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만난 제영 鳳棲樓(봉서루)

2019. 8. 28. 05:53문화산책/정자와 누각

 

소재지 :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석고리 254-1

 

[題詠鳳棲樓(제영 봉서루) 전경]

[제영 봉서루 안내판 글 내용]

[鳳棲樓(봉서루) 현판]

[鳳棲樓(봉서루) 전경]

 

鳳栖樓(봉서루) 客館(객관) 동쪽에 있으며 縣監(현감) 吳致善(오치선)이 세웠다.

金綽(김작)의 記(기)에, '대개 이 고을이 나는 봉의 형국이므로 이렇게 이름지었다.' 한다.

盧叔仝(노숙동)의 시에, '鳳城山(봉성산) 밑 봉서루에 바람과 날씨 서늘하고 맑아 여름 또한 가을일세.' 했다.

 

[鳳棲樓(봉서루) 현판]

 

누각안쪽에는 鳳棲樓(봉서루)라 적힌 커다란 현판 하나가 더 걸려 있다.

 

[鳳棲樓(봉서루)]

 

봉서루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하여 '능주 읍지',

'여지도서', '능주군 읍지', '능주 목지', '호남 읍지' 등의

읍지에 모두 '在客館東(재객관동)'으로 기록되어 있다.

 

본래 능주 남정리에 있었으며, 현종 12년(1671) 목사 李有相(이유상)이 중수하고

고종 10년(1873) 목사 韓致肇(한치조)가 다시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존하지는 않는다.

 

[누정에 걸린 편액]

 

누정에는 鄭昌孫(정창손)외에 成任(성임), 金宗直(김종직),

梁彭孫(양팽손), 兪得一(유득일), 金昌翕(김창흡) 등의 시가 걸려 있다.

 

김종직이 쓴 시는 칠언 율시로 운자는 寒(한), 看(간), 寬(관), 團(단)이다.
성임과 정창손이 쓴 시는 칠언 율시로 운자는 모두 顔(안), 寒(한), 欄(란), 寬(관)이다.

 

[누정에 걸린 편액 2]

 

鳳棲樓(봉서루) / 金宗直(김종직)

 

連珠山上月如盤(연주산상월여반)

연주산에 위에 쟁반 같은 달이여

草樹無風露氣寒(초수무풍로기한)

바람 없는 수풀에 이슬만 차갑구나

 

天陣絮雲渾欲盡(천진서운혼욕진)

하늘에 솜구름 모두 다하려 하는데

一堆鈴牒不須看(일퇴령첩불수간)

한 무더기 공문서는 보지를 못하였네

 

年華更覺中秋勝(연화갱각중추승)

한 세월 다시금 중추의 좋음을 깨닫노니

客況誰知此夜寬(객황수지차야관)

객지의 형편에 이 밤 넉넉함을 그 누가 알리

 

征?又遵西海轉(정패우준서해전)

떠날 깃발은 또 서쪽바다 따라 굴러가거니

指尖將擘蟹?團(지첨장벽해재단)

손끝으로는 둥근 게딱지나 쪼개려 하네

 

[누정에 걸린 편액 3]

 

鳳棲樓(봉서루) / 成任(성임)

 

日日驅馳不暫閑(일일구치불잠한)

날마다 몹시 바빠 잠깐도 한가하지 못하다가

登臨聊復解愁顔(등림료부해수안)

올라와보니 다시 수심에 찬 얼굴이 펴지네

 

閭閻近海春常早(려염근해춘상조)

여염이 바다와 가까워 봄이 항상 이르고

松竹當?夏亦寒(송죽당첨하역한)

송죽이 처마에 닿으니 여름 또한 선선하구나

 

簾捲山光侵?棟(렴권산광침화동)

발 걷으니 산 빛이 단청 마룻대에 비치고

日斜花影上雕欄(일사화영상조란)

해 비끼면 꽃 그림자 조각한 난간에 어린다

 

客中無限思鄕意(객중무한사향의)

나그네 끝없이 고향 생각하는 마음

憑仗詩篇强自寬(빙장시편강자관)

시편을 의지해 겨우 스스로를 위로하네

 

[누정에 걸린 편액 4]

 

鳳棲樓(봉서루) / 鄭昌孫(정찬손)

 

倦遊無處暫投閒(권유무처잠투한)

유람할 곳 없어서 잠시 한가로운 틈을 내어

獨上高樓一破顔(독상고루일파안)

높은 다락을 홀로 올라가 한바탕 웃어보았네

 

地近滄溟春色早(지근창명춘색조)

푸른 바다와 가까우니 봄빛이 일찍 오고

山連智異曙光寒(산연지이서광한)

지리산과 연이었으니 새벽빛이 차갑구나

 

池涵竹影侵花塢(지함죽영침화오)

못물에 담긴 대 그림자는 꽃 언덕에 침범하고

風引蓮香到藥欄(풍인연향도약란)

바람은 연 향기 끌어와 어여쁜 난간에 이르네

 

滿眼奇觀供嘯詠(만안기관공소영)

눈앞에 가득한 아름다운 시상을 더해주니

客中愁緖邇來寬(객중수서이래관)

나그네 시름을 어느덧 달래주네

 

[누정에 걸린 편액 5]

 

타지 생활로 인한 시름과 공무에 쫓기는

마음을 봉서루에 올라 풀어낸 감흥을 그린 시편들이다.


특히 김종직과 성임의 시는 '東文選(동문선)'에도

실려 당대 문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던 작품이다.

 

소개한 시들 외에도 김종직의 시에 차운한

兪?(유창), 梁彭孫(양팽손), 金昌翕(김창흡)의 시가 전해진다.

 

樓(누)는 다락으로서 동서남북 사방을 바라볼 수 있게 높이 지은 집을 말한다.

따라서 누에는 명계의 저명한 인사들의 명시구가 걸려 있다.

 

[능주 역사관 전경]

 

봉서루 옆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능주 역사관이 자리하고 있다.

아직 복구 중인지... 점심때라 그런지 조금 적막감이드는 고요함이 함부로

범접할 수 없은 위용이 느껴졌습니다.

 

[능주역사관 안내 표석비]

 

앞쪽 문으로 나가보니 능주역사관 안내 표석비가 있네요.

표석비 옆으로 능주목사골 객사복원이라 새겨져 있구요.

 

[능주 역사관쪽에서 담은 능주 객사 전경]

 

표석비가 있는 입구쪽에서 다시 담아본

역사관과 그 옆 건물은 복원한 객사 건물인듯 합니다.

 

[능주 동헌지 표석비]

[능주 동헌지 표석비와 동헌지 전경]

 

답사지로 향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 우연히 들리게 된

면사무소에 잠시 주차를 해 두고는 앞쪽에 보이는 봉서루부터

능주역사과 능주객사까지 두루 들려보게 되었다.

 

시간을 지체해서일까 따르릉 휴대폰이 울린다.

주차장에 남아 있겠다며, 얼른 다녀오라했던 남편에게 온 전화

 

"예, 알았어요. 지금갑니다."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총총히 달음질하였습니다. ㅎㅎ

 

우연히 만난 제영 봉서루 소개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