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평문씨 본리(인흥)세거지 수백당

2017. 12. 18. 06:05문화산책/고택과 문학관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401-2

 

[남평문씨 고택 과 안내판 전경]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동에 위치한 남평문씨 세거지는
려말 중국으로부터 목화씨를 드려온 문익점의 18새손인 문경호가
약 150년 전 처음으로 이곳에 정착해 살았다.

 

[남평문씨 고택 출입문]

 

우측 수봉정사의 문은 닫혀 있고, 좌측으로 
보이는 수백당과 인수문고 출입문은 열려 있었다.

 

[안내판 글 내용]

[안내판 영문 글 내용]

[守白堂(수백당) 바깥 출입문]

 

관람하실 분들에게

먼저 관광 안내소의 문화관광 해설사에게 문의 하십시오.
관람시간은 10시부터 17시이오니 시간을 지켜 주시고 관람시에는
조용히 관람 부탁드립니다. 라고 적혀 있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아니면 점심 때 쯤 들려서
그런지, 해설사님이 안 계셔서 망서리다 혼자서 들어갔다.

 

[수백당 안내팻말]

 

문을 들어서니 수백당 안내팻말과
'여기는 생활공간입니다. 들어오지 마십시오!!!'
란 경고판이 세워져 있었다.

곧장 수백당으로 향했다.

 

[守白堂(수백당) 안 출입문]

[안내문]

 

이곳 대문옆에도 위와 같은 안내문이 세워져 있네요.

네, 반드시 조용히 참관하겠습니다. 속으로 다짐을 하고 들어섰다.

 

[守白堂(수백당) 현판]

 

愚堂(우당) 兪昌煥(유창환)이 쓰셨다 합니다.
守白堂(수백당) 당호는 결백을 지키는 집이란 의미라 합니다.

 

[守白堂(수백당) 전경]

 

정면 6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집으로,
건물 앞쪽에 마루를 설치하고 뒤쪽으로는 5칸의 방과 1칸의 누마루를 두었다.

정자인 수백당(수봉정사)는 남평문씨 본리세거지의
대표적인 건물로 세거지 입구에 위치하고 있어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기도 하고 일족의 모임을 열었던 건물로서 정원의 꾸밈이 아름답다.

 

[守白堂(수백당) 앞쪽 우물]

 

마당 한편에 우물 井(정) 자를 한 우물이 있는데 특이하게 뚜껑이 있다.

 

[우물 쪽에서 담은 守白堂(수백당) 전경]

 

1936년 일제때 文永樸(문영박, 1880∼1930)
자 章之(장지), 호 壽峰(수봉), 본관 南平(남평)의
인격과 학식을 기리고 후손들의 학문과 교양을 쌓기 위한
교육 장소로서 자제들이 건립한 것이다.

 

[守白堂(수백당) 정원 石假山(석가산)]

 

石假山(석가산)이란 감상 가치가 있는 여러 개의 돌을 쌓아
산의 형태를 축소시켜 재현한 것으로, 기세를 느낄 수 있고
관상 가치가 있는 화강암을 주로 활용하였으며 한국 전통 정원이라 한다.

 

[守白堂(수백당)에서 담은  솟을삼문 전경]

[彛光園(이광원) 표석]

 

彛光園(이광원)이란 언제나 떳떳이 변하지 않고 빛나는 정원이란 뜻이라 한다.

 

[좌측에서 담은 守白堂(수백당)]

 

조선시대에는 궁궐과 관청, 사찰 건물에만 원주(둥근 기둥)를
사용할 수 있었고, 민가에는 사각기둥을 세웠는데 수봉정사의 기둥은
원주(7개)로 되어 있어 전통한옥 양식과 구별된다.

이곳은 원래 절이 있었던 명당 터를 남평문씨 일족이 세거를 위하여
정전법에 따라 구획을 정리하여 터전과 도로를 반듯하게 열었고 집을 지었던 곳이다.

지금은 세거지에 아홉 채의 집과 정자 두 채가 있으며
주거지의 도로에 면한 부분에는 나지막한 담을 쌓았다.

 

[履淸閣(이청각) 편액]

 

履淸閣(이청각)은 중국 명나라의 서예 문인 화가
문징명의 글씨를 집자하여 모각한 것으로 짐작된다 한다.

 

[守白堂(수백당 누마루)]

[守白堂(수백당)우측 옆 전경]

[협문]

[守白堂(수백당)에서 담은 솟을삼문과 석가산 전경]

[遊藝門(유예문) 현판]

[遊藝門(유예문) 전경]

 

이문으로 들어가면 많은 문중의 책을 모아놓은 
서고인 仁壽文庫(인수문고)와 中谷書庫(중곡서고)가 있다.

3대 100년에 걸쳐 이루어놓은 문중 문고를
1982년 따로 인수문고라는 현판을 달아 놓았다고 한다.

 

 

[仁壽文庫(인수문고) 현판]

[仁壽文庫(인수문고) 전경]

 

새로운 형태의 근대 도서관이 생겨나기 전까지
우리나라에는 대체로 다섯 종류의 도서관이 있었다.

첫째 규장각과 같은 국립도서관,
둘째 성균관. 서원. 향교 등 교육기관에
설치되었던 학교 도서관, 셋째 종교기관에 있었던
사찰 문고, 넷째 문중의 자제 교육을 위하여 설립된 문중 문고이다.

 

[居敬書舍(거경서사) 현판]

[居敬書舍(거경서사)]

 

이 밖에 개인 문고가 있었다.
문중 문고로 현재까지 알려진 것으로는
壽峰精舍文庫(수봉정사문고)와 映奎軒文庫(영규헌문고)가 있다.

 

[中谷書庫(중곡서고 현판)]

[中谷書庫(중곡서고)]

 

인수문고는 1만여 권의 도서와 문중의 보물을 보존하던 건물이다.

처음에는 소규모이던 인수문고의 서고를 후에 크게
지었고, 그 이웃에 도서의 열람을 위한 건물도 배설하였다.

 

[인수문고 쪽에서 담은 遊藝門(유예문) 전경]

[遊藝門(유예문)에서 담은 守白堂(수백당) 정원 石假山(석가산)]

[石假山(석가산)과 좌측 守白堂(수백당)]

[까치밥으로 남겨놓은 감나무의 감]

 

남평문씨 본리(인흥) 세거지의 고택들은 거의 문이 닫혀 있다.
개방된 곳은 수백당과 광거당 2곳뿐이는데, 광거당은 제가 가는 날
닫혀 있어서 들어가 볼 수가 없었다.
닫힌 대문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되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