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元熙(고원희) 家屋(가옥)

2018. 6. 9. 05:54문화산책/고택과 문학관

 


소재지 :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 99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6호

 

[고원희 가옥 전경]

 

임진왜란 때 錦山(금산) 전투에서 전사한 의병장
高敬命(고경명)의 옛 집터를 그 후손들이 여러차례 고쳐지은 집이다.

현존 가옥은 1917년 소유자 高元熙(고원희)의 父(부) 琮錫(종석)이 건축한것이다.
예전에는 더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대문과 사랑채, 안채, 곳간채, 사당 등이 남아 있다.

 

[안내판 글 내용]

[고원희 가옥 사랑채]

 

대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이지만, 현재는 대문옆
담을 허물어 낮은 대문을 새로 만들어 그곳을 이용하고 있는듯 하다.

 

[낮은 대문 너머로 담은 사당 내삼문 전경]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와 곳간채가 나란히 있으며,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안채, 안채 오른쪽에 사당인 不祧廟(부조묘)가 있다.

 

[고원희 가옥 돌담]

 

닫혀 있는 대문으로 들어갈 수 없기에 가옥의 우측 담을
따라 오르며 부조묘인 사당과 내부 전경을 담너머로 담아 보았다.

 

[돌담 너머로 담은 사당 전경]

 

사당은 고경명장군과 그 아들 從厚(종후), 因厚(인후)형제의 不祧廟(부조묘)이다.

 

[사당 부조묘 내삼문]

 

담을 따라 오르며 담너머로 담느라 수고한 나 대신..
가옥 입구쪽에 남아 있던 남편은 때마침 돌아온 주인을 만나
사랑채와 사당을 담았다기에 딱 2장...
내가 남아 있었다면 더 많은 사진을 담아 올 수 있었을텐데...
좀은 아쉬움이 남았다.

 

[정면에서 담은 사당]

 

본래 4대가 넘는 조상의 신주는 사당에서 꺼내 묻어야 하지만
나라에 공훈이 있는 사람의 신위는 왕의 허락으로 옮기지 않아도 되는
不遷之位(불천지위)가 된다. 따라서 불천지위가 된 대상은 사당에 계속 두면서
기제사를 지낼 수 있다.

 

[사당 뒤쪽 담너머로 담아 본 사당 전경]

 

불천위가 된 신주는 처음에 묘 밑에 설치할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나
종가 근처에 사당을 지어둘 수 있게 됨으로써 부조묘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부조묘는 본래 국가의 공인절차를 받아야 하나
후대로 오면서 지방 유림의 공의에 의해서도 정해졌다.
불천위 제사의 대상이 되는 신주를 둔 사당.

 

[사당쪽 담너머로 담은 고원희 가옥 전경]

 

사랑채는 앞면 4칸. 옆면 1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왼쪽에 작은 방 3개를 구성하고 그 옆에 1칸 규모의 대청마루를 조금 높게 조성하였다.

안채는 앞면 6칸. 옆면 1칸 규모이며 왼쪽부터
부엌과 방, 대청마루, 방의 순서로 배치하였다.
부엌 옆에 붙은 방은 앞뒤로 칸을 나누어 2칸으로 구성한 겹집 형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