렴과 결백을 집안의 명성으로 삼는다. 라는 뜻이라 합니다.

 

 

[노거수]

 

忠臣(충신). 孝子(효자). 孝女(효녀). 烈女(열녀)

그 애달픈 사연은 죽음 후에 책으로 발견되어 그 일부가 비석에 새겨져 있었다.

'슬프고 슬프도다 秋風은 어디서 오나'

시작되는 내용은 읽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