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 16. 06:04ㆍ문화산책/여러 종류의 민속자료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402-2 일원
대구광역시 민속자료 제3호
[仁興寺址(인흥 사지) 石塔(석탑) 전경]
원래는 이곳에 2기의 통일신라시대의 탑이 있었다 한다.
인흥 사지로 추정하고 있으며, 비교적 탑의 형태가 온전한 1기는
1959년 경북대학교 월파원정원으로 옮겨져서 복원되어 있다.
[仁興寺址(인흥 사지) 石塔(석탑) 전경]
[안내판 글 내용]
[仁興寺址(인흥 사지) 石塔(석탑)]
비록 민속자료로 등록되지는 못하였드라도
온전하지 못한 채 남은 석탑도 보수를 하여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래도 같은 석탑이었기에 대구광역시 민속자료 제3호로
제가 지정해 보았습니다.^^
온전하지 못하여 이곳에 남겨진 이 석탑은
고향에 남아 있어서 오히려 행복할 것도 같다.
[仁興寺址(인흥 사지) 石塔(석탑)]
仁興寺(인흥사)는 본래 仁弘寺(인홍사)였다 한다.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선사가 고려 충렬왕 즉위년(1274년) 중수하여
왕으로 부터 仁興寺(인흥사)라는 친필 제액을 받아 仁興寺(인흥사)로 고쳤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폐사되었다 한다.
[仁興寺址(인흥 사지) 石塔(석탑)]
우리나라 전국이 온전히 남아 있는 문화재가 드물다.
왜란으로 전쟁으로 무지해서 이래저래 소멸되고 마멸되어 없어져 버렸다.
약소국의 아픔이라 생각하니 마음 한켠이 아려온다.
[仁興寺址(인흥 사지) 石塔(석탑) 전경]
이층 기단 위에 단층 몸신과 옥개석 하나
그나마 석탑은 새 부재로 메꾸어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仁興寺址(인흥 사지) 石塔(석탑) 전경]
이 일대는 본리리 남평문씨 세거지로 알려져 있다.
[목화밭과 仁興寺址(인흥 사지) 石塔(석탑) 전경]
고려말의 충신이며 원나라로부터 목화씨를 가져와
우리나라 의복문화에 혁신을 가져온 충선공 문익점의
18대손 인산재 문경호가 1840년 전후로 터를 잡아 남평문씨
인흥세거지로 자리잡았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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