霞川(하천) 高雲(고운) 墓(묘)

2018. 7. 13. 05:25뿌리를 찾아서/묘역 답사

 

 

소재지 :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 산 23-1

 

[재실 松山齋(송산재) 전경]

 

의병장 고경명의 조부 霞川(하천) 高雲(고운) 묘소로 가기 전
자리하고 있는 재실 松山齋(송산재)의 문은 닫혀 있어서 솟을 삼문만 담았다.

 

[담너머로 담은 재실 전경]

 

그래도 아쉬워 낮은 담너머로 깨금발을 하고 재실 내부 전경도 담았습니다.

 

[뒤쪽에서 담은 재실 전경]

 

재실뒤 전경도 담고 골목길 한쪽에 주차를 하고는 묘소로 향했다.

 

[담배밭 뒤쪽 묘역 전경]

 

高雲(고운, 1479∼1530) 본관 長興(장흥). 자 從龍(종룡). 호 霞川(하천).
아들은 대사간 高孟英(고맹영), 손자는 의병장 高敬命(고경명)이다.

그의 행적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총명하고 높은
재주를 지녀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안고 성장하였다고 한다.

 

[霞川(하천) 高雲(고운) 墓域(묘역) 전경]

 

묘역에는 2기의 묘가 앞뒤로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데,
앞쪽 묘는 고경명 조부 高雲(고운) 묘 뒤쪽은 증조부 自儉(자겸) 묘이다.

高雲(고운)은 중종 14년(1519) 別試文科(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趙光祖(조광조) 등과 친교가 있어 己卯士禍(기묘사화) 때
화를 입어 벼슬을 잃고 고향으로 내려 왔다가 중종 25년(1530)에 돌아가셨다.
후에 刑曹佐郞(형조좌랑)을 지냈다.

 

[霞川(하천) 高雲(고운) 墓(묘)]

 

그는 시문에도 뛰어나 동문선에 들어 있으며,
그림에도 뛰어나 南畵風(남화풍)의 '맹호도'를 잘
그렸는데 '白額大虎圖(백액대호도)' 등 몇 점이 전한다.

 

[霞川(하천) 高雲(고운) 墓碑(묘비)]

 

한국회화사에서 조선조에 활동했던 이 지역의 비중 있는
화가로 능주의 學圃(학포) 梁彭孫(양팽손, 1480~1545)과
해남의 恭齊(공제)  尹斗緖(윤두서, 1668~1715)를 들 수 있다.

 

[霞川(하천) 高雲(고운) 墓(묘) 뒤에서 담은 안산 전경]

 

그의 작품으로 호랑이 그림 2점이 전한다.

간송 미술관과 고영진이 소장하고 있는데 그 중 고영진이 소장한 것은
소나무 아래 몸을 틀고 있는 사나운 눈매의 호랑이를 그린 것으로, 나무줄기와
잎의 처리에 남종화법이 깃들여 있어 대체로 조선 후기의 洪虎(홍호)와
조선 말기의 劉淑(유숙)의 호랑이 그림과 상통한다고 한다.

 

[고경명의 증조부 高自儉(고자검) 묘 전경]

 

장흥고씨가 처음으로 광주에 자리를 잡은 것은
중연의 7세손이고 고운의 아버지인 自儉(자검)이다.

자검은 영광에서 현재의 세거지인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 압촌마을로 이거해 왔다.

 

[고경명의 증조부 고자검 묘]

 

의병장 고경명의 증조부 고자검에 대해서는
자료를 찾아 보았지만, 알 수가 없어서... 생략합니다.

 

[고경명의 증조부 고자검 묘비]

[고경명의 증조부 고자검 묘 뒤에서 담은 안산 전경]

 

고운의 학문적 전통은 아들 孟英(맹영), 손자 敬命(경명),
증손자 從厚(종후) 因厚(인후)로 이어져 호남 사림의 한 줄기인
절의적 계통의 맥을 형성하고 있다.

사후에 禮曹參判(예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저서로는 佰夷論(백이론)과 하천유집이 있다.

 

[霞川(하천) 高雲(고운) 墓(묘) 앞에서 담은 재실쪽 전경]

 

그리고 1986년 9월에 묘를 이장하면서 출토되
복식(유물일괄)은 주요 민속자료 제239호로 지정되어
광주민속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