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6. 29. 05:47ㆍ문화산책/고택과 문학관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 390-1
[박정희 대통령 역사 전시관 현판]
[대구경북능금조합 건물 5층 박정희 대통령 역사 전시관 전경]
며칠 전 우연히 자료를 찾아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보게 된
박정희 대통령 역사 전시관 집과 가까운 거리라 들려봐야겠다
생각하였지만, 바쁜 일상에 쫓겨 차일피일 미루다가, 찾아보려고
인터넷을 뒤적였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찾을수가 없었다.
신세계 백화점에 들렸다 오는 길
신호대기중 앞쪽 대구경북 능금조합 건물위에
턱하니 붙어 있는 박정희 대통령 역사 전시관 현판이 보였다.
며칠이 지난 후 일부러 시간을 내어
대구경북능금조합은행에 들려 승강기를 타고 5층으로
5층에서 내리니 곧 장 보이는 앞쪽에 전시관이 보였다.
후훗... 뜬금없이...
처녀, 노처녀, 청년, 노총각
결혼해서 출산하세요!
한가정에 3자녀 20년후 중국을 먹자... 란 구호가 붙어있다.
하긴 인구가 자꾸만 줄어드니 자녀를 출산하는 것도 애국이 되겠네..^^
전시관 문은 닫혀 있었다.
노크하고 두드리고, 손잡이를 돌려보았지만,
꿈쩍도 안 하고, 인기척도 없다...ㅠ.ㅠ
이곳저곳 기웃거리다보니, 연락 번화를 적어 놓은 메모가 보였다.
얼른 전화를 점심을 드시려 가셨다며 곧 갈태니 조금만 기다려달라 하신다.
기다리며 전시관 문과 벽에 붙어있는
자료 사진을 담으며 기다렸다.
그러나, 정작 전시장 내부 사진을 담을 수 없었다.
저작권에 걸린다며 찍지말라하셔서...ㅠ.ㅠ
간략하게 설명을 들으며 둘러본 후
나가려는데, 입장료가 있다 하네요.
그것도. 성인 10,000원
입장료가 비쌀수 밖에 없는 이유를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속으론 뭐가 그리 비싸...난 경논대??
라고 생각했지만, 박정희 대통령 전시관에 들려
왈가불가 하기 싫어 입장료를 내고 나왔다.
맨 아래쪽 내부 사진은 10,000원을 낸 대가로??
딱 한 장만 찍으라 허락해 주었기에 전체 전경을 담아올 수 있었다.
링컨은 '박정희대통령보다 백배 더 독재'
인요한 박사는 강의에서 말씀하셨다 합니다.
백배나 더 독재를 하였다는 링컨은 존경을 받는데...
왜 박정희 대통령은 존경을 받지 못할까요.
미국사람들은 링컨이 잘못한 부분은 묻어버리고,
잘한 것만 돋보이게 하였기에 때문이며,
다른 나라에서는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억하는
박정희 대통령을 우리나라에서는 잘한 것은 묻어버리고
잘못된 것만 부각시켜 독재자로 펌하하였기 때문이라 합니다.
[안내글 내용]
1964년 독일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나라가 못사니까 우리젊은이 들이
이 고생 하는걸 보니 내 가슴에서 피눈물이 납니다.
우리만은 다음세대에게 잘 사는 나라를 물려줍시다."
라고 연설하셨다 한다.
1960년대 초 우리 1인당 국민소득이 69달러였다.
유엔이 조사한 120개국 가운데 인도 다음으로 못 살았다.
정부는 외화 벌 궁리를 하다 독일 광산, 병원에서
험하고 궂은일 해낼 인력을 수출하기로 했다.
1963년12월 광부 1진 121명을 보냈다.
이듬해 2진 500명을 뽑을 땐 4만 6000명이 지원했다.
70년대 후반까지 광부 8000명, 간호사1만 1000명이 떠났다,
이들이 덜 먹고 덜 입으며 고국에 송금한 1억 153만달러가
고속도로 깔고 제철,시멘트,비료,자동차 산업 일으키는 종잣돈이 됐다.
[전시장 내부 전경]
박 대통령 어록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든 ,
오늘날 우리 야당과 같은 반대를 위한 반대의 고질이 고쳐지지 않는 한 ,
야당으로부터 오히려 독재자라고 불리는 대통령이 진짜 국민 여러분을 위한
대통령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1969.10.10)
우리는 기적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땀흘려 일하면 일한 만큼의 노력의 대가와 보상이 있다는 것을 믿을 뿐이다.
(1977.1.1)
민족중흥, 조국근대화가 삶의 본질 그 자체였던 대통령
하면 된다는 의지로 근대화에 박차를 가했던 대통령
논두렁에 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농부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던
박정희 대통령 소박한 서민, 한국인의 애환과 숨결을 읽을 줄 알았던 대통령
박정희대통령 정권 때 비록 민주주의는 파괴가 되었다지만
대한민국 경제는 분명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조국을 위해 독재자 오명을 뒤집어 쓰고라도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며 온 정력을 다 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오로지 나라만 생각하였던 마음을
깊이 헤아려 보았는가?
찬사와 부러움으로 '새마을운동'을 배우겠다고
외국에서 찾아오는데, 왜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그를
독재자라 몰아 부치기만 하는가?
서글픈 현실이 아닐수 없다.
잘한것은 잘했다고 말해줄 줄 아는 용기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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