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 30. 05:49ㆍ문화산책/정자와 누각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387
대구문화재자료 제41호
[數咎堂(수구당) 전경]
마을 안길의 우측 골목에 있는 대문을 들어서면 '一'자형의
사랑채와 안채가 나란히 있어 '二'자형을 이루고 있는데 두 동 모두 남향집이다.
최흥원 선생의 처음 號(호)를 딴 數咎堂(수구당) 이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한다.
[안내판]
이 건물은 백불암 최흥원이 제자들과 강학하던 곳이었는데,
후에 자손들의 살림집으로 개조되면서 사랑채와 안채 2동만으로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다.
건립 당시 안채는 기와가 얹혀진 와가였던 반면
사랑채는 초가지붕을 갖추고 있었다.
1918년 두 건물을 고쳐지으면서 안채는 칸수를 늘리고
기둥을 높였으며, 사랑채에는 새로 기와를 올렸다.
안채와 사랑채 모두 중앙에 개방된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다양한 공간이 구성되었는데, 안채에는 2개의
방과 부엌이, 사랑채에는 사랑방. 침방을 두었다.
수구당은 안채와 사랑채만 갖춰진 단순한 구조지만,
조선말기 대구지방의 양반집 살림채 형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안내판 글 옮겨 적음)
[光堂精舍(광당정사) 현판]
[光堂精舍(광당정사) 전경]
조선 영조, 정조시의 학자이다.
본관은 慶州(경주), 자는 太初(태초), 汝浩(여호),
호는 數咎庵(수구암), 百弗庵(백불암), 漆溪(칠계)이다.
嶺南三老(영남삼로)로 추앙받으며 문하에120여명의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생시의 부모에 대한 효성과 나라를 경영할 정도의 경륜으로 大孝(대효)라
칭송받으며 死後(사후) 나라에서 正祖(정조)임금이 소수 홍패를 만들어
旌閭閣(정려각)을 세워 고을에서 큰 잔치를 베풀게 하였다.
저서로는 문집 15권 7책이 간행되어 있고 53년간의 일기책이있다
[光堂精舍(광당정사)]
사랑채 뒤쪽 안채에는 거주하고 계시는 분이
계신듯하여 더 이상 들어가지 않고, 뒤돌아 나왔습니다.
이렇게 공개해 주시는것만으로도 고마운데,
행여 그분들을 불편하게 해 드리면 안되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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