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청내 徐相敦(서상돈) 나무와 胸像(흉상)

2017. 4. 4. 06:05문화산책/여러 종류의 민속자료

 

 

소재지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3동 225-1

 

[대구대교구청 본당 건물 앞 서상돈 식수 나무 전경]

대구대교구청 본당 건물 입구 계단 양쪽에
히말라야시다가 나란히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대구대교구청 본당 전경]

좌측 히말라야시다 아랫쪽 둥지 앞에
서상돈 수식이라 쓴 표석이 세워져있다.

 

[徐相敦手植(서상돈수식) 표석]

선생이 손수 심으신것을 기념하기 위해
徐相敦手植(서상돈수식) 표석을 세운것이라 한다.

분명 서상돈선생이 심으셨다는 표식은 맞는데...
이 나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문것 같다.

 

[대구교구청 본당 건물 전경]

지나가시는 신부님께 여쭈어보았지만,
서상돈 선생의 흉상은 알지만, 나무는 모른다고 하셨다.

교구청 준공을 기념하기 위해 심은 것으로 보인다하니,
적어도 1910년대에 조경수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도 알게 되었으면 한다.

 

[사상돈선생 흉상과 안내석 전경]

조선 고종 때의 민족운동가로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보부상을 거쳐 경제인으로 성장하였다.

1898년 獨立協會(독립협회)와 萬民共同會(만민공동회)의
간부로 활동하면서 러시아의 내정간섭을 규탄하고 민권보장 및
참정권획득 운동을 전개하였다.

 

[안내 글 내용]

[徐相敦(서상돈) 胸像(흉상)]

천주교의 평신도 지도자로 지역 복음화에 공헌하고
대구본당(현 주교좌 계산성당) 건립 등에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1911년 천주교 대구교구 설정 때 '현 남산동 교구청 일대'를 희사하였다.

1907년 대구의 廣文社(광문사)의 부사장으로 재직 중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할 것을 제의하고 국채보상취지서를 작성 발표하였다.
이를 계기로 국채보상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徐相敦(서상돈) 胸像(흉상) 2]

조각가 이상일(대구가톨릭대) 교수가 제작한 흉상은
교구청 본관 오른쪽 연못이 있던 위치에 세워졌다.

 

[胸像(흉상) 옆 모습]

1907년 2월 22일, 서울에서 金成喜(김성희). 劉文相(유문상).
吳榮根(오영근) 등이 국채보상기성회를 설립하였다. 이는 전국 각 지방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나는 국채보상운동을 총괄하는 기구로서,
그 취지와 회칙을 발표하는 등 합법적인 단체로서 형식을 갖추었다.

 

[徐相敦(서상돈, 1850 ~ 1913) 흉상 전경]

 

이 운동은 비록 일제의 방해로 뜻한 바를 이룰 수 없었으나
일제의 경제침탈과 국권침탈에 관하여 한국인들을 각성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서상돈선생의 고택을 들려보시려면, 요기 클릭